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터벅 길을 이기며 나아갔습니다. 주변엔 평소에 흔하던 풀벌레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늘에선 외눈박이 달이 힐끗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달이 찰 때가 되면 저의 기분도 기대로 가득 차오르는 듯합니다. 달이 홀쭉해지면 마음도 같이 쪼그라드는 듯합니다. 오늘은 달이나 제 마음이나 허기집니다.
어두워지면 집 밖에 나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그날의 놀이는 끝난 것.'이라는 어떤 잠재의식이 친구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저쪽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면 놀이의 문이 닫히는 신호였어요.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른 걸 알았습니다. 규칙에서 조금 엇나갈 용기 같은 것이 생겼거든요. 집에 혼자 있으려니 좀이 쑤시기도 했고요. 이것도 어린 나이에 비하면 생각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일지도요.
'저녁에 혼자 나가면 혼날 텐데.'
'아빠가 집에 오기 전에 돌아오면 되겠지.'
저는 분명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원하는 방향일지는 모르지만, 제 마음에 드는 방향일 때도 있었습니다. 감정이 아침저녁때 다르기도 했습니다. 어떤 약속을 때때로 어기기도 했습니다.
최근엔 반 구호도 잘 따라 하지 않았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엄숙한 표정으로 '할렐루야'를 외치셨습니다. 그 이유는 몰랐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은 교회에서 하는 말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안경을 쓰고 착해 보이는 선생님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따라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저 같은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입만 뻐끔거렸습니다. '루야' 소리가 나지 않도록 말입니다. 반항의 시작일수도 있고, 전체적인 하나의 틀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었습니다.
시멘트로 바른 동네의 담벼락을 따라 계란 집에 다다랐습니다. 계란이 판으로 쌓여있던 문은 닫혀 있었고, 모퉁이에 오락실이 보였습니다. 계란과 닭 냄새가 같이 섞여 나는 듯했습니다. 계란 집 아주머니는 빨간 옷을 입고 계란 판 뒤에 앉아 있는 걸 좋아했습니다. 한 손엔 커다란 파리채를 들고 계란 위로 날아오르는 벌레들을 잡곤 했습니다.
꼭 계란이 부화되길 기다리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연한 흙색 계란 틈 사이에서 빨간색은 옷은 눈에 띠었습니다. 아주머니의 접힌 뱃살은 빨간 옷 사이에 끼어서 어두운 적색이 되어 더 눈에 띄었고요. 저라면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을 것 같은데 아주머니는 그런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빨간색 옷 만 입어댔습니다.
계란 집 앞에 서면 어둠이 다가온 상가들 사이에서 오락실이 달처럼 노란빛을 문밖으로 내었습니다.
"끼이익" 오락실 문을 열었어요.
오락실 안은 담배연기가 자욱한 어른들의 세상 같았습니다.
'휴. 숨도 못 쉬겠다.'
숨을 못 쉬기도 했지만 마음이 더 갇힐 것 같았어요. 누군가로부터 해코지를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돋아났어요. 낮의 오락실과 밤의 오락실은 다른 정취를 내뿜었습니다. 이 시간의 오락실엔 제가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럴 땐 도망가야 했습니다. 걸어 나왔지만, 마음은 꼭 도망 나온 듯했어요.
그대로 밖으로 살며시 나왔습니다. 언뜻 안에서 상철이 형을 본 듯도 합니다. 상철이 형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더 조심스레 걸었습니다. 상철이 형과는 악연이 있었거든요.
얼마 전이었습니다. 상용이는 위 마을에 살고, 저는 건너편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마을이지만 큰 산 아래 상용이 집, 작은 산 아래 우리 집처럼 나뉘었어요. 위쪽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동그란 길을 따라가야 해요. 동그란 길을 그려보면 고구마 모양이 됩니다. 한쪽으로 걸어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는 고구마 길이라고 불렀어요. 줄여서 '고 길'이라고도 했어요.
