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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250119일 러닝

by 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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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궁극적 진리를 찾았다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는 거짓입니다. 따라서 이런 이데올로기는 사회에 강제적인 방법으로만 떠안길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 파시즘, 국가사회주의가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런 이데올로기들은 모두 압제를 부릅니다.



2

이 불완전성은 세계의 본래 스스로 그러한 운명이다.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인간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정의 혹은 이념의 깃발을 들고 어깨를 거들먹거리며 땅 위를 걸어 다니는 자들은 어리석다. 이


세계의 불완전성을 이해하는 것으로 그 불완전성을 해결할 수 없지만 그 불완전성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은 세계와 인간을 대하는 마음에서 겸손과 수줍음과 조심스러움을 갖출 수 있다. 겸손과 조심스러움을 상실한 태도가 이 불완전한 세계 위에 지옥을 완성한다.


이 지옥의 이름은 파시즘이다.


두 글에 따르면 파시즘이란

절대적 믿음에 대한 강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사태를 보며 각자의 이익을 위해

이쪽 또는 저쪽을 지지합니다.


나를 봅시다.

나는 A를 통해 직장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고,

B를 통해 부동산 같은 자산에서 이익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은 다원적인데

그걸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단순한 논리를 펼치며 선동합니다.


읽지 않고 미디어를 보기만 하는 사회에서

선동은 매우 위험합니다.

과거와 달리 개인 미디어의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내 생각과 정말 다른 반대편의 신문을 구독해본적이

있을까요? 대부분 없을겁니다.


언론은 내 생각과 달리 한쪽 시각만 전달하지

않습니다.

반면 개인 미디어는 한쪽 시각만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값 하락만 외치며 그 수익으로 본인은

고급 부동산을 소유하는 일부 개인 미디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처럼 일률적인 사태는 파시즘이 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는 듯 합니다.


징비록을 쓴 서애 류성룡은 이후 조선 사회에서

잊혀졌습니다.

왜 일까요? 풍산 류씨의 뿌리깊은 양반가문도

동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동인은 북인과 남인으로

광해군을 지지한 북인의 인조반정으로 인한 몰락.


서인과 남인에서 서인의 주도.

서인은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영조를 지지한 노론과

장희빈의 아들 경종을 지지한 소론.


이후 노론은 사도세자 처리를 두고

벽파와 시파로 분열되며

끊임없이 정쟁을 일삼았습니다.

지금이나 조선사회나 파시즘의 출현은

사회를 갉아먹습니다.


1번 글은 조지 소로스의 <이기는 패러다임>에서

발췌했습니다. 조지 소로스와 파시즘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보면

그는 원래 헝가리 출신입니다. 헝가리가 공산화되며 런던으로 탈출해

그곳에서 철학을 공부합니다. 철학의 '재귀성'이론을 투자에 접목해

세계적인 투자자로 성공합니다.


2번 글은 김훈의 <허송세월>에서 발췌했습니다. 특히 저 글은

국회에서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인지, 조선일보 강연인지에서

쓴 원고를 바탕으로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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