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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y 02. 2019

고통스럽게 하는 절제는

주역, 수택절

고통스럽게 하는 절제는     


제가 사는 곳 가까이에 ‘김광석 거리’가 있습니다. 아침마다 저는 그 길을 통해 ‘신천(新川) 산책’을 나섭니다. 신천은 대구의 한강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애용하는 도시의 허파입니다. 그 신천 둑방길 아래에 김광석 거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김광석 노래 중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류근 시인이 작사한 것을 가수 김광석이 부른 노랜데 이 가수 저 가수의 판본을 골라서 듣는 재미가 꽤나 쏠쏠합니다. 개중에서 가장 심금을 울리는 것은 유튜브에 올라 있는 어느 여자 고등학생이 부른 것입니다. 남자 고등학생이 기타로 반주를 넣고 수줍은 듯한 태도로 여자 고등학생이 다소곳이 앉아서 부른 것인데 들을 때마다 좋습니다. 옛날 추억을 거의 완벽하게 재생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세월이 흘렀으니 이 학생들도 이제는 어른이 되었을 것입니다. 좋은 시절 좋은 추억거리를 잘 만든 것 같습니다.     


이 노래 가사 중에는 ‘다시는 사랑으로 오지 말자’라는 대목도 있습니다. 참 가슴아픈 사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게도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사입니다. 좀 일찍 만났더라면 충분히 제 18번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너무 늦게 만난 탓에 그저 듣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광석의 전성기에는 제가 노래를 끊고 살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젊어서는 그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제 18번은 “그 시절 그 추억이 또 다시 온다 해도 사랑만은 않겠어요.”에 머물고 있습니다. 노래방에 갈 때마다 그 노래는 결국 한 번은 불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전에는(소리가 좀 올라갈 때였습니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가 18번이었습니다. “차라리 차라리 나를 잠들게 하라.” 부분을 제외하고는 40대 이후로 고음 처리가 안 되어서 문자 그대로 절창(絶唱)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에 우는’ 노래들을 좋아했던 제게 ‘고통스럽게 하는 절제는 바르게 할 수 없다’(苦節不可貞)는 경문을 가진 주역 예순 번쩨 ‘수택절’(水澤節), 절괘(節卦)는 그야말로 심금을 울리는 괘입니다. 젊어서의 제 애정 편력이 모두 고절(苦節)한 것들이었던 모양입니다. 적어도 18번 노래를 보면 그렇게 짐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혹 그런 척하는 모종의 가짜 페이소스 취향이라고 해도 그 혐의를 완전히 벗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구오는 달갑게 절제함이라, 길하니, 가면 가상함이 있으리라.(九五 甘節 吉往有尙) -- 「상전」에서 말하기를, ‘감절(甘節)’의 길함은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

상육은 (쓰도록) 고통스럽게 절제함이니 바르더라도 흉하고 후회가 없어지리라(후회하며 망하리라). (上六 苦節 貞凶悔亡) -- 「상전」에서 말하기를, ‘고절정흉(苦節貞凶)’은 그 도가 궁하기 때문이라.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454~455쪽]     


절제함에도 단 것과 쓴 것이 있는데, ‘쓴 것’은 가급적이면 피하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쓴 것’들은 늘 ‘도가 궁해질 것’들이기 때문에 오래가질 않습니다. 사람살이가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친구와 술은 오래 묵힐수록 좋다고 하지만 옛정에 얽매여 너덜너덜해지도록 오래 사귄 친구와의 우정은 이미 우정이 아닌 것도 많습니다. 서로에게 ‘사랑으로 올’ ‘때’를 자주 놓칩니다. 깨끗하게 청산하는 게 좋을 때가 많습니다. ‘너무 아픈 사랑’을 강요하는 이들과 더 이상 아옹다옹 할 때가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살려면 잘 가세요." 이제 듣기 싫은 소리 한두 마디는 애써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래야 앞으로도 계속 ‘사랑으로 올’ 미래(새로운 사람들)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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