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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입안에

by 우보

운동장에선 중간중간 자전거를 타기도 합니다. 자전거가 있는 친구들도 없는 친구들도 그곳에서 만나게 되면, 같이 타는 우리의 자전거가 됩니다.


저는 자전거가 없었습니다.

자전거는 그 시절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이었어요. 나중에 자전거가 생겼을 땐 왜 갖고 싶었는지 모를 정도로 금방 실증이 나버렸지만요. 얻은 교훈도 있습니다.


실증이 나도 물건이란 오래도록 닦고 쓰고 아껴줘야 한다는 걸요. 물건도 사람처럼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내가 만들어야 하는 관계이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것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때때로 실증이 관심으로 바뀔 때도 있습니다. 꼭 사람처럼 말입니다.


길지 않는 시간에도 자전거 타는 법을 스스로 배웠습니다. 그 시절엔 아무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10살 또는 그보다 어린 이들의 조언이란 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오직 시간과 경험이 무언가를 하게 끔 만들었어요. 어른이 돼서도 그렇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어른들도 충분한 기회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어른이 된 이후 였지만 말입니다.


자전거를 타는 방법은 쉽습니다. 겁을 조금만 내면 되거든요. 자전거를 잘 타는 기술은 또 다른 세계입니다. 방법은 깨칠 수 있지만, 내 자전거가 없다면 기술은 닦기 어렵습니다. 야구 방망이가 없어도 한두 번의 기회로 공을 칠 수는 있지만, 꾸준히 멀리 보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상용아. 잘 좀 쳐봐라. 왜 맨날 공이 위로 붕 뜨냐? 약간만 빨리 쳐봐."

"이번에는 너무 빠르잖아. 자 날 봐.

이렇게 공을 보면서 정확하게 치라니깐."


준민이가 우리들 중 가장 잘 치긴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저 그런 실력입니다. 윤기도 마찬가지이고요. 그저 자세만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준민아. 너도 그렇게 잘 치는 것도 아닌데, 잔소리 좀 그만해라."

"넌 그냥 조용히 있어."


친구들에 대한 말은 생각 없이 튀어나옵니다. 일말의 여지도 없이 말입니다. 말을 생각하고 해야 한다는 건 친한 친구가 아니라는 말과 같았습니다. 친한 관계에선 배려의 말은 없습니다.


서로 친하다는 얘기도 나누지 않았구요. 어쩌다 보이지 않는 배려된 행동만 있을 뿐이지요. 물론 그 친구는 모르게 말입니다. 남자들의 세상에서 의도된 배려가 들키는 것 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루라는 야구 비스무리한 게임을 하곤 했습니다. 우리에겐 야구 비슷한 걸 한다는 점은 앞서가는 어떤 느낌을 받게 했거든요. 분명 하루는 축구보단 고급스러웠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 중요했지요.


'우린 다르다.'

'다른 친구들이 공을 찰 때 우리는 야구 방망이로 공을 띄운다.'

'우아한 규칙으로 새로운 게임을 만들었다.'

'몸으로 싸우지 않는다. 방망이로 정확하게 친다.'


우리 게임에 동참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어쩌다 옆에서 보는 1, 2학년 동생들이나 관심을 가졌어요. 제가 보아도 우리가 만든 이 '하루'라는 게임은 야구의 재미있는 부분은 빼버리고, 형태만 비슷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럴 듯하지만, 재미는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였습니다.


하루는 1루, 2루, 3루를 돌면 '하루'가 된다고 붙여졌습니다. 서로 자기가 이름을 지었다고 주장했지만, 정확한 증거는 없었어요. 하루란 이름은 야구가 되기도 하고 소프트볼이 되기도 했지만, '하루'라는 이름이 참 멋쩍었습니다.


"얘들아. 우리 다른 놀이하자."

"그래. 넷이만 하니깐 좀 지루하다."

"자전거 경주 할까?"

"내기로 하자. 자전거 두대니깐 돌아가면서 타는걸로 할까봐."


재미가 없는 '하루'는 항상 첫번 째로 시작하는 게임이었습니다. 그 만큼 아주 빨리 끝나기도 했습니다. 하루를 빨리 끝내고 다른 놀잇거리를 찾는 것이 좋았습니다. 우리들의 몸풀기 게임 같은 것이었어요.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을 벗어나 보기로 했습니다. 운동장에선 돌면 아마 빙빙 어지러울 겁니다. 2명 씩 짝을 지어 누가 빨리 운동장으로 돌아오나 하는 방법이지요. 우리는 돌아오는 지점을 '연무 오락실'로 정했습니다.


"우리 둘이 먼저 갔다올게."

"준비. 땅."


저와 윤기가 먼저 출발하기로 했어요. 나는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았습니다. 윤기는 저 앞을 가고 있었어요. 속으로 자전거 시합에서 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열심히 따라만 가기로 한거죠. 친구는 말할것도 없고 누군가를 이긴다는 것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쓸데없는 힘빠짐 같았거든요. 지면서도 이긴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 더 좋았구요.


그 날은 날씨가 여름 같이 더웠습니다. 땀이 흘러내렸고, 바람이 저를 맞아주었지요. 그해에 처음 만난 땀이었습니다.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게 즐거웠습니다.


코도 벌렁거렸습니다. 크게 벌렁일 때마다 더 바람이 들어왔습니다. 작게도 코를 살짝 벌렁여 보았습니다. 입도 벌렸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입안으로 가득 가득 머금어졌습니다. 바람이 입안에서 공기로 변했습니다.

어느 덧 윤기와 나란히 달리고 있었습니다.


"곧 연무 오락실이야."

"연무 오락실에서 돌거지?"

"그래. 마음 같아서는 게임 한판 하고 싶다."

"나도 그래."


오락하는 마음으로 입을 더 크게 벌렸는지 모릅니다. 왜 입을 계속 벌리고 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바람을 입안에 받아들이는게 좋았는지도요.


그때 였어요. 벌이 입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벌레를 먹은 줄 알았어요. 벌은 안을 이리저리 부딪히며 저만큼이나 당황한 것 같았습니다. 벌은 입 천장 목 가까운 곳에 침을 놓았습니다.


벌과의 사투에서 진 저는 그대로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동시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사실 쓰러져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럴 때 쓰러지지 않는다면 언제 쓰러진단 말입니까?


자전거 속도가 줄어들며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며 바닥에 쿵하며 넘어졌어요. 연무 오락실이 저 너머 있었고, 갑자기 눈 앞이 흐려졌습니다. 스스로 이럴 땐 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아픔이 머리로 전해졌고, 저는 이대로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눈도 감았습니다. 쓰러지고, 기절한 듯 보이고, 눈도 감았습니다. 이 모든게 머릿 속에서 슬로우 모션처럼 꼭 영화에서 본 장면을 기억하듯 완벽하게 실행했습니다.


"야. 왜 그래? 괜찮아? 갑자기 넘어져서 놀랐잖아."


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오물거리며 말했습니다.


"버레 소여서..이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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