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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일 Jun 12. 2020

16. 회상

“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집 안에 연기가 자욱하다. 거실 한 복판에 둥그런 전기 프라이팬 위에 지글지글 전이 익어가고 있다. 좁은 집안이 연기와 함께 가족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식탁 위에는 명절 음식들이 가득이다. 해를 넘겨 연초 명절을 맞아 누이들과 조카들까지 우리 집으로 모두 모였다. 예전 같았으면 엄마가 계신 고향집으로 모였을 것이다. 서울 병원으로 엄마가 오시고는 병원 근처의 우리 집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준비한 음식들은 정성스레 두 곳에 나눠 담는다. 하나는 간병인들을 위해, 하나는 간호사들을 위해 준비한다. 명절이라도 쉴 수 없는 병원 사람들을 위해 마음 좋은 누이들은 매번 준비했다. 명절 아침 종이가방을 양손에 들고 온 가족이 병원으로 향했다. 일요일은 아니지만 명절을 맞아 찾아올 가족들을 위해 환자들 모두 목욕과 두발 정리가 되어 있었다. 어른들의 표정은 평상시와 사뭇 다르게 보였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아이처럼 조금은 상기된 듯하다. 가족들과의 만남은 이 곳 어른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엄마도 말끔하게 모두를 맞이해 주신다. 손주들의 목소리는 기가 막히게 들으신다. 참새들처럼 시끄럽게 애교 부리는 손주들의 목소리에 눈빛 응답이 분주하다. 아이들은 마치 아는 듯 할머니가 대답해 주었다고 서로 질세라 불러댄다. 팔 하나 다리 하나 귀 한쪽 서로 비벼대며 사랑을 표현했다. 그 어느 때보다 혈색이 좋아 보이셨다. 침대마다 어른들을 둘러싼 인파가 가득하다. 간호사들도 이 날만큼은 면회 기준을 너그러이 조정해 준다. 다들 일정이 비슷하다.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을 뵙고 각기 귀가해야 했기에 시간이 빠듯한 것이다.

