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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y 13. 2019

내가 너의 생모가 될 뻔했다

뻬드로 빠라모

내가 너의 생모가 될 뻔했다     

세상은 ‘살아남은 자들’의 것입니다. 어제까지 왕좌를 차지하고 있던 자라도 오늘 죽은 자가 되면 오늘부터 그는 모든 것의 소유권을 잃게 됩니다. 아들이, 손자가, 그의 권리와 의무를 상속한다고 해도 세상이 그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죽음은 인간들이 만든 모든 관계를 일거에 무효로 돌리는 강력한 자연의 폭력입니다.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는 통과제의고 나비꿈에서 깨어나는 각몽(覺夢)의 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목소리를 되살려서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는 일종의 조롱입니다. 현실에 대한 조롱입니다. 현실의 모든 것, 죽은 자에 대한 조롱이며, 살아있으면서 죽은 자의 하수인 노릇을 계속하고 있는 자들에게 대한,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총합에 대한 강력한 조롱입니다. 겉으로는 추모(追慕)와 경배(敬拜)와 복종(服從)을 서약해도 속으로는 조롱과 멸시와 배반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바로 망자(亡者)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회고입니다.     

소설이 ‘살아남은 자들’의 귀에다 ‘망자의 회고’를 전하는 것은 현실을 조롱하고 그것을 부정하고 그것을 바꾸고 싶을 때라는 것은 상식입니다. 『뻬드로 빠라모』라는 소설은 서두부터 ‘망자의 회고’를 통해서 판타지를 구축합니다. 독자들은 시작에서부터 혼란을 경험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목소리인줄 알았더니 망자의 회고였습니다. 그때부터 작중 화자들의 현재가 무효가 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마치 산 자처럼 이야기하던 화자들이 이어서 등장하는 다른 등장인물로부터 “그는 죽었어요”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와 함께 우리가 애써 구축한 작중 현실들도 허공으로 날아오릅니다. 그렇게 우리를 판타지로 초대합니다. 여행길에 나선 주인공에게 고향 소식을 처음 전한 마부(馬夫) 아분디오도 이미 죽은 자였고, 자신의 친구에게 자기 아들이 곧 찾아갈 것이라고 전언했던 어머니도 이미 일주일 전에 죽은 터였습니다. 소설은 그런 비논리에 대해서 어떤 식의 구차한 설명도 베풀지 않습니다. 이런 소설에서는 설명이 작가의 의무가 아닙니다.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은 언제나 독자의 몫으로 넘겨집니다. 어쨌든, “어머님이 누구니?”라는 물음은 이 소설의 서두를 장식하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고향땅에 상기도 살고 있는 어머니의 친구를 만나서 처음 듣는 이야기가 “내가 너의 생모가 될 뻔했다”라는 기상천외의 이야기였습니다.     


- 자, 이제 자네 모친 이야기를 다시 해볼까.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그녀의 초췌한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첫눈에 봐도 무척 어렵고 힘들게 살았던 흔적이 역력했다. 얼굴은 핏기가 없이 창백하고, 눈자위가 움푹 들어간 눈은 형체조차 분간하기 힘들었다. 손가락은 꺼칠꺼칠하고 마디마디 주름살이 깊게 패어 있었다. 낡은 흰옷은 말이 의상이지 천 조각을 덧댄 넝마나 다를 바 없고, 목에는 성모 마리아 구호소의 메달이 달린 목걸이를 걸고 있었는데, 메달에는 ‘죄인들의 안식처’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 ……메디아 루나에 ‘조련사’로 통하는 사내가 있었지. 이노센시오 오소리오라는 이름 대신 ‘폭죽’이란 별명으로 불렸는데, 약삭빠르고 경망스러운 것도 부족해서 툭하면 말썽을 피우는 그런 인간이었어. 오죽했으면 내 아들의 대부인 뻬드로가 아랫사람들에게, 어린 망아지를 그자에게 맡기지 못하도록 주의를 주었겠나. 그런데 그 몹쓸 인간이 자네 모친을 현혹한 거야. 다른 여자들이나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한번은 내가 몸이 성치 않아서 집에 있는데, 그자가 나타나더니 대뜸 “원기가 회복되려면 맥을 한번 짚어봐야 되겠소.”라고 하면서 내 몸을 만지더군. 처음에는 손가락과 손바닥을 만지고, 그러다가 팔다리도 만지고, 나중에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손대지 않은 곳이 없었어. 그런데 웃기지도 않는 게, 손길이 닿는 곳마다 응혈이 풀리면서 몸이 뜨거워지는 거야. 생각해 보게. 예언자로 행세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집시 같은 인간이 눈알을 뒤집고 게거품을 무는데, 깜빡 넘어가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나. 그 바람에 홀라당 옷을 벗은 여자들도 많았지. 그때마다 그 인간은, 여자의 마음속에는 불같은 욕망이 감춰져 있다고 둘러댔어. 딴은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르지. 여자란 때대로 누군가에게 온몸을 내맡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니까.

문제는 오소리오라는 그 인간이 신혼 초야를 앞둔 자네 모친에게 이런 말을 한 거야. “당신 몸에 달(月)의 기운이 흐르고 있으니, 오늘 밤은 남자와의 잠자리를 피하시오.”라고 말이지.[후안 룰포, 정창 옮김, 『뻬드로 빠라모』, 세계문학전집93, 민음사, 2004(3쇄), 24~25쪽]     


어머니는 친구에게 간청을 합니다. 자기 대신 첫날밤을 치러달라고요. 내심 어머니의 남편을 사모하고 있던 어머니의 친구는 못이기는 척하고 그 청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들의 남편인 뻬드로 빠라모는 술에 취해 혼자서 골아떨어집니다. 그 자세한 사정을 친구에게 듣지 못하고 신혼생활을 시작한 어머니는 그 이듬해에 ‘나’를 낳습니다. 남편은 그녀를 구박했고 그녀는 남편 곁을 떠납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소설 『뻬드로 빠라모』(Pedro Páramo)가 단순한 자서전이나 부모의 전기를 목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독자들은 알게 됩니다. 작가는 무언가 좀 더 큰 것을 그리고 싶은 듯합니다. 아주 먼 시간으로 회귀하는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들,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합니다. ‘죄인들의 안식처’인 오래된 우리의 현실, 그리고 부분들보다는 전체에 속하는 선 굵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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