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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일 Jun 17. 2020

18. 트라우마

“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건물 사이로 목련이 화려하다. 건조하게 솟아 있는 빌딩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회색빛 가지마다 꽃망울이 넘친다. 3월 말의 봄기운은 힘차게 대지를 움직이고 있었다. 약동하는 생명력에도 병원의 일상은 무료하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했다. 일상의 반복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스럽게 느끼곤 했다. 4월이 다가오며 나와 누이들은 마음이 안 좋았다. 엄마가 쓰러지신 때는 두 번 다 4월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어른들은 매일같이 병원을 들락거리는 내가 엄마를 붙잡고 있다고 하셨다. 책망이라고 느끼진 않았지만 맘에 남는 말들이었다. ‘병상의 시간이 너무나 괴롭고 힘드신데 정말 나 때문에 힘들게 버티고 계신 걸까?’ 수없이 자문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죽음의 때를 나는 알 수 없기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마음껏 만난다는 것이다. 누이들은 하루하루 문자로 엄마의 안부를 묻느라 바쁘다. 아픈 기억은 몸이 먼저 반응하는 듯했다. 일부러라도 말끔한 엄마의 사진도 찍어서 보내주며 안심시키기 바빴다.

두꺼운 겨울 침구들이 어느새 가볍게 교체되었다. 창문의 보온재들도 말끔히 제거되었다. 따스한 낮시간에는 창문을 열어 환기도 하고 있었다. 간병인들은 여전히 분주하다. 간병인과 간호사들의 변함없는 일상이 보호자 입장에서는 아주 안심이 되었다. 말끔하게 누워계신 엄마와 인사하고 문득 이불 아래로 다리가 보였다. 통통한 상체와 달리 다리가 앙상하다. 아무리 주무르고 어떻게 해도 다리는 앙상하게 굳어갔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말씀이 떠오른다. 당신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사람은 정강이 뼈가 나오면 죽을 때가 된 거야”라고 무심히 말씀하셨다. 세월이 쌓인 어른들의 덤덤함이 때로는 무겁게 짓누른다. 앙상한 다리에 조금 울적해진 내게 배고파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엄마 다리에 뭐 묻었나? 뭘 그리 뚫어져라 보고 있어?”
“엄마 다리가 앙상하네요...”
“죽으면 없어질 것 신경 쓰지 마. 누워있으면 어쩔 수 없는 거야. 근데 이쁜이가 복을 많이 쌓았나 얼굴이나 허리 위로는 너무 이쁘네”
“그쵸. 다들 신기하다고 하세요”
“신기한 일이지. 우리는 쭈글쭈글하잖아. 맨날 먹는 게 영양캔 뿐이니 어쩔 수 없거든.”
“고마운 일이에요. 이쁜 모습으로 계신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감사한 마음이면 됐어. 그나저나 밖에 목련 폈니?”
“어떻게 아셨어요?”
“맘이 스산하고 자꾸 허기진 게 꽃 필 때가 된 것 같아서”
“무슨 사연이 있으신가 봐요?”
“목련 필 무렵 모든 일을 겪었거든. 아들도 보내고 나도 병원살이를 시작하고”
“네! 아들을요?”
“사고가 있었지. 제대로 해주지도 못하고. 먹성은 좋아서 엄마 얼굴만 보면 ‘배고파! 밥 줘!’ 노래를 불렀었는데. 어디서 잘 먹고 댕기나 모르겠네”
“무슨 사고였는데요?”
“지 친구들하고 자전거 타고 놀러 갔다가 차사고가 났어. 그 자리에서 떠났지. 어려서부터 그렇게 밝게 잘 놀고 이쁘게 커줬는데 중학교 때 서둘러 갔지 뭐야. 내가 너무 못 챙겨줘서 그런 거 아닌가 싶다”
“그럴 리가요. 그런 생각 마세요.”
