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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31. 2019

날이 어두우면 들어가 쉬어야

주역, 택뢰수

날이 어두우면 들어가서 쉬어야    

 

‘때에 맞게’ 행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때를 아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지금이 때를 중시해야 되는 때인지 아는 것도 무척 힘든 일입니다. 때를 중시해야 하는 때라는 것만 알면 때를 좀 살피기라도 할 것인데 그것조차 몰라서 때를 놓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늘 실패한 한 뒤에야 때를 압니다. 때가 좋은지, 때가 나쁜지를 안다는 것은 사실 주관적 판단일 때가 많습니다. 보통은 ‘결과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제반 상황적 요인’이 때일 때가 많습니다. 일단 결과에 대한 평가가 사람마다 구구각색일 때가 많고(돈 많은 이는 권력을, 권력을 잡은 자는 명예를, 다 가진 사람은 사랑을 원할 때가 많습니다) 주체가 인지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항상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성공에는 ‘때’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성공은 당연한 행운이거나 노력이나 능력의 소산이거나 어쩔 수 없는 인과론(因果論)의 결과일 뿐입니다. 비관도 낙관도 개입하지 못합니다. 성공에 이르는 과정 모든 것이 당연한 것 투성이입니다. 그래서 성공에는 때라는 불투명한 원인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때라는 표현이 담고 있는 모종의 ‘종합적인 맥락에 대한 주관적인 고려’가 개입할 여지가 아예 없습니다. 성공만 해 온 사람들은 그래서 때를 모릅니다. 실패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만 때라는 말이 의미있는 단어가 됩니다. 그들에게 때라는 말이 종종 불운과 이음동의어처럼 들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때가 안 좋았다”라는 말은 그래서 실패자를 위로하기 위한 하나의 수사가 됩니다.     


그러나, 실패보다 성공이 많은 삶을 살아왔다고 해서 때를 무시해도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때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작동하고 있어야 하는 게 인생입니다. 좀 살아보니 그렇습니다. 확실히 실패할 확률을 줄이는데 도움이 됩니다. 때로는 그것이 세간적인 ‘계산’으로 오인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뒤를 잘 살펴서 때를 거스르지 않고 들고 나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 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도 그런 장면을 한 번 목격합니다. ‘때’가 아닌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의욕만 앞세워서 ‘사물을 알맞게 하고 덕을 고르게 베풀’ 기회를 놓치는 처사를 봤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살아온 이력도 비슷하고 인품이나 능력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세 사람이 하나의 선출직을 두고 경쟁적으로 출마선언을 하였습니다. 한 분은 대학총장 직까지 내던지고 나섰고 다른 한 분은 뜻있는 이들의 단일화 요구도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물론 극적인 막판 단일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동시출마 선언 그 자체로 많은 표가 떨어져나간 것 같아서 지켜보는 많은 이들이 불편하게 여기고 그 처사를 나무랐습니다. 그렇게 동시 출마하였다가는 아무도 당선되지 않을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정권교체와 함께 지역사회에 찾아온 오랜만의 훈풍을 세 분이 힘을 합쳐 삭풍(朔風)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갑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저도 ‘불편한 이들’ 중의 한 사람으로 있습니다만, 충분히 알 만한 분들이 왜 그렇게 ‘때를 모르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적으로 출마 선언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아마 각자에게 그렇게 나서야만 될 어떤 발분(發憤)의 계기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럴수록 ‘때’를 살펴야 한다는 게 주역의 가르침입니다. 내 일은 아니지만, 새삼 ‘때를 아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알겠습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저라도 앞으로 남은 생에서 다시는 실수하는 일이 없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상전에서 말하기를, 못 가운데 우레가 있는 것이 수(隨)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어두워지면 들어가서 편안히 쉬느니라. (象曰 澤中有雷隨 君子以嚮晦入宴息)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152쪽]     


주역 열일곱 번째 괘는 택뢰수(澤雷隨), 수괘입니다. ‘수는 강이 와서 유약한 데에 낮추고 움직이고 기뻐’하는 것이니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하여 허물이 없어서 천하가 때를 따르는’ 괘입니다. 당연히 ‘때의 의의’를 강조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수괘의 핵심은 ‘날이 어두우면 들어가서 쉬어야 한다’는 구절에 있습니다. ‘밖에 뜻을 둔 이들’이 특히 명심해야 될 괘사입니다. 그들의 ‘때’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들어가서 쉬는 때’라고 읽힙니다. 때를 알아서 자작 들어가서 쉬면 몸과 마음에 다 덕이 쌓입니다. 그러나 과도한 의욕을 제어하지 못해서 들어가 쉴 때를 놓치고 밖으로만 떠돌면 크게 몸과 마음을 상하게 됩니다. 그것은 귀한 인생을 함부로 낭비하는 일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때의 의의’는 들어갈 때를 알아서 들어가 쉼을 즐기는 데 있습니다. 나아가서 용맹을 떨치거나 옛 부귀영화를 되찾아오는 것은 주역이 강조하는 ‘때’와는 결코 연결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 세속적인 성공은 절로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 안에 드는 것이지 ‘때’를 거슬러서 쟁취하는 게 아닙니다. 내 선택의 소관이 아닙니다. 그것이 주역의 가르침입니다. 강(剛)이 절로 유(柔) 아래에 거하는 형국이니 이미 천하는 ‘바름이 이로운 형세’에 처해 있습니다. 남은 것은 ‘때를 아는 이’들의 ‘향회입연식’입니다. 들어가 쉬는 일이 있을 뿐입니다. 때를 아는 자의 선택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택뢰수! 향회입연식!!

<2017. 3. 30. 오늘 아침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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