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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Apr 24. 2019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감화를

주역, 풍택중부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감화를  

   

동물들이 이야기의 소재가 될 때는 반드시 분명한 교훈(敎訓, 가르치고 깨우침)의 필요성이 있어서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멀리까지 우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을 대신하는 그들 동물들은 다면적인 인간을 배제하고 오직 ‘하나의 성격’으로만 고용(雇用)됩니다. 그들이 비유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의 성격, 비중, 역할뿐입니다. 여우는 교활한 마음을, 돼지나 곰은 욕심많고 미련한 속내를, 용이나 호랑이는 걸출한 재능을, 전갈이나 독사는 악한 성격을, 개나 닭은 하찮은 역할을, 새나 물고기는 머리가 나쁜 존재를 드러낼 때 주로 사용됩니다. 벼룩이나 개미 같은 곤충들은 가장 하찮은 인간을 비유할 때 종종 사용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용이 개천에 내려오면 새우가 놀리고, 호랑이가 저잣거리에 내려오면 개들이 짖는다.”, “개와 닭이 집을 나가면 공들여 찾으면서 자신의 마음이 집을 나가면 찾지 않는다.”,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를 주랴?”, ‘여우 같은 X’, ‘돼지 같은 놈’,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X놈이 번다.” 등등이 동물 비유의 빈번한 예들입니다. 많은 경우 인간의 좋지 않은 속성을 표 나게 드러낼 때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그렇지만 사회역사적인 맥락 속에서는 좀 다릅니다. 동물들이 그렇게 악역만 맡아 온 것만도 아닙니다. 토템의 표상이 되거나 성숙이나 변화의 주체가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곰할머니 웅녀가 그 대표적인 것이겠지요. 인간의 조상이 되는 동물, 특별한 하늘의 은사가 내리는 지상의 존재, 감화를 입어서 인간으로 화하는 존재 등등의 스토리텔링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쨌든 동물 비유법은 인류의 오래된 패다고지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의 주역 읽기에서도 그런 동물 패다고지가 등장하는군요. 주역 예순네 번째 ‘풍택중부’(風澤中孚), 중부괘(中孚卦)에는 돼지와 물고기가 나옵니다.     


중부(中孚)는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믿음이 미치면 길하니, 큰 내를 건넘이 이롭고, 곧음이 이로우니라. (中孚豚魚吉 利涉大川利貞) -- 믿음이 선 후에 나라가 교화된다. 유(柔)가 안에 있고 강(剛)이 가운데를 얻으니 각기 제자리를 잡았다. 강이 득중하면 곧고 바르게 되고, 유가 안에 있으면 조용하고 유순해진다. 화열(和悅)하면서 공손하면 싸움이 일어나지 아니한다. 이와 같으면 사람들에 교묘히 다툼이 없어지고 돈실한 행실이 나타나고 신뢰가 그 가운데 피어나게 된다.[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456~457쪽]     

‘이섭대천(利涉大川)’의 전제조건이 ‘돼지와 물고기에 까지 믿음이 미’쳐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렇지 않고 교화 없이 섭대천(涉大川)하다가는 어디까지 흉할지 모릅니다. ‘돼지와 물고기’가 등장하는 소이는 이렇게 설명이 됩니다. ‘물고기는 보이지 않는 동물이요, 돼지라는 것은 미천한 짐승이다. 다투어 경쟁하는 도가 일어나지 않고 마음 속으로 받는 도가 순박하게 드러나면, 비록 은미한 사물일지라도 믿음이 다 미치게 된다.’(457쪽)     

중부괘(中孚卦)가 요즘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목전의 현실에 모종의 교훈을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때는 ‘바둑이와 벼룩’이 화제였습니다만 역시 지금은 ‘돼지와 물고기’에게 교화를 베풀어야 할 때입니다. ‘도가 순박하게 드러나’, 믿음으로 어려움들이 다 해결되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주역을 펼치면 그날그날 들어오는 글귀가 다릅니다. 좋은 것이 들어올 때도 있고 나쁜 것이 들어올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변화시키는 내용이 심금을 울립니다. 저 같은 물고기 인생에게도 한가득 감화를 안겨줄 용이나 호랑이가 나타나기를 고대해 보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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