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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깐

by 우보 Jan 07. 2025

“준기야. 우리 학교 80년이나 된 거 아냐?”     

“뭐? 그렇게 오래됐다고?”      

“그럼 머냐. 일본한테 지배당했을 때도 있었을 건대?”     

“맞아. 그렇대.”       

         

“바깥 변소 있잖아?”     

“응. 몇 년 전까지 쓰던데 말이지?”     

“밤에 거기 변소깐에 쭈그리고 있으면 문 틈으로 일본말이 들린대.”   

   

“왜 일본말이 들려?”     

“일본말로 말 안 듣는 아이들 잡으러 다니는 거지.”      

“귀신이야? 거짓말마. 귀신이 어디 있냐?”     

“진짜야. 우리 형이 그랬어”               


상용이는 형에게 들었다고 박박 우겼습니다. 학교 건물 뒤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이어져있습니다. 평지를 걷는 것 같지만 올라서면 내려다보입니다. 본관 건물에서 떨어진 그곳에 하늘색으로 바랜 변소 건물이 있습니다. 우리가 변소라고 부르는 건 옛날 푸세식 방식이었기 때문이에요. 


걸어가며 변소 벽을 보면 페인트칠이 벗겨져 덜렁거리는 게 보였습니다. 꼭 그 모습이 어른거리는 나방 같았어요. 해 질 녘 바람에 나부끼는 껍질들은 꼭 나방 한 무리처럼 보였습니다. 해가 넘어갈 때 노랗고 불그스름한 색감들은 더더욱 나방 무리들에 색을 더해주었지요.


변소에서 소변기 앞에 서면 창을 통해 학교가 아주 잘 보였어요. 변소 건물은 단연 경치가 가장 좋은 자리였습니다.      


“우리 형이 얘기해 줬어. 예전에 일본인 교장이 있었는데 죽고 나서 학교 안에다가 무덤을 뒀대.     

 그래서 밤만 되면 학교를 순시하면서 이리저리 염탐하고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을 잡아간대.”

      

“어디로 잡아가?”      

“일본 교장이 어디로 잡아가겠냐?”     


“예전엔 여기 국민학교 말고 고등학교까지 같이 있었던 거 알지? 그래서 고등학생들을 전쟁터로 내보내었다는데.”      


“학생들을 진짜로?”     

“그렇대. 심지어 여학생들도 꼬드겨서 전쟁터에 보내고 그랬대. 그래서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 그러고 다닌다나.”                


“야. 멍청이들아. 아직도 그 얘기를 믿고 있냐?”     

“야 인마. 진짜야 맞다니깐.”      

“우리 누나가 지난번에 나한테 뻥치다가 내가 너무 무서워하니깐 오래된 전설이래.”       

                  

갑자기 끼어든 윤기의 말에 우리 둘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 변소는 우리들의 청소구역이었습니다. 칸마다 변기칸이 문으로 막혀있고, 소변보는 곳은 일자로 주욱 길게 있습니다. 소변보는 곳 바닥은 시멘트로 성의없이 발라져 있고요.          


“아니야. 우리 형이 학교 다닐 때 들었는데 변소 자리가 원래 그 일본인 교장 무덤 자리래.”     

“뭔 소리야. 왜 무덤이 있는 곳에 변소를 만드냐?”     


“왜 만들었겠냐. 그 교장이 얼마나 학생들을 꼬셔서 나쁜데로 보내서 복수하려고 그런 거지.”               

“윤기야. 준민이 말도 맞는 거 같은데. 변소 자리 봐봐. 소변볼 때 학교가 다 보이잖아. 딱 명당 무덤자리야.”     

“음...”               


그때는 다들 무덤을 썼고, 집안에서 성묘를 많이 다닐 때였습니다. 가까운 들로 산으로 다닐 때 햇볕 잘 들고 경치 좋은 곳은 꼭 무덤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학교에서 변소 자리가 가장 좋은 위치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지요.          


그곳 변소를 이용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셋은 꼭 그곳에 오면 소변을 보곤 했습니다. 아무도 청소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오줌을 갈기며 이러쿵저러쿵 온갖 얘기를 했습니다. 


"연무 오락실 할머니도 귀신같아."

"그러니깐. 그 할머니 방 봤냐? 일본말로 된 책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일본 사람 아냐?"


