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바람이 무척이나 불었어요.
섬 전체에 어떤 기운이 몰려오는 듯했어요.
그리곤 쾅 소리가 나며 폭탄들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락실 할머니는 누구를 보는 듯 안 보는 듯 말을 시작했습니다. 그저 저는 아저씨 옆에서 그 얘기를 들은 뿐이었습니다.
"새벽에 정신없이 일어났어요.
그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곤 어떻게 하셨어요?"
"그 당시엔 방공호가 있었기 때문에 모두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알고 있었지.
가장 어렸던 나는 명기 언니를 따라다니곤 했는데 언니가 내 손을 잡고 앞서 갔어."
"바다에서 폭격을 했으면 공포가 엄청나셨을 거예요.
그래도 다행히 대피하셨군요."
"무사히는 아니었어요. 옆 방에서 있는 사와코라는 아이가 안 보이는 거야.
명기 언니는 일본어를 잘했기 때문에 사와코와는 친했거든."
모르는 이름들 사이에서 나는 그 시절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전쟁이 났었고, 배에서 폭탄이 섬으로 날아드는 그런 모습들. 상상력의 한계인지 정말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나 하고 의심스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뒤 돌아보니 사와코가 쓰러져 있더군. 우리를 부르는 거야.
하지만 한쪽 다리가 보이지 않고 피를 흘리고 있었어."
"...." 복덕방 장씨 아저씨는 말이 없었습니다. 어떤 질문도 할머니의 그 기억에 무엇을 더해줄 수 있을까 봐 입만 벙긋하는 듯 보였습니다.
"다가가지 않았어...
몇 년을 힘든 일을 겪었던 동무 사이였지만, 그냥 도망갈 수밖에 없었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장씨 아저씨는 작게 말했습니다.
오락실 할머니는 저를 지긋이 보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를 바라보는 눈 속에서 그날의 기억을 더듬듯 꼭 눈을 감아보였습니다.
"그랬으면 좋으련만.
이처럼 작은 아이가 그렇게 피를 흘리고 있더라도 그럴 수 있었을까?
난 아마 다시 도망치지 않았을까 싶어. 무서웠지. 다른 표현으로도 알 수 없는 무서움이 서렸지."
그날 다람쥐 잡이에 지친 나는 오락실에 들어왔다가 그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오락실 할머니가 하는 과거의 이야기들이 귀속을 타고 들어왔어요. 알 수 없는 표현들이 이루어졌지만 무척이나 내 귓가를 돌며 신경 쓰이게 했어요.
"누군가를 버린다는 건 나를 버린다는 것과 같아."
"정말 슬픈 일이란다. 정말로..."
나에게 넌 누구도 버리지 말 거라고 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누군가를 버린 적도 없었지만 버린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네 일상은 약한 것들을 괴롭히고 짓밟는 일이 당연하게도 받아들여집니다. 다람쥐라는 존재가 그런 것일까요? 그저 살아가는 한 존재이지만 살기 위해 사내아이들의 기운을 벗어나려 발버둥 쳤을 겁니다.
할머니의 말은 나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내 평생 다람쥐를 볼 때마다 죄의식에 사로잡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