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명절이 지난 병원은 조금 쓸쓸하게 느껴진다. 가족을 기다리던 어른들은 설레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가족들과 짧은 시간을 함께하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덤덤해 보인다. 그 모습이 더 슬퍼 보였다. 누구든 침대를 벗어나 같이 나가고 싶었을 테니. 환자들이야 어떻든 병원의 일상은 일정하게 돌아갔다. 다만 팀장은 어딘가와 분주히 통화하며 혼자 심각했다.
“휴가 갔다 안 오는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예요!”
목소리가 커진다.
“아무튼 인원 돌리기 힘드니까 실장님이 서둘러 채워주세요. 일단 그 친구 짐 정리해놓고 위에서 한 명 내릴게요. 네. 네”
들리는 통화 소리에 주변을 돌아보니 간병인 한 명이 안 보인다.
“무슨 일 있으세요?”
통화를 마치고 멀뚱히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팀장에게 물었다.
“아들 왔네. 간병인 한 사람 휴가 보냈더니 안 왔지 뭐야”
“왜요?”
“왜긴. 일이 힘드니 가족들 만나러 고향 갔다가 눌러앉은 거지”
“고향이 어딘데요?”
“그 친구는 중국 북부 쪽이야. 그래도 일하는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데 말이야. 여러 사람 고생한다고”
“힘들긴 힘든 일이죠”
“원래 몸이 아프기도 했거든. 나름 다들 많이 챙겨주면서 했는데 갑자기 이러니까 서운하기도 하네”
간병인들의 생활이 조금 궁금하기도 했던 나는 이 때다 싶어 물었다.
“생활은 어디서 하시는 거예요?”
“우리들? 나나 오래된 친구들 몇은 병원 근처에 집 얻어서 생활하고 대부분은 지하 기숙사에서 생활하지. 3교대로 일을 하니 멀리 갈 수도 없어. 피곤하잖아”
“피곤하겠어요. 더구나 환자들 챙기는 일이니”
“그럼. 피곤하지. 그러니 한국인들은 잘 안 하려 한다 하더라고. 조금만 힘들면 말만 많아지고. 그래서 우리 같은 중국인들이 들어오게 됐지. 잘 참고 성실히 하면 좋은 돈벌이거든. 말을 못 알아들어 불편한 것도 있지만 오히려 환자들이나 보호자들한테는 좋은 점도 많은 가봐”
“맞아요. 저희도 간병인 말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았었거든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저도 겪어보니 더 좋은 것 같아요”
“내가 처음 한국 왔을 때만 해도 이런 병원이 많지 않았어. 그러다 어느 순간 늘더라고. 우연히 시작하게 됐는데 벌써 15년이나 흘렀네.”
“벌써 그렇게 되셨어요?”
“그러게. 그 사이에 손주까지 봤지. 그놈 때문에 돌아가야 하나 생각이 많아”
“팀장님은 가시면 안 되는데!”
“좋게 봐줘서 고맙네. 나도 나이를 먹으니 힘이 딸려. 못 움직이는 어른들 돌보는 게 보통일이 아니거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자 간병인들도 쓰는 거야. 성별 맞춰 간병하면 좋은데 여자들끼리 하는 건 무리야”
“저도 어려서부터 엄마 업고 다녀 봤지만 정말 힘들죠. 몸이 늘어져 있으니까 같은 무게도 두 배는 더 무겁게 느껴져요”
“그럼 그럼. 특히나 목욕할 때나 시트 교체할 때는 정말 큰일이야. 그리고 한 가지는 병원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거야”
“간병인 분들이요?”
“어디 나갈 수가 없으니까. 사지 멀쩡한 젊은 사람들인데 마음이 답답하잖아. 집에서 다니는 거면 가족들 보며 풀기라도 할 텐데 다들 그럴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향수병도 생겨서 술독에 빠지는 놈도 있지.”
“아 그 자주 혼나는 남자 간병인 말씀하시나 보다”
“그래 그놈. 답답하니까 한 잔씩 하던 게 느는 거지. 일은 일이니 조절이라도 해야 되는데 그게 되나! 때때로 생각해보면 아픈 사람들 때문에 병원이 있는 건데, 병원서 지내다 보면 아파지기도 하는 것 같다니까”
“정말 그래요. 병원 생활이 길어지면 보호자들도 왠지 아파지는 것 같아요. 물론 마음이 그런 거겠지만”
“그러니 몸도 마음도 힘든 일이야. 있잖아 오래 일하다 보면 어른들하고 친해지거든. 대답은 안 하셔도 이 느낌이란 게 있잖아. 정이 든다니까. 그러다 한 분 한 분 가시게 되면 꼭 내 부모 보내는 마음이 들어서 며칠이 힘들어. 신기하지. 쌩판 모르는 남인데도 자식 돌보듯 간병을 하다 보니 정이 많이 드는 거야. 그만큼 상실감도 생기고”
“상실감은 많이 힘든데요. 지난번에 보니까 병실에 한 분 가시니까 다른 어른들도 안 좋아지는 것 같던데 서로 영항이 많은가 봐요?”