고구마 길이 품은 곳에는 공터가 있었습니다. 더러 파, 상추 등을 동네 어른들이 기르기도 했습니다. 우리끼리 모여 놀기도 했고요.
"고 길에서 보자."
"고 길에 있는 당근이나 빼서 먹자."
동시에 여러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고구마 길의 양편에서 서로 외치면 목소리가 들릴만합니다. 목소리가 큰 준민이가 외치면 아주 잘 들렸죠. '고 길'에서 그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상용이는 세 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저와 친하면서도 형들을 앞세워 저를 괴롭힐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상용이가 혼자 있을 때 복수하곤 했어요. 같이 놀면서도 때론 서로를 괴롭혀야 직성이 풀리는 애증의 관계였습니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끊임없이 상대의 잘못으로 이어지는 무한대처럼요.
때때로 둘이 있었던 일을 상용이가 형들에게 일러바치곤 했습니다. 상용이의 큰 형 상만이 형은 성격이 상용이처럼 유순한 편이었어요. 나이도 훨씬 많아서 저한테까지 뭐라고 한 적은 없었어요. 반면 둘째 형 상철이 형은 야무진 성격이었어요. 무엇이든 간에 단정 짓기를 좋아했습니다. 동생이 당하는 걸 보지 못하는 성격이었어요. 오히려 괴롭히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요.
그날도 고구마 길에서 서로 소리를 외치며 각자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상용아. 아까 너 게임 진짜 못하더라."
"야. 너도 못하기는 마찬가지야!"
"아까 선생님한테 곱셈 못한다고 혼났지?"
"야. 그런 걸 형들 있는데 왜 말해!"
이런 식이었습니다. 저도 상용이를 놀리는 걸 참 즐겨했어요. 그때 상용이 쪽에 상철이 형이 다가오는 게 보였지 뭐예요. 둘이 쑥덕쑥덕하는 게 이쪽에서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집 쪽으로 얼굴을 돌렸죠. 그때였습니다.
'딱'
'따닥'
돌이 제 옆에 떨어졌습니다.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돌이 제 이마를 쳤습니다.
"아야"
피가 났습니다. 고구마 길의 반대편에서 상철이 형이 온 힘을 다해서 돌을 저한테 던진 겁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돌을 던졌습니다. 바로 제 앞에 떨어졌지요.
"준기 너 상용이 괴롭히면 죽는다!"
"...."
저는 돌 맞은 벙어리가 되어 털털거리며 신발을 끌고 집으로 갔어요. 방안에 들어가서 대자로 누워버렸습니다. 이마는 부어서 아프고 피도 조금 났습니다. 서랍을 열어 하얀색 반창고를 찢어서 붙였습니다. 돌을 던지는 상철이 형보다 옆에서 웃고 있던 상용이가 더 미웠습니다. 어쨌든 매일 같이 노는 사이인데 이렇게 비겁하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나도 상철이 형 같은 형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그렇게 때리고 돌 던지는 나쁜 형은 없는 게 나아.'
대자로 누워 형들이 있는 상용이가 부러웠습니다. 형들이 있으면 얼마나 힘이 날까요? 학교에서 괴롭히는 친구들도 없을 거고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도 저는 형제처럼 지지하는 관계가 그리웠던 것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며 밤의 오락실에 와 있습니다. 밖에서 서성이며 돌을 차고, 유난히 내 마음 같은 달을 보고 있었습니다. 주인 할머니가 어디선가 오락실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오락실에 다가오자, 저는 할머니께 고개를 푹 숙이며 지난번 감사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고개만 끄덕하고 들어가신 할머니는 잠시 뒤에 나오더니 저에게 백 원짜리 동전을 하나 쥐여주었습니다.
'백 원'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백 원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할머니가 주신 백 원으로 오락은 못할 겁니다. 백 원으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우울하던 마음도 잊고 다시 집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왜 백원을 또 주신 거지?'
궁금증이 피워 올랐지만 좋은 기분에 잊어버리고 기분 좋게 걸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