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보면 별이 보이지? 가장 밝은 별은 뭘까?"
"...."
갑자기 교실이 조용합니다.
"모두들 하늘은 안 보고 지내나 보네요."
"선생님, 북극성이요."
조용하던 교실에 유일하게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는 친구. 바로 박상희입니다. 똑 부러지고 공부도 잘합니다. 상희가 앉아있는 자리를 지나면 좋은 향이 은은하게 퍼져나갑니다. 수년이 흐른 후 상희의 얼굴은 흐릿해졌지만, 그녀 주변에서 나던 향은 잊히지 않고 기억 중에 뒤엉켜 있었습니다. 다섯 가지 감각 중 마지막까지 몸이 기억하는 것은 코로 맡은 냄새가 가장 강력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맞아. 북극성. 그렇지만 그 말은 정답이지만, 정답이 아니기도 해."
"...?"
"북극성은 우리 눈에는 가장 밝게 보여요. 그렇지만 별의 밝기 등급에서는 가장 밝은 등급은 아니야."
"그건 왜 그런 거예요?"
"눈에 보이는 것과 실제 별이 빛을 내는 건 다르거든. 수성, 금성이 북극성보다 잘 보이지만 이들은 행성이지 별은 아니잖니."
"별에도 밝기를 나타내는 등급이 있나요?"
"맞아. 가장 밝은 별을 0등급이라고 정했어요. 북극성은 그보다 낮은 1등급이야."
수업 중 선생님과 북극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학생이라니 감탄이 속에서 퍼졌습니다.
그저 멍하게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수업 중엔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돌아다닙니다. 한 시간이면 세상 재미있는 이야기를 꾸며 냈습니다.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철이 들수록 잊어 갔습니다.
앞에 앉은 상용이가 고개를 돌리며 밥 먹는 시늉을 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먹어치우자는 신호였어요.
수업이 끝나자 우린 도시락을 가지고 달렸습니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본관 동쪽 출입문 바깥쪽 뒤에 둘러앉았습니다. 교실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은밀한 곳입니다.
"준기야, 너는 북극성에 대해 알았냐?"
"북극은 알지만 북극성이라는 건 처음 들었다야."
"별이 뭔데?"
"별은 별이지. 밝은 거. 하늘에 떠 있는 게 별이잖아."
"바보야. 별은 스스로 빛을 내는 거지. 달은 태양 같은 별의 빛을 받는 거고."
"빛을 받아서 보인다는 거네."
수업 시간에 했던 이야기들을 요리 저리 자르고 붙이며 있습니다. 이것도 복습이라면 복습입니다.
"근데 상희 진짜 똑똑하다."
"그러니깐. 원래 야무진 건 알았지만. 선생님이 상희만 보고 얘기하더라."
"그래서 좋았다. 상희만 봐서. 난 몰래 그림 그리고 시간 보냈지." 윤기가 밥을 한 주걱 넣으며 말했어요.
우린 종종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까먹곤 했습니다. 일어나면서부터 움직임이 활발해서인지 꼭 쉬는 시간에 배가 고팠습니다. 도시락을 먼저 먹으면 좋은 점은 점심시간을 온전하게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반찬들은 가지각색입니다. 단무지, 알타리, 소시지 등등.
심지어 어떨 땐 굴비를 싸 오기도 했습니다. 같이 나누어 먹었지만 제 반찬은 인기가 없는 날이 많았어요. 주로 단무지 짠지와 멸치 볶음을 주로 싸왔거든요.
밥이 든 보온 도시락을 들고 젓가락을 상대편 반찬통에 뻗대었어요. 콩나물이 오고, 시금치가 가고 정신없이 먹다 보면 결국 비빔밥 처럼 되었습니다.
"얘들아. 복덕방 아저씨가 말한 할아버지 찾아야지."
"할머니일 수도 있지."
"아니야. 눈을 찡그리는 걸로 봐서는 할머니는 아닐 거 같아."
"난 처음부터 할아버지일 거 같았어. 왜냐면 꼭 으스스한 일들은 할아버지들과 연결되거든."
"할머니들이 더 으스스하지 않냐?"
"야. 생각해 봐. 주변에 할아버지들이 많냐? 할머니들이 많냐?"
"시장이나 돌아다니는 분들은 거의 할머니 던대."
