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선규 May 03. 2019

헤진 옷가지를 준비해 두고

주역, 수화기제

헤진 옷가지를 준비해 두고    

  

젊어서 한 3년 입시학원 강사로 복무한 적이 있습니다. 시내에서 제일 좋은 학원으로 인정받는 곳이었습니다. 강사료도 높은 편이었고 구성원들도 모두 현직 교사 중에서 스카웃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연히 직장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실력 하나로 평가되는 사설 학원인지라 인화가 특히 강조되었습니다. “뭉쳐야 산다.”가 기본 기조였습니다. 연수회나 경조사 참여율은 늘 100%였습니다. 사내 서클 활동도 활발했습니다. 입사할 때 반드시 한 개 이상의 서클에 가입하도록 했습니다. 테니스부, 등산부, 수영부, 마작부, 댄스부, 고스톱부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저는 고스톱부에 들었습니다. 같은 과 주임선생님이 고등학교 은사셨는데 그 서클의 주장을 맡고 계셔서 자연스럽게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주로 카드놀이를 많이 했는데 종목을 화투로 바꾸니 처음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첫 해는 이른바 호구 노릇을 단단히 했습니다. 한 1년 열심히 따라 다니며 보고 배우니 화투가 손에 좀 익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해부터는 50% 정도의 승률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멋지게 한 판 놀 수 있을까?”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모든 생활이 ‘저녁의 화투판’ 위주로 돌아갔습니다. 좋은 한 판의 도박을 위해서 직장도 잘 다니고(돈도 잘 벌고) 좋은 인간관계도 맺고(늘 웃고) 성실하게 건강관리도(틈틈이 운동도 하고)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주객이 완전히 전도된 것이지요. 일단 집사람이 좋아했습니다. 덕분에 남편이 건실한 생활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열심히 강의를 해서 돈도 잘 벌어오고, ‘돈 안 되는’ 친구들 만나서 쓸데없이 돈 쓸 일도 없어지고, 못 먹는 술 먹고 실수할 일도 없어지고, 소설 쓴다고 인상 쓰고 낑낑거리는 일도 없어지고, 무엇보다도 ‘하우스’를 개설해서 용돈도 짭짤하게 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사람은 여덟 명이나 되는 고스톱 부원들(제가 가장 어렸습니다)을 늘 친정 오라비처럼 반갑게 맞이하곤 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도박만큼 인간을 순수하게 만드는 것이 세상에 또 없다는 것을요. 자신의 전 운명을 걸고 한 판의 승부에 몰두하는 그 순간만큼 인간의 영혼을 맑게 만드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만큼 제 영혼이 투명했던 적은 그 후 다시 없었습니다. 도박만큼 세상 모든 잡스러운 것들을 일거에 물리칠 수 있는 것은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늘 좀 모자란 듯한 도박 밑천을 들고 집으로(저희집이 도박장이었습니다)으로 향할 때의 그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물아일체, 기운이 순조로워서 날개를 단 듯 그날의 판을 휩쓸고 마지막에 몇 푼의 개평을 나눠줄 때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했습니다. 그것 말고는 제 인생에는 더 필요한 게 없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 꼭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진정한 도박사를 만나는 일입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운이 좋았던 편입니다. 저에게 어디서든 “사람이 먼저다”를 가르쳐 주신 도박판의 선생님들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그때 좌우명으로 삼은 것이 “초장에 따지 말자”였습니다. 아무래도 초장에 돈을 좀 벌게 되면 뒤로 갈수록 마음이 해이해져서 결국에는 다 잃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 매번 마음을 다잡고 자중자애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초를 다투는 결단과 게슈탈트적인 종합의 격투장인지라 불굴의 투지, 과감한 예기(豫期)를 혼연일체가 되도록 염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판을 주도하는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백전백패 합니다. 그런데 초기에 우연한 행운을 만나(하룻밤 새다 보면 특별한 날을 빼고는 한 번쯤 그런 행운이 찾아옵니다) 공으로 돈을 벌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엄정한 승리의 룰을 잊게 됩니다. 한 번 다녀갈 뿐인 행운이 끝까지 내 곁에 머물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렇게 방심하게 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한 번 내리막길을 타게 되면 그 판은 영영 회복이 불가능해집니다. 발버둥치면 칠수록 수렁에 빠져듭니다. 도박은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실하고 냉정한 염력의 대결장입니다. 그걸 알고 끝까지 집중하면 따고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잃습니다. 거의 매일 만나서 화투를 치는 사이에서도 그런 일이 매번 반복됩니다. 종이 한 장의 차이로 웃고 우는 사람이 매번 생깁니다.   

  

주역 예순세 번째 ‘수화기제’(水火旣濟), 기제괘(旣濟卦) 경문에서 그 옛날 도박판의 좌우명을 만납니다. ‘초길종란’(初吉終亂)이 그것입니다. 기제괘는 경문과 효사들의 서사성이 아주 높습니다. 마치 한 편의 짧은 우화를 읽는 듯한 느낌마저 선사합니다. 차례대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기제는 작은 것도 형통하게 하니, 곧음이 이로우니 처음은 길하고 마침은 어지러우니라. 

초구는 그 바퀴를 끌며 그 꼬리를 적시면 허물이 없으리라.--기제의 맨 처음으로 건너가기 시작하는 자이다. 건너기 시작하니 아직 조급하게 아니하므로 바퀴를 끌고 꼬리를 적신다. 비록 순탄한 데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마음에 연연히 돌아봄이 없음은 난을 벗어나는 데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 의의 상에서 허물할 바가 없다.

육이는 지어미가 머리 장식을 잃음이니, 좇지 않아도 이레 만에 얻으리라.

구삼은 고종(高宗)이 귀방(鬼方)을 쳐서 삼 년에야 이기니 소인은 쓰지 말지니라. 

육사는 (배가) 새는데 헤진 옷가지를 준비해 두고 종일토록 경계하느니라. -- 저 틈이 난 버려진 배가 건널 수 있는 것은 헤진 옷가지가 있기 때문이요, 이웃이 친하지 않은데도 온전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종일 경계하기 때문이다.

구오는 동쪽 이웃의 소를 잡음이 서쪽 이웃의 간략한 제사로써 그 복을 받음만 못하니라.

상육은 그 머리를 적시느니라. 위태로우니라. -- 기제의 극에서 기제의 도가 다하면 미제(未濟)로 가고, 미제로 가면 머리부터 먼저 빠지게 된다. 지나치게 나아가 그침이 없으면 난을 만나므로 ‘유기수(濡其首)’이다. 곧 가라앉게 되므로 위태함이 이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471~477쪽]    

 

경문과 효사의 내용은 선대의 고사(故事)에서 인용한 수치(칠일, 삼년)나 배, 소 등의 구체적인 보조관념의 사용으로 보다 설득적인 서술을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은 어려움을 알고 조심조심 환란에 대비해서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하라는 권고에 닿아있는 것 같습니다. 서두에서 밝힌 저의 도박꾼 소회에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거룩한 주역의 말씀을 애숭이 노름꾼의 잡설에다 비견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빚는 모든 승부의 세계에서는 ‘초길종란(初吉終亂)’이 불변의 이치라는 것 하나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결정적일 때, 깨진 배로 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이 (사람들이 버리는) ‘헤진 옷가지’ 덕분이었다는 것도 참 적절한 비유인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고통스럽게 하는 절제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