“어미라 그런가 봐. 전부 내 탓이라고 느껴지거든. 지금까지 살았으면 아들하고 비슷한 또래겠네”
“보고 싶으시겠네요. 그래도 절대 자책 마세요”
“억지로 되냐. 그냥 담고 사는 거지. 치매 걸리고 다 잊어도 아들놈 생각에 배고파 소리가 입에 붙은 거야. 배고프다며 엄마 부르는 아들 목소리가 생생하거든. 잊을 수 없어. 그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그리고 말이야 아들 사고 난 곳에 도착했을 때 커다란 목련 나무에 꽃이 참 이쁘게도 많이 피어있었거든. 해 떨어지고 어둑해진 길가 목련 아래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 일이 있고는 목련을 너무 싫어하게 됐지. 그 후에는 목련을 보면 트라우마가 생겼어. 목련이 필 때 되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함이 몰려와. 결국에는 목련 필 무렵 나도 병원에 들어왔거든.”
“다들 그런 것이 있나 봐요. 사실 저나 누이들도 4월이 그렇거든요. 엄마가 쓰러지신 게 두 번 다 4월이어서요. 요맘때 되면 왠지 마음이 안 좋아요”
“그럴 거야. 억지로 짜 맞춰도 안될 텐데 참 사람들 인생이 드라마틱해. 근데 말이야, 지금 와서는 트라우마를 만든 것도 결국 나라는 걸 많이 느끼거든”
“스스로 트라우마를 만든다고요?”
“누가 만들어 주겠니. 내 트라우마를. 결국에는 내가 만든 거겠지. 어떤 일로 상처가 되든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결국엔 내가 만든 상처라는 것을 느끼게 되더라고. 다만 눈에 보이는 다른 뭔가에 자신의 고통을 전가시키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됐지. 오래 시간 누워 내 몸뚱이를 바라보며 사색을 거듭해 온 나의 결론이랄까.”
순간 놀라긴 했다. 또자 할머니도 바람할배도 배고파 할머니도 다 똑같은 말씀이다. 트라우마조차 내가 만든 내 책임이라니.
“저는 이런 트라우마를 원한적이 없는데요?!”
나도 모르게 조금 목소리가 커졌다.
“열 낸다고 없어지나. 트라우마라고 별거 있어. 스스로 느끼는 상처일 뿐이니까. 그게 오래가서 문제지. 해결할 문제라기보다는 의미를 알아갈 문제인 것 같아. 내가 지금껏 아들 생각에 배고프다 입에 달고 살지만 괴로움보다는 고마움이 커졌거든.”
“그럴 수는 있죠. 저도 그 점은 느끼니까요. 그래도 제가 원했다는 건 좀 억지 같은데요”
“억지는 무슨. 내가 거짓말하겠냐. 서두르지 마. 시간을 소중히 쌓아 가다 보면 알 수 있을 때가 올 거야. 나도 아들을 보내고 첫 기일에는 납골당 입구 목련을 보고는 전부 불태우고 싶을 정도였지. 마치 목련이 내 아들 그리 만든 것처럼. 자식 잃은 어미의 마음은 아마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거야. 스치는 바람에도 눈물 나. 아무리 아파도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왔지. 방법이 없거든.”
“저도 딸이 있지만 상상도 못 하겠어요”
“생각조차 무서워. 어려운 형편에 내 우울증까지 우리 딸이 한동안 고생 많이 했어. 먹고살아야 하니 나중에는 친정에 딸아이 맡기고 일을 시작했지”
“아저씨는요?”
“이혼했어. 아들 보내고는 내 책임이라고 맨날 술만 푸고 들어오면 나와 딸까지 쥐잡 듯 잡고. 정말 지옥 같았어. 어쩔 수 없이 이혼했지.”
“나쁘네요. 아저씨가...”
“뭐 그 사람 탓하면 뭐하겠어. 아무튼 그렇게 딸아이 키운다고 일하다 보니 나중에는 딸아이 만날 시간도 없어졌어. 미친 여자처럼 일에 매여 살다 보니 국민학교 다니던 딸아이가 어느새 고등학생이 돼있지 뭐야. 이맘때 딸이랑 아들 납골당에 갔는데 함 안에 가족사진을 보고는 딸이 울면서 그러더라.  ‘엄마! 오빠가 우리 사는 거 보면 좋아할까?’라고. 정신이 번쩍 들었지”
“따님도 많이 힘들었나 보네요”
“많이 힘들었지. 나보다 더 힘들었을 거야. 엄마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모든 걸 잃은 건 사실 우리 딸이니까...”




