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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일 Jun 22. 2020

19. 의미

“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좌우 비슷해?”
“괜찮은 것 같은데. 뒷머리는 짧게 해 드리는 게 어때?”
“그러자. 누워계셔서 보이지도 않는데. 뒷머리 길면 땀이 많이 나서 안 좋다고 팀장이 그러더라”
“디자이너 마음대로 하세요”
 
토요일 퇴근 후 서울로 올라온 작은 누이가 엄마 머리 정돈에 분주하다. 나는 움직이지 못하시는 엄마의 머리를 이리저리 받치고 있다. 머리를 자르는지 뭐하는지 엄마는 천하태평이다. 잘도 주무신다. 누이의 말로는 누우시기 전에 집에서 머리를 정돈해 드릴때도 그렇게 주무셨다고 했다. 자식의 손에 머리가 만져지는 게 좋으신 듯하다고 누이와 나는 결론 내렸다. 머리 정돈 때 쓰는 꽃무늬 가운은 팀장에게 빌렸다. 이제 친해져서 전동 이발기도 빌려 쓴다. 시원하게 머리를 자르고 누이와 나는 테이프를 뒤집어 흩날린 머리카락들을 열심히 찾는다. 하얀 시트와 이불 여기저기에 머리카락이 잔뜩이다. 혹여나 호흡기로 들어갈까 눈이 빠지게 찾아낸다. 산뜻해진 머리로 엄마는 곤히 주무신다. 머리를 정돈해 드려서인지 엄마를 위해 뭔가 해드릴 수 있다는 기쁨에서인지 우리는 기분 좋게 마주하고 앉았다. 일요일 환자들의 목욕과 함께 침구 교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머리카락 정리는 언제나 토요일이었다. 잠시 후 퇴근이 늦은 큰누이가 도착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엄마와 얼굴을 비벼가며 인사를 나눈 큰누이는 손발톱과 눈썹을 꼼꼼하게 정리한다. 큰누이의 몫이다. 비벼대는 누이의 인사에 빨갛게 충혈된 눈을 뜨신 엄마는 잠시 우리들을 둘러보고 잠에 드셨다.
“노인네. 맨날 주무시면서 뭘 그리 주무시냐?”
큰누이가 앙탈 부리듯 말했다. 눈 뜨고 계신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누이들이 이뻐 보인다.
“뭐 먹을까? 뭐 매운 거 없나?”
언제 그랬냐는 듯 큰누이는 저녁 메뉴를 묻는다. 엄마 덕분에 매주마다 모이는 우리는 병원과 집 근처 맛집들을 거의 돌아볼 수 있었다. 한번 한번 식사 시간이 쌓인 만큼 함께 나누게 된 삼남매 각자 인생의 사연들도 늘어만 갔다. 가족이라는 인연에 맡긴 채 무심히 지내온 세월이 얼마나 많은지 삼남매 모두 느끼고 있었다. 쉬는 날 없이 주말마다 엄마 곁으로 오는 것이 피곤하기도 할 텐데 함께하는 시간들의 즐거움과 보람들이 지탱해주는 듯했다. 우리는 엄마를 뒤로 하고 집 근처 오징어 불고기 집으로 향했다.