"그러니깐 할아버지가 으스스한 거야."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일단 찾아야지. 근데 어디서 찾지? 이리저리 다니면 찾을 수 있겠지."
"그렇게 찾으면 어느 세월에 찾냐?"
우린 찾는다는 말을 수백 번을 써가며 머리를 맞대었어요.
"맞아. 오락실 할머니 나이도 있는데 보고 싶은 분이면 찾아드려야지."
"보고 싶은 분이 아닐 수도 있지. 한 번도 안 본 사이라잖아.
며칠 만에 우리들은 복덕방 아저씨가 준 정보로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앞부분을 기억하고 나머지를 잘라서 기억하면, 윤기는 중간만 기억하고 앞 뒤는 잘라먹는 그런 식 말입니다. 기억이라는 건 믿을 수가 없다는 걸 10살짜리들이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정확한 사실일 수밖에 없었어요.
추억이 된 기억은 뇌에 남겨집니다. 처음 조금, 중간 조금, 끝 조금을 이어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합니다. 그렇게 중간중간 슬픈 기억은 잘라내고 좋은 기억이 만들어집니다. 어른이 된 후 이처럼 비슷한 얘길 듣고 나서 전 저의 뇌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상희한테 물어보자."
"상희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냐?"
"분명 상희는 우리보단 나은 생각을 할 수도 있을걸."
"차라리 비디오 점장 형한테 가는 건 어때? 점장형은 어른이니깐 더 잘 알려줄 것 같은데."
"점장 형한테도 물어보고, 상희한테도 물어보고."
"상희는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야. 가보자."
우린 그렇게 결론을 냈습니다.
4명의 머리보단 6명의 생각이 더 나을 거란 걸로요.
의견이 하나로 모이자 남은 도시락 밥과 반찬들은 순식간에 입으로 들어갔습니다. 서로 입안에 가득 든 음식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며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순간 누가 빨리 넘기나 시합하는 것처럼 마구 씹기 시작했습니다. 준민이가 입을 쩍 벌리고 입안을 보여주며 자기가 이겼음을 알렸어요.
교실로 돌아가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습니다. 중간중간 4명이 상희를 힐끔거렸습니다. 상희도 우리가 쳐다본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습니다. 종이 치자 마자 우린 상희에게 갔어요.
"상희야. 물어볼 게 있어." 준민이가 단도직입으로 질문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힐끔거렸어? 뭔데 그래?"
"우리가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네가 좀 도와주라."
"사람? 생뚱맞은 말이네. 누구를 찾아야 하는데 4 총사가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있고 그래?"
"우리도 아는 건 별로 없어. 그냥 노인이라는 것과 얼굴에 어떤 특징이 있는 정도라고 할까?"
"그래?" 상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습니다. 특징이라는 걸 물어볼 줄 알았지만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깐. 이 노인 분을 찾아야 한단 말이지?"
"응." 모두가 같이 대답했습니다.
"아주 쉽네. 우리 동네마다 노인정이 있는 걸 알고 있지?"
"아. 맞아. 마을마다 회관이 있는데도 있고 노인정 있는데도 있지. 그 노인정만 다니면서 찾는다고?"
"그렇지. 학교 주변으로 노인정만 찾아서 하나씩 정복하면 되는 거야. 근데 무작정 찾아가서 물어보면 예의가 없다고 소문날 수도 있어. 그러니깐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서 가야지."
"어떻게 이유를 만들지?"
"조사 학습이라고 하면 되지. 노인분들이 알고 있는 고장 이야기나 옛날이야기 적어오는 숙제가 있다고 둘러대는 거야. 어때?"
우린 상희의 계획에 완전한 찬성을 했습니다. 역시 상희에게 기대를 건 우리를 더 칭찬하고 싶었습니다.
"노인정을 찾아가서 노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런 특징이 있는 분이 있는지 찾아보는 거야."
"그렇네. 이야기를 들으려면 시간이 걸리니깐. 충분히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보통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옆 동네라도 서로 알고 있으니깐. 너무 티 나지 않게 물어봐도 돼지."
"상희야, 고마워. 얘들아 가자." 윤기가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야. 묻기만 하고 그냥 가냐. 나중에 찾으면 알려줘."
이젠 행동에 옮길 차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