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능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선일 May 26. 2020

5. 조건

“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여름의 무더위는 병원 생활에 커다란 어려움이다. 아무리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도 더위 속에 누워만 있는 환자들에게 더위만큼 힘든 것도 없을 것이다. 4월에 입원하신 엄마는 어느새 7월의 여름을 맞이하셨다. 3개월이 훌쩍 지난 것이다. 그 사이 간병인도 바뀌고 우리 삼남매는 계획한 데로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평일은 서울에서 고향을 왕복하고 금요일 퇴근과 함께 내려와 일요일 밤에 다시 올라가는 생활을 반복해 오고 있었다. 호리호리 했던 간병인은 걱정보다 엄마를 잘 챙겨주었다. 우리가 다행이다 싶어 마음을 놓을 때 즈음 간병인이 바뀌었다. 땅땅하고 좋은 체구를 가진 중년의 여성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간병일을 더 잘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몸보다 입이 바쁜 분이었다. 신기하게도 보살피는 사람의 모습이 환자분들의 표정으로 알 수가 있었다. 말씀도 못하시는 분들이지만 얼굴에 피곤함이 역력했다. 그리고 엄마는 욕창이라는 것이 몸에 생기게 되었다. 체위를 제대로 해주지 않고 조금만 소홀히 하면 생기는, 피부가 상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것이다. 속상함을 표현할 틈도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고통은 간병인의 말이었다.
“이 집 자식들은 들여다보질 않아. 할머니 그러려니 하세요. 긴병에 효자 없다고 어쩌겠어. 요즘 세상에 저 집처럼 엄마라고 매일 들여다보는 집이 이상한 거지. 그쵸?”
아무도 신경 안 쓰는지 엄마 옆 할머니 곁에 앉아 계속 말을 한다. 간병인의 말을 듣고 있는 할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엄마에게 생긴 욕창으로 이미 화가 나고 신경이 예민해진 우리였다. 큰누이는 가만히 듣고 있지 않았다.
“여사님! 그만하세요. 할머니도 저희도 다 듣고 있는데 하실 말씀이 아니잖아요!”
시원스러운 큰누이의 바른말에 간병인은 투덜거리며 자리를 옮긴다. 엄마의 욕창도 간호사들에게 들은 바로는 간병인의 태만으로 생겨난 것이었다. 때마침 간병인의 입이 큰누이의 레이더에 들어온 것이다. 혹시라도 엄마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항상 조심했다. 하지만 이 날 만큼은 쌓였던 마음이 터진듯하다. 왠지 모르게 병실 환자분들의 표정이 어두워보였다. 간병인의 말은 사실 맞는 말이었다. 온몸이 병상에 묶힌 채 화장실조차 가지 못하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간병인으로 인한 불만을 간호사실에 몇 번이고 말해도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간병인과의 일이 있고 며칠 후 간호사로부터 병원을 알아보라는 전화를 받았다.
“아니 의식도 없으신데 병원을 나가야 한다고요?”
“저희 같은 병원은 급성 환자 치료를 위한 병원이라 그래요. 어머님 같은 장기 요양이 필요하신 분은 보통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이원하셔야 돼요. 어머님은 호흡기와 기관 삽입을 하셔서 요양병원으로 알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의료제도에 무지한 나는 멍하니 숨을 가라앉혔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병원에 대한 것을 찾아봤다. 엄마와 같은 신경계 손상으로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경우 요양병원으로 모신다고 나와있었다. 그리고 병원을 옮겨야 하는 것은 나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불만 섞인 질문들이 인터넷에 가득하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여유가 있고 직접 챙겨드리고자 집을 병실처럼 꾸며놓고 자택 간호를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고 한다. 현실성은 떨어졌다. 누이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모두가 요양병원 조사를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요양이라는 단어에 공기 좋은 곳들을 대상으로 알아보기도 했다.


