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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Jan 26. 2023

사투리는 나의 언어이다.

눈 오는 날 이런저런 생각

  하루 종일 눈이 내린다. 눈 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둘째가 나가서 놀자고 한다. 외투를 챙겨 입고 아파트를 한 바퀴 돌며 눈을 가까이에서 보며 온몸으로 눈을 맞았다.


 8년 전까지 난 대구에서 살았다. 대구는 눈구경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눈구경하기 위해서는 스키장을 가야 했다. 경기도로 겨울에 이사 온 후 눈을 겨울마다 자주 본다.

이사 온 지 10일째 되던 해 겨울 폭설이 내렸고 나와 아이들은 눈썰매를 타고 눈싸움을 했다. 다른 세상 같은 풍경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새 보금자리에서 하얀 눈이불과 함께 시작되었다.


유치원이 없어서 나는 아이들과 3개월을 함께 보냈다.

매일 한 가지씩 놀이활동을 하며 영어시간, 한글 책 읽는 시간을 루틴으로 만들었다.

그때 3개월 동안 아이들과 나는 새로운 곳에 적응도 잊은 채 매일 즐겁고 행복하게 보냈다.


 이사오기 전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낯선 환경도, 사투리 억양도 걱정스러웠지만 아이들과 함께 다니면서 나는 낯선 두려움도 사라졌다. 새로움에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뿐 나에게는 새로움이 오히려 매일을 즐겁게 살 수 있었다.  


 가게에 가면 사투리로 주인 분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아이들의 귀여운 사투리는 분위기를 좋게 만들었다. 그래서 사투리는 나의 언어라는 생각으로 8년째인 지금도 사투리로 말을 한다. 아이들도 나와는 사투리억양으로 학교나 친구들과는 표준말을 사용한다.


 내가 사투리 쓴다고 아이들이 표준말을 안 쓰는 것이 아니었다. 굳이 내가 어색하게 표준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억양은 고칠 수는 없지만 사투리 어휘 사용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그래서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하면서 내가 쓰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 적은 없다.  


 우스개 소리로 대구사람들 대화하는 모습이 마치 싸우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사실 그 정도는 아닌데 좀 심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대구 가면 가족친지분들의 목소리에 비해 내 목소리가 작구나를 느끼고 귀가 아플 정도로 억양이 세다는 느낌이 들었다.  ㅎ ㅎ

왜 이런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사투리는 내가 가진 언어이기 때문에 힘들게 바꿀 필요는 없다. 가끔 아이들과 웃으면서 표준말로 말하면 아이들이 간지럽다고 엄마는 사투리가 어울린다고 한다.


  이 지역에도 대구 경북사람들이 많이 있다. 가끔 만날 때면 왠지 모른 편안함이 느껴진다. 대구라는 같은 연결고리는 빨리 친해질 수 있는 힘이 있다. 한번 만나고 대구 이야기를 하면서 원래 알던 사람처럼 빨리 친해지는 것이 참 신기하다. 우리는 고향사람, 대학선후배, 고교동창, 애들 유치원동기, 초등모임 등등 여러 가지 연결고리들이 모여 우리는 작은 공동체를 만들며 살아간다.


혼자 사는 것 같았는데 나도 모르게 우리는 작은 실로 이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그 실들이 엉켜서 풀 수 없었던 적도 있었지만 되도록 거리를 두고 실을 느슨하게 이어가는 것, 거리를 두고 침범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이은 실은 끊어지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억지로 연결고리를 만들어 친해지려고 한다.  필요에 의해서 만들려고 하지만 나는 신뢰가 기반이 되지 않는다면 쉽게 마음을 열지 않으려고 한다. 여기로 이사 온 후 사건 사고가 많았고, 시기질투의 대상이 되어 내 귀에 들어오 적이 많았다. 그런 경험을 몇 번하니 이젠 신뢰부터 만든 사람들 또는 공감이 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말 많은 곳에 항상 탈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말 많은 곳은 되도록이면 피하며 지낸다.  이 세상 어딜 가도 자기 하기 나름이지만 어딜 가나 나쁜 인간들은 있다.  나쁜 인간을 볼 수 있도록 나의 내면이 채워져야 하지 않을까. 신경 끄고 이젠 니 인생이나 잘 살아라고 말하고 싶다.


 내리는 눈을 보면서 나는 아주 가끔 눈이 내렸던 고향생각을 하며 한참 생각에 빠졌다. 내 기억 속 대구의 눈 오는 날은 신기했고, 경기도의 눈 오는 날은 고향의 겨울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경기도에 살지만 난 자랑스러운 대구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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