"일본 사람이 왜 우리 동네에서 그것도 오락실을 하냐?"

"오락실이 어때서? 스트리트 파이터나 게임들 하다 보면 일본말 나오더구먼."

"그 말도 맞네."

"희멀건 소리 그만하고 오락실이나 가자."


그 소리에 맞춰 우린 바지 지퍼를 '쓰윽' 합창하듯이 올렸습니다. 그리고 일렬로 학교 운동장 쪽으로 향했어요. 변소는 언덕에 있어서 한 줄로 길을 따라 내려왔습니다.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저는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준기 또 저러네."

"지 달리기 잘한다고 또 날뛴다야."

"야. 이겨보던가!"


저는 쌩하고 달리며 교문까지 갔습니다. 준민이와 윤기가 온 힘을 다해 달려오는 게 보였습니다. 상용이는 뒤뚱뒤뚱 그 뒤를 따라왔고요. 헥헥거리며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일렬종대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비디오가게 갈까?"

"오호 좋아. 오랜만에 비디오가게 가서 만화영화 보여달라고 하자."


우린 연무 오락실에서 비디오가게로 목적지를 바꾸었습니다. 비디오 가게 문 앞에는 온갖 포스터들이 붙어져 있었습니다. 


비디오 가게 문을 열 때는 한 남자와 눈을 마주쳐야 합니다. 감색 옷에 망토를 두르고는 쪼그려 앉아 있습니다. 그 남자 옆에는 개인지 늑대인지 하는 한 마리가 있고요. 그 포스터의 남자와 눈을 마주치며 문을 엽니다. 


"어이. 꼬마들. 어서 와라."

"안녕하세요. 반 아저씨."


"얌마. 형이라니깐 뭔 반 아저씨야."

"아저씨 보단 젊으니 '반 아저씨'죠."


윤기의 말도 안 되는 언어유희를 점장 형은 잘 받아주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새 통 안보이더만."

"형. 좀 재미있는 만화 들어왔어요?"


"요샌 뭐 특별한 건 없는대?"

"근데 형. 저기 연무 오락실 할머니 알죠?"

"알지. 말해 본 적은 없어."


"그래요?"

"오락실 할머니는 왜 물어?"

"할머니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할머니 목소리 듣는 게 많이 중요하냐?"

"그건 아닌데. 궁금해서요."


"이유가 있으실 것 같기는 하다. 사람이 왜 말을 안 하겠냐? 둘 중 하나겠지."

"뭔대요?"


"말을 못 하거나 또는 안 하거나."

"말을 안 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단정적으로 말했습니다. 지난번 벌에 쏘여 할머니 방에 누워있을 때 말을 참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분명 할머니 방에는 책이 많아 보였습니다. 글도 읽을 줄 안다면 말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난번 할머니 방에 있었던 적이 있었어요."

"어쩌다?"

"사건이 좀 있어서요. 근데 그때 일본말로 된 책들이 많이 보였어요."

"그래? 그건 좀 의외네. 분명 일본어 책이 있으면 그걸 읽으신다는 건대."


책이란 나를 포함한 사총사 모두 어색한 도구였습니다. 바닷가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우리가 그물을 상상하는 것과도 같아 보이는 것이었죠. 그만큼 우린 책을 안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읽으라고 하는 어른들이 없었거든요. 물론 선생님은 제외입니다. 선생님은 어른의 범주에 들어간다기보단 감독관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오락실에 가면 좀 더 자세히 살펴봐."

"살펴봐야 다 일본말인데 저희가 어떻게 알아요."

"그렇긴 하다만. 내가 가서 기웃거릴 수도 없고 말이지."


점장 형은 비디오 가게를 떠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비디오 가게를 운영했지만, 항상 무언갈 끄적이거나 책을 뒤적이고 있었어요. 때때로 가게 문을 며칠 씩 닫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 뒤로 사정을 물어보면, 몸이 안 좋았다고 대충 얼버무리곤 했습니다. 


'우리 동네는 이상한 사람들만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오락실 할머니는 그 시끄러운 공간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내고, 비디오 점장 형은 가게를 며칠 씩 비우고 사라지고, 닭집 아주머니는 빨간 옷만 입는 이곳. 참 의뭉스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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