다음 가족들을 위해서 우리는 조금 서둘러 병원을 나왔다. 느긋하게 명절을 보내고 저녁 식사를 마친 나의 가족들은 집 근처 공원을 거닐다 카페에 자리 잡았다. 어른들과의 대화 속에 나는 부모님의 별거가 궁금했었다. 너무 오래되었기에 당연한 듯 살아오다 어른들 덕분에 궁금증이 커졌던 것이다. 막둥이인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은 누이들은 어렸어도 기억하는 게 많았다.
“엄마 아빠는 어떻게 따로 사시게 된 거야?”
카페 밖에서 노는 아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던 누이들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왜는 왜야! 아빠가 나간 거지”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나가시진 않았을 거 아냐?”
가장 많은 것을 겪어 온 큰누이가 아버지 얘기에 조금 화가 나는 듯 말했다.
“노인네들끼리 이유가 있겠지만. 내 기억으론 막내 낳기 전이었지, 아마. 내가 9살 정도였으니까. 우리 잘 살았었어. 가게도 두 개나 하고 있었고. 근데 어느 날 가게도 없어지고 산꼭대기 집으로 이사를 했어. 그 집에서 막내가 태어났지”
“나는 집에서 태어났구나?”
“그럼. 난리도 아니었지. 엄마가 나가 있으라고 했다가 몇 시간 후에 날 부르는 거야. 그래서 들어갔더니 처음 보는 밤톨만 한 아기가 옆에 있고 엄마는 빨리 허리 밟으라고 그러지 않겠어. 열심히 밟아드렸지. 노인네! 부탁하면서도 승질은 암튼. 그 후부터 나랑 둘째는 찬밥이었지. 막둥이 아들 사랑이 아주 그냥 대단했지 우리 엄마”
화통하면서도 고생 많이 한 큰누이는 시원하게 기억을 뒤져 쏟아냈다.
“그때 아빠는 안 계셨어?”
“달에 한두 번 본 것 같은데. 같이 있지는 않았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나는 어렸을 때 몇 번 오셔서 본 것 같은데?”
“남의 집 들리듯 들렸지. 결정적으로 내가 아는 건 아빠한테 다른 자식이 있었던 거야. 엄마가 막내 낳고 알게 됐거든. 그 이복 오빠가 결혼하는데 아빠가 엄마를 불러서 알게 된 거지. 엄마 성격에 멀쩡 했겠냐? 완전 뒤집어진 거지. 엄마와 결혼하기 전에 아빠는 이미 아들 하나가 있었던 거야. 엄마는 배신감이 엄청 컸을 거야. 아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아예 안 왔지. 아빠가 올 수 있겠어?”
“그 기억은 나도 조금 있는 것 같네. 이복형 말이야”
“오빠도 불쌍한 사람이긴 한데. 암튼 아빠가 마지막으로 찾아왔던 게 내 결혼식이었어. 여기저기서 소식은 듣고 있었나 봐. 이미 외가 식구들에게는 원수가 되어 있었으니 쫓겨났지.”
기억에 젖어 잠시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가만히 듣고 있던 작은 누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삼남매는 큰외삼촌이 아빠 역할해주셨었지. 나야 언니 할 때 한 번 겪고 했지만 언니는 어린 나이에 맘고생 많았겠네?”
“혼자 많이 울었지. 둘째도 그랬겠지만 결혼식에 아빠 손 잡고 들어가는 거는 여자들에게 큰 의미거든. 아빠 없이 결혼하고 시집살이가 이어질 줄은 몰랐지.”
“나는 엄마 쓰러지고 나서 결혼하니까 장난 아니었어. 부모가 건강히 함께 계신 게 그렇게 큰 건지 몰랐지”
“아닌 것 같아도 은근히 선입견이 있다니까!”
“진짜 이 악물고 버텼지. 지금이야 모두 인정해주시지만 신혼 때는 정말. 말도 마.”
“결국엔 아빠 바람 때문이겠지. 멀쩡히 잘하던 가게 접고 집 나가면서부터 기울기 시작했으니까”
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쏟아냈다. 사실 엄마가 병원 생활을 하시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내용들이 많았다. 삼남매의 만남 회수가 늘어날수록 대화가 깊어지고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큰누이의 말에 아쉬운 듯 작은 누이가 말했다.
“정말 그렇지? 아빠만 안 그랬으면 엄마도 식당이나 포차 안 하고 건강했을 텐데.”
“나도 애들 낳고 살아보니 느끼지만 평범한 부모의 존재가 너무 중요해”
모두가 느끼는 부분이다. 현실적으로는 아버지의 바람과 부재가 엄마를 아프게 만든 것 같다고 다들 느꼈다. 갑자기 작은 누이가 내게 물었다.
“근데 옆에 할아버지는 왜 별명이 바람 할배야?”
“눕기 전에 바람 많이 피신 것 같던데. 아주머니께 들은 적 있거든. 병상에 누우 시기 전까지 계속 그러셨나 봐”
“아줌마가 대단하네. 그런 남편 병시중을 하고 있는 거야?”
“대단하지. 이러나저러나 내 남편이고 내 인생이라고 말씀하시던데”
조금 놀란 듯 누이들은 말이 없었다. 전부 내 일이고 내 인생이라는 말이 같은 여자로서 이해가 안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남자인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나는 질문을 던졌다.
“만약에 아빠가 바람이고 뭐고 같이 살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큰누이가 답했다.
“그랬으면 또 달라졌겠지? 근데 어려운 일이야. 엄마 성격도 장난 아니니까”
“그러게. 아빠가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왔을 거 같은데. 엄마 성격 진짜 대단했지. 거기다 스타일에 대한 고집도 대단했지”
작은 누이의 스타일 얘기에 큰누이가 갑자기 흉내를 낸다.
“노인네 미쉐린 같은 몸매에 숨은 쉴 수 있는지 얇은 벨트로 상하체 구분 짓고. 머리는 언제나 스프레이로 단단히 고정시키고. 그거 기억나? 독특한 걸음걸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흉내를 낸다. 허리를 곧게 핀다.  왼손은 허리춤에 대고, 쭉 핀 오른팔의 손을 손등이 위로 가게 하고는 앞뒤로 경쾌하게 흔들며 걷는 모습이다. 그 모습에 가족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그런 엄마라 나는 그냥 좋다. 아빠가 있든 없든”
한참을 웃던 작은 누이가 말했다.
“아빠가 없어도 엄마가 워낙 밝게 잘해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엄마에 대해 애틋한 마음 갖고 잘 살고 있지 않나 싶어”
“그래. 언니 말이 맞아. 우린 엄마 덕에 충분히 행복했으니까”

같은 일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우리 삼남매는 집 나간 아빠에 대한 원망보다는 엄마에 대한 애정이 더 컸다. 아니 절대적인 엄마의 사랑이 만들어 낸 결과일 것이다. 내 나름 나이차가 있는 누이들을 통해 부모님의 관계에 대한 얘기를 알고 싶었지만 실패였다. 엄마의 마술 같은 사랑이 삼남매의 기억을 물들여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의 일들을 자식들로서는 알 수 있는 한계가 있는 듯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시끌벅적한 가족들 속에서 나를 마주하던 엄마의 눈빛이 떠올랐다. 매일 보는데도 엄마가 그리워졌다. 문득 ‘아빠의 바람도 지금의 침대 생활도 다 괜찮아. 너희들끼리 잘 살아야 한다!’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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