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언제부턴가 계속 내 옆에서 떠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모든 죽음은 다른 이야기를 갖는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계속 내 옆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외할아버지의 첫 기일이 며칠 지나고 호국원을 방문했다. 부모님과 동생이 함께였다. 작년 우리처럼 하얀 보자기를 두른 함을 든 사람 뒤로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갔다. 나는 어제까지도 책 읽고 뒹굴거렸는데, 저들은 무얼 했을까. 모두의 시간은 다르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일생에 있어 몇 번 없는 큰 사건이다.
근래 끌리는 대로 집어 구입한 책들은 어째서인지 누군가의 죽음을 다룬다. 정세랑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와 강진아의 장편소설 <오늘은 엄마>를 읽었다.
엄마이고 할머니인 심시선 씨는 <시선으로부터>의 핵심 인물이다. 기세 좋은 딸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맏딸 명혜의 제사 제안이 서사의 발단이 된다. 첫 페이지부터 언급되는 ‘바깥 물 좀 드’신 심시선 씨는 당신의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자식들에게 당부했다. 명혜는 그래도 십 주기인데 제사를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 한다. 과연 심시선 씨의 딸답게 사 남매의 가족이 하와이로 가서 보통의 제사가 아닌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그 ‘기이한 제사상’에 하와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올리기로 한다. 무지개 사진, 커피 원두, 사장님이 출장 요리해주신 팬케이크, 말라사다 도넛, 스팔딩 하우스에서 만들어온 블록 탑, 레후아 꽃과 화산석 자갈, 레이 목걸이, 하와이 배경 소설, 깃털 컬렉션, 가장 멋졌던 파도의 거품.... 이토록 아름다운 것들을 찾으며 심시선을 생각하는 가족들.
사 남매와 배우자, 그 자식들은 각자 어떤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다. 그 크고 작은, 옅고 깊은 응어리들은 하와이로의 가족 여행에서 하나씩 의미 있는 것을 찾고 깨닫는다. 심시선의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 심시선은 그 가족들에게 어떤 존재였는가를 떠올리게 한다.
외할아버지는 갑자기 돌아가셨다. 큰 병 없이 정정하셨기에, 내게 처음 들려온 죽음이었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당신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한 것도 아니고 형제 중 거의 막내인 엄마라서 나와는 너무 먼 사람으로 느껴져 개인적인 교류도 크게 없었기에 글로 옮기기에 죄송스럽다. 용돈 한 번 드린 적 없는데. 다만 내가 당신의 발인 전 관에 올리는 편지를 쓰며 적었던 말이 생각난다. 할아버지랑 같이 하고 싶어서 열심히 바둑 공부했는데 저는 이제 그거 안 할래요. 슬프다기보다는 엄마가 걱정되던 사흘이었는데 이 말을 머리에서 손으로 옮기는 순간 울렁 슬픔이 밀려왔다. 투정은 아니고, 그냥 읊조리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듣지도 못하시겠다. 꿈에 나오시면 할 말이 많다. 실제로는 말도 못 걸었으면서.
외할아버지는 내게 어떤 존재이셨을까. 말도 못 거는 괜히 무서운 할아버지. 맨날 텔레비전 틀어놓고 우리 아빠랑 바둑 두시는 할아버지. 사투리 심한 할아버지. 소파 오른쪽 아래가 지정석인 할아버지. 일찍 주무시는 할아버지. 엄마랑 이모들한테 조금 엄한 할아버지. 효도 한 번 못 해 드린 할아버지. 언제 뵐 수 있을지 모를 할아버지.
그런데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의 삶이 있었겠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장례식 때는 정부에서 뭘 보내주기도 했고 외가의 안방에는 훈장이 빼곡했다. 똑똑하고 유쾌하신 할아버지. 당신의 젊음은 내가 보지도 못했고 우리 부모님도 기억이 나지 않겠지. 또 그 이전의 청춘은 어떨까. 또 나는, 나는, 먼 미래에 지금을 기억할 수 있을까. 기억은 뭘까.
호국원에는 60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한다. 배우자가 늦게 돌아가시면 그 시점부터 60년으로 한다. 헤아려보면 60년 뒤라면 내가 80대다. 외할아버지 얼굴도 기억 안 날 조카들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걸 맡겠지. 아니면 조카의 자식들이려나. 나보다 한참 나이 많은 사촌 언니 오빠들은 세상을 떠날 수도 있을까. 엄마 아빠는?
강진아의 장편소설 <오늘의 엄마>는 두 명의 죽음을 그린다. 죽은 남자 친구와 아픈 엄마. 남자 친구는 이미 죽었고 엄마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엄마의 이야기가 주가 된다. 눈물을 펑펑 흘리는 슬픔이라기보다는 가슴이 답답해 바스라지는 슬픔을 담고 있다. 먹먹하다. 이 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도저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상실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인 정아는 엄마가 죽던 일주일을 단 몇 시간으로 기억한다. 혈압이 너무 낮아 간호사와 의사는 분주하고, 언니를 부르라고 하고. 믿을 수 없이 어리둥절해하는 어린 정아는 전화기 너머 언니의 목소리를 듣고, 언니는 한달음에 달려오고, 의사는 동의를 구한 뒤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을 반복하고, 엉엉 울다가 엄마가 눈을 뜨는 장면 여기까지. 그리고 언니가 뭐라고 하자 한 마디하고 정아와 언니의 엄마는 혼수상태다.
기억은 도대체 뭘까. 내 휴대폰은 맨날 용량이 없다. 아이 클라우드에는 자동 업로드를 설정해놓고 오래 정리하지 않아서 오래된 것들만 저장되어 있다. 기억은 어떤 순서에 따라 저장되는 걸까. 어제 사진 정리를 했다. 기억은 복기되었는데 매번 이 짓을 할 엄두는 안 난다. 파일은 외장하드를 사면 되는데. 기억하고 싶은 것은 기록만으로 완벽하게 기억하기에 어렵다. 내가 컴퓨터 소프트웨어 같은 뇌를 가져서 기억하고 싶은 건 모조리 기억하고 싶다. 바이러스만 없으면 좋겠어.
오늘 호국원에서 본 분들이 매년 이맘때 그곳을 방문한다면 다음 해에도 볼 지도 모르겠다. 그 아기는 커 있겠다. 외할아버지 뵈러 가서 남의 가족 보고 있었네.
좋아하는 이야기가 끝나면 아쉬워하는 대신 인물들의 이후 살아갈, 내가 알 수 없는 인생을 응원해주기로 했다. 우리 할아버지도 다른 곳에서 살아가겠지. 다만 내가 없는 세상일 뿐.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죽은 것이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든 똑같이 느껴진다. 아. 관용적으로 쓰는 ‘살아가다’라는 말이 이렇게 먹먹할 줄이야. 이렇게 갑자기 울렁거림이 찾아오는 날에는 내가 모르는 비하인드를 상상해야만 하겠다.
<죽음은 모두에게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스물둘임이 믿기지 않는 해의 초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