테이블 중앙에 놓은 불판 위에 빨갛게 양념된 오징어와 각종 야채들이 불길에 따라 꿈틀거렸다. 그 옆에는 노릿노릿 바삭하게 튀겨진 오징어 튀김이 대기하고 있다. 희망이는 매운 양념도 물을 마셔가며 맛있게 먹었다. 언제나처럼 시원한 맥주를 한잔씩 손에 들고 한 주 동안 고생했다며 건배를 했다.
“고생들 했어. 엄마 머리도 이쁘게 잘해 드렸네. 건배할까”
잔이 모이는데 튀김을 오물거리며 희망이가 가로막는다.
“저도 해야 돼요. 다시 다시”
튀김 먹느라 타이밍을 놓친 희망이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앙탈을 부린다. 이미 한 모금 마신 우리들은 희망이를 달래며 다시 건배를 했다. 매운 양념에 술 한잔에 개운한 땀을 흘리고 식사를 마친 우리는 호수를 거닐어 집 바로 옆에 있는 펍으로 향했다.
초등생 희망이는 펍 중앙에 놓인 당구대에 자리 잡고 혼자 나인볼을 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딸아이가 놀 수 있게 공을 이리저리 옮겨주며 잘한다고 칭찬하느라 바쁘다. 주변의 손님들은 생각지 못한 꼬마 아가씨의 당구 놀이를 귀여운 듯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대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당구대 옆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엄마 머리는 언제부터 작은 누이가 해드린 거야?”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나는 물었다.
“기억도 안 나네. 오래됐지. 갑자기 왜?”
“그냥 궁금해서. 너무 모르고 산 것 같기도 하고”
“궁금할 게 있나. 당연히 해 드려야 하는 건데. 지금도 해드릴 수 있어 감사하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작은 누이가 대답했다.
“우리 둘째가 대단하지. 그 오랜 세월 혼자 엄마 챙겨 온 거 보면 대단한 거야”
“언니 취했냐. 갑자기 왜 그래.”
“취하긴. 둘째 없었으면 나도 대선이도 이렇게 떨어져서 일하며 살았겠어”
“큰누이 말이 맞지. 작은 누이 덕분이야. 그러고 보면 엄마 누우시고 우리 삼남매는 얻은 게 참 많은 것 같아”
형제들의 칭찬에 멋쩍은 듯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작은 누이가 말했다.
“언니도 대선이도 고생 많았지. 정말 엄마 누우 시기 전에는 이렇게 매주 우리가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정말 감사한거야”
“처음 엄마 누우셨을 때는 그냥 정신없고 슬프고 막막하고 그랬는데 우리 동생들 덕분에 이번에는 든든하네”
문득 옛 생각이 나는지 동생들 챙기는 큰누이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때문에 엄마가 저렇게 긴 시간 병상에서 참고 계신가 봐. 주변 어른들은 저렇게 뽀얗게 누워계신 것도 신기한 일이라고 그러시더라”
“내 친구들도 다들 그러더라. 엄마가 강하신 것 같다고. 처음에 누우셨을 때는 50세였으니 워낙 젊으셔서 모르지만 지금은 70이 넘었으니. 노인네 엄청 강한 거야.”
“그래도 좋다. 엄마가 계셔서. 정말 가시기 전에 우리 삼남매 끈끈하게 만들어주시려고 그런 것 같아. 언니 혼자 고생한 것도 더 알게 되고. 대선이 가족들과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고”
“정말 헛된 것들이 없어. 나도 대선이도 차 타고 2시간만 가면 모두 모일 수 있었던 건데 노인네 눕기 전에는 한 번을 못했던 거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엄마 건강하실 때 이렇게 모이면서 같이 시간 보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참 마음처럼 안돼. 언니도 대선이도 모두 바쁘게 살았는데 뭐”
말을 하던 작은 누이가 갑자기 휴대전화 속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이 사진 봤어?”
지팡이를 집고 환하게 만발한 철쭉꽃에 감싸여 웃고 있는 엄마의 사진이었다.
“와. 이런 사진이 있었어? 언제 찍었어?”
처음 보는 사진에 큰누이가 신나서 물었다.
“엄마 집 근처에 모시고 나가서 찍었지. 누우시기 1년 전 사진일 거야. 너무 이쁘지”
우리는 멍하니 테이블 중앙에 놓인 엄마 사진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큰누이가 말했다.
“고맙다. 둘째야. 자식 노릇해주고 이쁜 사진 남겨줘서 정말 고맙네.”
사진을 바라보다 큰누이가 울컥하며 말했다.
“갑자기 왜 그런데! 엄마 멀쩡히 잘 계시는데. 언니 취했어!”
농담 섞인 작은 누이의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큰누이가 버럭하며 말한다.
“아니거든! 취하긴 내가 왜 취해. 정말 고마워서 그러지. 그나저나 대선아 오늘은 무슨 영화 볼까?”
갑작스러운 큰누이의 영화 질문에 삼남매는 빵 터졌다.
“들어가서 검색해보자. 틀어봐야 나는 잠들겠지만. 내일 아침에 병원 갈 때 나도 깨워서 같이 가고”
다시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야 하는 누이들은 일요일 오전 엄마를 찾아뵙고 점심을 먹은 후 헤어지곤 했다.

이 소소한 가족들의 한 끼 식사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한 번 한 번 가족들과 주말 시간을 보내며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이유가 없었다. 작은 누이에게 받은 철쭉 속에 환한 미소의 엄마가 왠지 쓸쓸해 보인다. 이미 지난 시간 속에 겪은 일들의 의미를 알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엄마의 병상은 삼남매에겐 새로운 가족애의 시작이었다. 그 의미를 모두 함께 느끼고 느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의미를 두고 삶을 꾸며 갈지 고민은 깊어져 갔다. 어디에 가치를 두고 어떤 의미를 만들고자 스스로 정했는지는 세월과 함께 현실에 펼쳐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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