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오는 것은 학교생활의 가장 큰 부분입니다. 일상적으로 운동장에 온다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운동장은 언제나 우리에게 열려있었고, 그곳은 그날에 따라 다른 공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월요일의 운동장과 수요일의 운동장이 내미는 모습은 달랐습니다. 토요일 오후의 아이들이 빠져나간 적막한 운동장은 자유스러우면서 일주일간 아이들은 받아낸 것처럼 고단스러워 보였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학교를 빠져나가지 않고 학교에 남는 건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어딘가 불편함이 가미되었어요. 이 날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누가 남자고도 안 했지만, 우린 학교 뒤편에 있었습니다.
학교 본관 뒤쪽 길을 따라 야트막한 언덕으로 오르며 변소깐을 지나갔습니다. 얼마 전 보았던 일본인 교장이 진짜로 이 학교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귀신이란 존재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반씩 거치고 있는 듯했습니다.
서로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지만 그 후론 우린 변소깐 안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지나면서도 돌아가거나, 보여도 얘기하지 않는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여름은 어느덧 우리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작년의 여름은 기억도 하지 못했지만, 올해 여름은 더워지고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지구가 더워진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 말을 믿기지는 않았습니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대." 윤기가 말하자,
"지구가 더워지는 속도보다 네가 살찌는 속도가 훨씬 빨라서 그래." 준민이가 상용이를 타박했습니다.
"맞아. 너 라면 좀 작작 먹어라." 제가 거기에 소금을 더 뿌렸고요.
"너네들 말이 너무 심한 거 같다."
라면을 먹을 땐 형들이 뺐어 먹어 4~5개를 끓여야 한다는 상용이의 변명은 믿지 않은지 오래였습니다.
여름이 되어 몸이 드러나자 상용이 뱃살이 옷과 딱 붙어 있는 걸 매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도 옷과 살이 딱 붙어 옷이 가죽처럼 보였습니다.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운동장을 빠르게 벗어났습니다. 꼭 어디론가 가야 할 것처럼 말입니다. 5일 연속으로 왔던 학교의 굴레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날 우리 네 명은 하릴없이 나무 막대기를 들고 뒷산에서 땅을 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살리지 못한 시간이란 이런 종류의 것입니다. 허투루 시간을 쓰는 일이 없는 우리는 연무 오락실 할머니가 찾고자 하는 사람을 찾는 일을 주절거리고 있었습니다. 실천만 하면 될 일을 말로 대신해서 자신들에게 변명하고 있었습니다.
주저하는 모습과 땅만 치는 행동들. 시간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다람쥐가 갑자기 우리 주변을 지나 빠르게 뛰어갔습니다.
"다람쥐다."
"왜 나무로 안 올라가지?"
"학교에 살아서 우리가 익숙한가 봐."
"따라가 보자."
우리는 바로 일어나 막대기를 들고 다람쥐를 쫒기 시작했어요. 다람쥐는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뛰는 듯 보였습니다. 학교 주변에 자리 잡은 다람쥐라서 아이들이 있는 모습은 나무 배경처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쟤 좀 봐. 너무 얄미운데?"
"맞아. 나무로 올라가지도 않고, 땅으로 다니네. 자기가 고양이라도 되는 줄 아나 봐."
다람쥐는 사람이 보이면 으레 나무 위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동안 보았던 짐승들은 그런 모습을 보였거든요. 이 다람쥐는 달랐습니다. 우리를 유인하고 약 올리는 게 분명했습니다.
"아. 약 올라. 이 다람쥐야!" 제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람쥐는 그래도 나무에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4명 모두 나무 막대기를 들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땅을 치며 위협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제야 다람쥐는 나무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4명이 다람쥐가 올라가지 못하게 땅을 막고, 길을 막아 운동장 쪽으로 다람쥐가 가게 했습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느덧 다람쥐는 나무가 없는 운동장에서 필사의 달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헉헉거리며 결국 다람쥐는 운동장으로 내달려, 벤치를 가리는 나무 차양으로 올라갔습니다. 벤치 주위로 쇠로 대들보를 잡고, 덩굴나무로 자연 차양이 쳐진 이곳은 다람쥐에겐 나무와 같았습니다. 우린 차양 밑에서 1차전 승리 후 다람쥐의 반격에 힘이 빠져 땀을 삘삘거리고 있었어요.
"와. 역시 빠르네. 못 따라가겠다."
"쟤 좀 봐. 놀라서 못 내려오잖아. 그래도 여기까지 몰아온 건 대단하다."
"근데 왜 다람쥐를 이렇게 모는 거지?"
"..."
당연한 듯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햇볕은 강했고 그늘이 없는 곳에서 다람쥐는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늘을 찾아가야 했거든요. 반대로 우린 차양 밑 그늘에서 언제 다람쥐가 내려올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습니다.
다람쥐가 내려오며 우릴 피해 다른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서 멈추어야 했지만 우린 너무 심심했어요. 그대로 막대기를 들고 운동장을 막아서며 다람쥐가 가는 길은 어디든 방해했습니다. 그렇게 학교 밖 공터에 이르렀습니다. 네 명 모두 땀에 절어 있었습니다. 숨은 가빴고, 다람쥐도 많이 지친 듯 보였습니다. 그런 다람쥐가 불쌍하다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제 목표는 다람쥐를 잡는 것입니다. 처음엔 그저 쫒는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잡아야겠다는 욕심이 가득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무료함이 폭력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은 이런 상황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