“우리 셋이 자주 찾아뵙기 좋으려면 서울 근교여야 하나?”
주말에 다시 모여 엄마를 뵙고 병원에 있는 단골 카페에 앉아 상의하던 중 큰누이 입을 열었다.
“언니랑 나는 버스로 다녀야 하니 대중교통으로도 갈 만한 곳이면 좋겠다.”
“그런가? 검색해보니 요양병원 엄청 많긴 하더라”
“정말 많아. 아프신 어른들 정말 많은가 봐”
“근데 어느 병원이나 댓글은 좋은데 겪어보질 못해서 믿을 수가 있어야지. 간병인도 걱정이고”
“나도 그래. 간병인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 냉정하게 보면 공기 좋다고 해봐야 매일 나오셔서 산책하실 것도 아니고..”
누이들의 대화는 병원의 위치에서 결국 간병인으로 향했다. 간병인이 바뀐 후 욕창으로 고생하시는 엄마를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도 계속 알아보다가 안사람 선배에게 한 군데 소개받았어. 시설은 오래되었는데 간병을 잘한다 하더라고”
나의 말에 누이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서울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걸린데. 전철역도 바로 옆이고. 도시 요양병원은 거의 상가 건물에 있는데 여기는 단독 건물이라고 하더라고. 어때? 굳이 공기 좋은데 할 것 없이 나라도 매일 엄마 찾아뵐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가만히 듣고 있던 누이들은 잠시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이래도 저래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작은 누이가 먼저 말했다.
“한 번 같이 가볼까? 언니랑 나는 주말에 찾아뵙고 평일에 대선이가 찾아볼 수 있으면 안심이지”
“그렇긴 하지. 노인네 어차피 누워계실 텐데 공기 좋아봐야 무슨 소용이야. 그나저나 간병을 잘한다고?”
“어, 누이야. 안사람 선배님이 시어머니를 얼마 전에 모셨는데 지금까지 다녀본 병원 중에 간병을 제일 잘한다고 추천해 주셨데. 간병인들이 성실히 잘해주시나 봐.”
“그럼 가보자 언니. 다음 주 토요일에 내가 서울로 갈테니 언니도 대선이네 집으로 올래? 거기서 병원 가보고 대선이 차로 같이 내려오면 될 것 같은데?”
“그래 그러자 그럼. 다음 주에 가보자”

그렇게 우리는 일정을 정하고 일주일 후 서울에서 만나 병원을 찾았다. 집에서는 차로 15분 정도 걸렸다. 이런 곳에 병원이 있을까 싶었지만 자그마한 주차장을 갖춘 햇살요양병원이 도로변에 있었다. 바로 옆 건물들은 유흥주점과 식당, 상가들이 이어지는 번화한 도로였다. 주차를 하고 입구에 들어서자 병원 특유의 소독 냄새가 났다. 원무과에 안내를 받아 2층에 있는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병실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모두 눈이 커졌다. 건물 모양 그대로 “ㄴ”자 모양의 병실은 입구에 간호사실이 있었다. 정면에는 좌우측 창가에 머리를 두고 다섯 병상씩, 그리고 중간에 파티션을 따라 다섯 병상이 놓여있었다. 우리가 놀란 것은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고 본 광경 때문이었다. 좌우측 창문 벽을 따라 길게 병상이 놓여있었다. 조금 좁게 느껴질 정도로 침대들이 놓여 있었고,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측에 열다섯 병상씩 길게 배치가 되어 있었다. 너무 많은 환자에 순간 모두 놀랐다. 간호사가 우리에게 운영되는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간병인은 세 명씩 팀을 이뤄 구역별로 배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조선족 사람들이었다. 깔끔한 실내와 병상들, 무엇보다 간병인에 대한 질문에는

“요즘 간병이 힘들다 보니 조선족 분들이 병원에서 숙식하며 하는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불필요한 말들 없이 더 잘하세요”

라는 간호사의 답변이었다.

모든 안내를 받고 병원을 나온 우리는 햇살요양병원으로 엄마를 모시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안사람 선배의 경험담과 실제로 본 병상들의 깔끔한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 병실에 들어가 너무 많은 병상에 모두 놀라긴 했지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매일이라도 편히 찾아뵐 수 있는 위치라는 것이 좋았다. 수많은 조건들이 있었지만 보호자 입장에서 우리는 선택의 폭이 크지 않음을 느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때론 현실적인 조건 속에 그저 수용해야 하는 상황들이 많은 듯하다. 병원을 옮기며 우리의 선택 조건은 의학적 치료보다는 엄마가 몸도 마음도 최대한 쾌적하고 편안히 쉬실 수 있는 방향으로 정했다. 더불어 그간 함께 못한 시간들을 병상에서라도 함께 하고픈 마음도 병원 선택의 조건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4. 박카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