부모의 삶은 자식에게 고스란히 투영된다.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그대로 흡수해버린다. 순수한 아이의 마음에 극심한 부모의 고통이 쌓이고 어느 순간 나름의 탈출구를 찾게 되는 듯하다. 할머니의 딸은 다행히도 엄마에 대한 바람으로 그 출구를 찾은 듯했다. 아마도 자신을 위해 살고 있는 엄마의 진솔한 마음을 절절히 느껴왔을 것이다.
“어린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님의 결정에 그저 따르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랬겠지. 커다란 상실감에 내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둬놓고, 딸조차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던 거야. 어려도 다 나름의 생각이 있을 텐데. 그 순간 너무 고마웠지. 우리 딸이 해준 그 한 마디 말이 동굴 속에 등불이 켜진 것처럼 내 눈을 밝게 해 줬어. 다 정리했지. 딸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부 바꿔버렸어.”
“생활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려웠지.  정말 어려웠어. 근데 사람 마음은 대단해. 함께 하는 시간에 무게를 두고 나니 그 어려운 시간들도 행복해지더라. 우리 딸도 이쁘게 공부 잘하고 취업해서 형편도 좋아지고. 어려운 게 문제가 아니었어. 어려움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문제였던 거야.”
“대단한데요”
“대단하긴. 누구나 그럴 거야. 네 엄마도 그랬을 테고. 아무튼 트라우마가 전환되는 걸 느꼈지”
“트라우마가 바뀌어요?”
“그전까지는 고통으로만 다가왔던 시간이었거든! 근데 그 일 이후에는 새로운 시작의 때로 느껴지는 거야. 목련이 필 무렵 느껴지던 트라우마가 마치 밤낮이 바뀐 듯 변했지. 밝아졌어 가슴이. 트라우마가 새로운 출발점이 된 거야.”
“트라우마가 전환된다는 건 왠지 멋진데요. 불안하고 괴로운 시간이 행복한 시간으로 바뀐다는 거잖아요”
“감사한 일이지. 전부 우리 딸 덕분이야. 괴로움에 잠겨있을 때는 전부 싫어져. 선글라스를 쓴 것처럼 전부 어둡게만 보여. 선글라스를 우리 딸이 벗겨준 덕분에 마음이 바뀐 거야. 순식간에. 내가 젊어서는 청양고추를 싫어했거든!”
“갑자기 청양고추요?”
“들어봐. 근데 나이가 들면서 너무 좋아하게 된 거야. 입맛이 변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이 변한 것 같아. 같은 매운맛이지만 어려서는 그냥 매워서 싫은 거였고, 살다 보니 매워서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으로 개운해지는 즐거움을 알게 된 거지. 그 개운한 기분을 좋아하는 마음이 물을 들이켜면서도 청양고추를 먹게 만들거든.”
“그럴 수 있죠. 저도 그런 음식이 있으니까요”
“단지 세월이 지나서 그런 것보다는 이런저런 경험 속에 마음이 변한 것 같거든. 청양고추 하나만 봐도.”
“좀 어려워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좋은데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으니까. 당장에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쌓여가는 것들이 있겠지. 좋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걷다 보면 선물 같은 변화의 시간이 오는 것 같아. 이제는 목련 필 때가 기다려지거든. 당장에 내가 병원에 들어와 사지가 묶이게 된 때도 이맘 때라 안 좋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살면서 이유 없는 일들은 없는 것 같거든. 내 병원생활도 이유가 있겠지.”
“많이 힘드실 텐데 그런 생각을 하신다는 게 정말 놀라워요”
“마음을 바꾸려 노력해봐. 좋은 쪽으로. 네 엄마가 저렇게 병원에서 시간을 보낸 것도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테니. 트라우마라는 말로 스스로 가두지 말고.”

내가 가두고 있었는지 모른다. 괴로운 현실이 다가올 때는 피하고 싶으니까. 이유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 대화의 순간에도 나는 4월의 트라우마 속에 또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 속에 잠겨있던 중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내게 스스로 바꿔보라 하신다.

“따님은 할머니 치매로 상심이 크겠어요?”
“당연하지. 사람인데. 그래도 우리 딸 지혜롭게 잘하고 있지. 자주 와보지는 못해도 올 때마다 이 엄마 격려해주느라 바빠. 사진도 보여주고. 엽서도 써와서 읽어주고. 지금의 내 몸뚱이는 바보처럼 고장 났지만 다 듣고 다 느끼고 있거든. 우리 딸은 내가 아파 누워있어도 다 알고 느끼고 있다고 잘 믿고 해가고 있어. 너도 잘하고 있고”
“제가 뭘요. 이렇게 어리바리한데. 따님처럼 마음을 정해봐야겠어요”
“이제 지난 세월 기억 때문에 괜히 고민하지 말고. 누워있어도 엄마 볼 수 있는 거에 고마워하고. 그러다 보면 트라우마가 전환될 거야”


불안감은 내가 원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어느 사인가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나의 삶에 영향을 준다. 지금도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불안하다.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은 언제든 다가올 엄마의 죽음에서 오는 듯했다. 언제 죽음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을 현실의 상황 때문이다.

할머니의 경험담을 들으며 나의 트라우마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되었다. 단지 걱정할 문제가 아닌 내 삶을 위해 분명히 겪어야 할 이유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초점을 맞추듯 정확히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를 위한 어떤 의미 있는 시간이었는지. 그리고 언제나 인자한 표정의 엄마는 나에게 시간을 주고 계신 듯했다. ‘아픔이 전부가 아니야. 우리 대선이를 위해 꼭 필요한 의미 있는 시간이란다.’라고 속삭이며 내가 알아갈 수 시간을.  내 삶의 트라우마도 결국 내가 바꾸는 수밖에 없다. 병상의 수업이 길어질수록 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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