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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25. 2019

곤궁해져 원칙에 돌아가야

주역, 천화동인

곤궁해서 원칙에 돌아가야천화동인(天火同人)  

   

‘양 손에 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때 쓰는 말입니다. 살다 보면 양 손에 떡을 쥐는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좋은 직장을 얻고 마음에 드는 배필도 만나고 부러움을 사는 사회적 인정도 받으면서 의기양양하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절 운을 평생 가질 수는 없습니다. 사는 게 그렇게 녹녹하지 않습니다. ‘떡’으로 여기던 것들이 심드렁해질 때면 점점 세상살이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두 개를 동시에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자주 나타나게 됩니다. 가진 것 중 무엇인가를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맞이합니다. 한 손에만 떡을 쥐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세상’도 그렇습니다. 내가 욕심내는 세상은 통째로 내게 안기지 않습니다. 온전한 모습으로 자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손에 쥐어지는 세상은 이미 찌그러지고 떨어져 나간 세상입니다. ‘얻으려 하면 잃는’ 아이러니만 확인합니다. 그래서 늘 궁색합니다. 세상을 원할 때마다 그렇게 스스로 ‘곤궁(困窮)’을 자초합니다.  

   

우리가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내가 ‘곤궁(困窮)’하다는 것입니다. 행여라도 한 손을 비우고 돌아갈 곳이 있는지를 찾는 일입니다. 살아갈 ‘원칙’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책을 펼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주역은 그런 차원에서 ‘곤궁’의 정도가 아주 심한 이들이 찾는 책입니다. 너무 심하게 막혀서 ‘큰 군사로 이겨야’(大師克) 하는 형편에 처한 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주역 열세 번 째 괘는 ‘천화동인(天火同人)’, 동인괘입니다. 무리를 지어 큰 내를 건너도 좋은 괘입니다. 그런데 효사를 보면 그냥 좋아지는 게 아닙니다. 일단 궁해져서 원칙으로 돌아간 다음에야 제대로 길할 수 있다는 것을 설파합니다. 효사의 일부를 옮겨봅니다.    

  

... 구사(九四)는 그 담에 오르되 공격하지 못하니 길하니라(九四乘其墉弗克功吉). (…) 그러므로 담을 타되 이길 수 없으니, 이길 수 없으면 되돌아가고 돌아가면 길을 얻는다. 이길 수 없어서 되돌아감이 길을 얻는 소이이니, 곤궁을 겪어서 원칙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상전」에서 말하기를, ‘승기용(乘其墉)’은 의로움으로 이기지 못함이요, 그 길한 것은 곤궁해서 원칙에 돌아옴이라. (象曰 乘其墉 義弗克也 其吉 則困而反則也)     

구오는 동인이 먼저 부르짖어 울고 뒤에 웃으니, 큰 군사로 이겨야 서로 만나도다. (九五 同人 先號咷而後笑 大師克 相遇)     

「단전」에서 말하기를, “유(柔)가 자리와 중(中)을 얻어 건(乾)에 응하므로 동인(同人)이라 하였다”고 했으니, 그런즉 몸체가 부드러우면서 가운데에 거하면 사람들이 함께 하지만, 강직하게 하면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까이 두 강(剛)에 막혀 그 뜻을 아직 이루지 못했으므로 ‘선호조(先號咷)’(먼저 부르짖어 울고)이다. 중에 거하고 존귀한 자리에 처하였으니 싸우면 반드시 이기므로 뒤에 웃는다.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제 위치로) 돌아가게 할 수 없어 억지로 강제력을 쓰게 되므로, 큰 군사가 이긴 뒤에야 서로 만나게 된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128~129쪽]     


‘유가 자리와 중을 얻어 건에 응하’게 되는 것은 담을 타고 넘어가서 이길 뜻을 완전히 거두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조금이라도 ‘강(剛)’에 미련을 두고 있으면 ‘천화동인(天火同人)’의 경지는 오지 않습니다. ‘대사극(大師克)’은 그래서 그저 사족에 불과합니다. ‘유(柔)가 자리와 중(中)을 얻’는 것은 강(剛)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그저 ‘천화동인(天火同人)’이 끝입니다. 그게 전부라 봐야 합니다. 취할 것은 오직 그것입니다. 그게 맞을 겁니다.      

곤궁해져 원칙에 돌아가는 일의 중함을 나이 들면서 보다 확연히 알겠습니다. 옛날 선비들이 나이 들어 반드시 주역을 아꼈다는 말을 이제야 확실히 곧이듣겠습니다. 나이 들면 너나없이 다 곤궁해집니다. 때를 놓치지 말고 ‘담을 타고 넘어가서 이길 뜻을 완전히 거두’어 부드러움을 취해야 함을 명심합니다. 천화동인(天火同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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