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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Apr 28. 2019

나는 못난이

열등 콤플렉스

나는 못난이 병 

    

세상의 불치병(不治病) 중에서 가장 독한 불치병이 ‘나는 못난이 병(病)’이지 싶습니다. 한 번 걸리면 평생 ‘못난이’ 병마에 시달립니다. 지상에는 아예 치료약이 없습니다. 증세도 다양해서 집단 내 온갖 불화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엇나가면 극단적인 ‘나 잘났어요 병’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종잡을 수 없는 인격을 만듭니다. 다른 병들과는 벌써부터 차원이 다릅니다. 병세가 한 번 착근(着根)되면 그 뒤로는 일체의 ‘승화(昇華)’가 불가능해져서 몸체가 살아있는 한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의 여러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고통을 줍니다. 그래서 종종 전체를 타격합니다. 그 피해가 막심합니다.

저 사람이 왜 저렇지? 왜 저렇게 꼬여있지?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이들을 자주 봅니다. 그렇게 ‘원인을 잘 알 수 없는 이상 행동으로 자신과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경우’를 프로이트는 ‘콤플렉스’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나는 못난이 병(病)’은 열등 콤플렉스에 속합니다. 그리고 그런 콤플렉스는 많든(크든) 적든(작든) 모든 사람에게 다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게 자신에게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더 큰 병에 걸려있는 거라고 프로이트는 설명합니다. 상황에 따라 누구에게나 작동될 수 있는 심리기제입니다. 그러니, ‘불치병’이라는 말도 사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 됩니다. 병이 아닌 것을 병으로 간주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못난이 병(病)’ 중에서 가장 그 증세가 가벼운 것이 ‘외모 콤플렉스’일 것입니다. 외모 콤플렉스도 엄연한 ‘나는 못난이 병’이기에 그것은 상대성의 원리에 복속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낫고 누구보다 못하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는 못났다’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 ‘반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이에게는 본능적으로 공격성을 드러냅니다. 겉으로는 그 ‘반듯함’에 승복하고 경탄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지만 안으로는 늘 그것에 대한 도전의식으로 가득합니다. 주체할 수 없는 파괴 본능에 시달립니다. 그들이 알게 모르게 자주 쓰는 클리셰(상투적인 수사)는 이런 것들입니다. “사람살이에서 인물(人物, 외모)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예쁜 것(잘난 것)들은 꼭 티를 낸다.”, “누구는 그런 인물로는 안 된다(선거에서).”, “여자가 승진하는 데에는 인물이 꼭 필요하다.”, “나는 밉게 생겨서 주위에 사람이 없다.” 등등입니다. 생각 밖으로, 애교로 봐 줄만한 것을 포함해서, 그런 말을 입에 담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한 번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제 말이 허언(虛言)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나는 못난이 병(病)’이 좋지 않은 것은, 그들 보균자(保菌者)들이 꼭 중요한 시기에 결정적인 실수를 한다는 것입니다. 개중에는 자신의 열등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른 이들도 꽤 있습니다. 성공한 실업가도 있고, 국회의원도 있고, 판검사도 있고, 고위 행정가도 있고, 종교지도자도 있고, 의사나 교수(연구자)도 있습니다. 그들, 성공한 ‘나는 못난이 병(病)’ 병자들은 평소에는 그저 존경받고 능력 있는 시민으로 잘 처신을 합니다. 그러나, 일단 자신의 불치병이 어떤 자극(격려)을 받는 상황이 주어지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시기심으로 상황을 그르칩니다(그럴 때 그들의 눈을 보면 마치 족제비의 그것을 보는 듯합니다. 자신의 ‘그림자 얼굴’이 그런 표정으로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체를 타격합니다. “저 사람이 왜 저런 언사를 쓰지?”라는 주변의 의아심을 사게 됩니다. 그러나 본인은 전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나는 못난이 병(病)’이 어떻게 전체를 타격하는지, 소설로 잘 그려내고 있는 것이 김동인의 단편소설 「배따라기」입니다. 못난 형은 잘난 동생과 (고운) 자신의 처가 불륜을 저지른 것으로 오해해서 결국은 두 사람을 파멸의 길로 들게 합니다. 상처 입은 아내는 물에 빠져 죽고 동생은 ‘반듯하고 잘난 외모를 잃고’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떠돌게 됩니다. ‘나는 못난이 병(病)’ 앞에서 화목했던 한 가정, 가족이라는 ‘전체’는 풍비박산이 나고 구성원들은 출구 없는 지옥에 들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그 ‘원인이 되는’ 당사자는 자신의 ‘나는 못난이 병(病)’을 죽을 때까지 털어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큰 실수를 저질러놓고, 고작 한다는 게 구성진 배따라기 하나로 듣는 이의 가슴에 슬픔과 한의 정서를 남기는 일입니다. 그 노래로 자신의 ‘나는 못난이 병(病)’을 위로할 뿐입니다. 고작 그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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