“그럼. 묘하다니까. 아들은 매일 오니 느낄 수도 있겠네. 어쩌다 한 번 오는 보호자들은 못 느끼지. 오히려 밤낮으로 같이 있는 간병인들이 보호자들 대신 느끼는 거지. 아무리 덤덤히 넘기려 해도 쉽지 않아. 맘이 힘들어.”
“그렇겠네요. 누구보다 가까이 있는 분들이니”
“나도 꽤나 고생했었지. 제일 기억나는 게 스무살에 들어온 여자 아이였어”
“엄청 어린데요”
“너무 어리지. 아무튼 병명은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온 몸이 비틀어지고 호흡기하고 기계 여러 개 달고 있었거든. 눈이 얼마나 이뻤는지 몰라. 이것저것 물어보면 반짝반짝 눈을 빛내면서 쳐다보는데 얼마나 이쁜지 몰라. 딸 같았지. 실제로 우리 아들하고 나이도 비슷했었고.”
기억이 샘솟는지 팀장은 추억담을 쏟아낸다.
“그 친구는 부모가 없었어. 어쩌다 오는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가 보호자였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폐지 주워 생활하신다고 하더라고. 얼마나 안쓰러운지. 올 때마다 손주 손 쓰다듬고 우는 게 전부야.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몰라. 간병인들은 단지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거든. 가족을 대신하는 감정 노동자나 마찬가지야”
“마음 아픈 일이네요. 저도 그렇지만 누워있는 가족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건 말이죠. 감정 노동자라는 말씀도 이해가 돼요”
“그 아이의 눈빛을 봤어야 하는데. 할머니가 오면 똘망똘망 애교 부리듯 사랑스럽게 바로 보는 눈빛이 아직도 생생해.”
“오래오래 할머니랑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누워서라도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도 명절 지나고 얼마 안 되어서였지, 아마? 저녁 먹고 얼마 안 있어 갑자기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는 거야. 아, 아들도 알고 있어.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 위험하거든. 자정이 다 돼서는 간호사들도 난리가 났지. 그럴 때 꼭 전화가 안돼요. 할머니가 돈 더 벌겠다고 밤에 유모차 끌고 나간 거야. 수십 번 했나 봐. 새벽 두 시가 다 돼서 연락이 됐지. 간신히 눈뜨고 버티다 할머니 보고 손잡고 떠났어.”
감정이 올라오는지 눈시울을 붉힌다. 가만히 휴지를 건넸다.
“허무하다 허무해. 너무한거야. 사실 이 병원에 들어왔다 걸어서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지. 그래도 너무 어린 나이에 갔어”
“걸어 나가는 사람이 없죠...”
남의 일이 아니다. 가만히 엄마를 바라보다 답했다.
“나도 일하고 오래되지 않아 겪다 보니 많이 힘들었지. 정을 주면 안 된다고 매번 스스로 다짐하며 일을 해도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나. 같이 살다 보면 정드는 게 사람인데.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야. 가시는 분들에게는 슬퍼하기보다 자유롭게 새로이 잘 사시라고 빌어주고.”
팀장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새로운 간병인이 배정되었다는 연락이었다.
“다행이네. 한 명 온단다. 한 사람이 얼마나 큰지 몰라”
“다행이네요. 팀장님 표정이 밝아야 저도 안심하니까요”
“그런가? 아무튼 말이 많았지. 어여 엄마 만나고 가셔”
다시 분주히 간병인들을 데리고 환자들을 돌보러 간다.
누워있는 가족의 간병을 위해 다른 사람을 간병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생활을 하고 간병비를 지불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누워있는 내 가족을 두고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그리고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간병이라는 일이 육체노동을 넘어선 감정 노동이 된다는 것은 새로웠다. 직업으로서 막연히 엄마를 챙겨주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커다란 착오였다. 몸으로 챙겨주는 시간 속에 마음으로 보살피고 있는 것이다. 엄마와 그 너머로 보이는 어른들의 침상이 눈에 들어왔다. 말끔히 정성스레 덮어드린 이불들이 똑같이 어른들의 어깨선에 맞춰져 있다. 소소한 침상의 모습 속에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언제나 주머니에 갖고 다니는 작은 초코바를 한 움큼 팀장의 자리에 가만히 내려놓고 병원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