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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y 17. 2019

씨름 도깨비

도깨비와 나그네

씨름 도깨비     

부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나절, 산길을 홀로 걷는 나그네가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걸은 탓에 삭신이 다 노곤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앞에 도깨비가 나타났습니다. 말로만 듣던 ‘씨름 도깨비’가 나타난 것입니다.

“씨름 한 판 하자.”

도깨비는 불문곡직, 그렇게 졸랐습니다. 할 수 없이 나그네는 도깨비와 씨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그네도 고향에서는 씨름깨나 한다던 축에 끼였습니다. 내심, ‘좋다 한 번 해 보자’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도깨비의 몸통도 팔 안으로 쏙 들어왔습니다. 이 정도면 해 볼 만하다, 나그네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잡자마자 냅다 자신의 특기인 ‘배지기’를 걸었습니다. 왼배지기, 오른배지기, 들배지기, 엉덩배지기, 돌림배지기, 맞배지기, 온갖 배지기를 다 써 보았습니다. 배지기라는 건 기술을 걸 때 상대를 앞으로 당기면서 위로 끌어올려 몸을 돌리면서 넘어뜨리는 방법입니다. 여기에 변화를 주어 안다리나 밧다리 기술을 접목하면 언제나 한 판으로 이어지던 나그네의 필살기였습니다. 이 기술을 잘 쓰려면 하체가 튼실하고 허리의 유연성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나그네는 그런 신체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도깨비는 꼼짝도 않는 것입니다. 마치 다리가 땅에 박힌 듯 도깨비는 나그네의 현란한 배지기 기술에 요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도깨비 쪽에서 무슨 기술을 걸어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들면 안다리로 반격을 하고, 밀면 댕겨서 메어도 쳐 볼 심산이었지만 도깨비는 그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나그네도 기진맥진, 그저 도깨비를 붙들고 허우적거리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간신히 그렇게 도깨비를 붙들고 밤을 지새우게 된 것입니다. 도깨비도 지쳤는지 처음보다는 훨씬 몸통에서 나오는 힘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드디어 날이 밝았습니다. 날이 밝고 사개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그네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가 밤새 부둥켜안고 사투를 벌였던 것이 바로 참느릅나무였던 것이었습니다. 도깨비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늠름하게 가지를 뻗친 아름드리 참느릅나무였습니다. 그 나무와 함께 밤새 씨름판을 벌였던 것입니다. 수백 년을 그 자리에서 깊게 뿌리를 내리고 사는 참느릅나무가 인간의 배지기 기술같은 요동질에 넘어갈 리가 없었습니다. 

“내가 헛것을 보았구나!”

나그네는 쓴 입맛을 다시며 가던 길로 계속 갔습니다.     

독각귀(獨脚鬼)는 중국 남쪽 지역의 나무귀신 설화라고 합니다. 나무가 귀신이나 도깨비, 요괴로 묘사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천녀유혼』이라는 영화에서는 아카시나무가 죽은 처녀귀신(섭소천)의 혼령을 붙들어매고 있지요. 씨름 도깨비 설화도 일종의 나무귀신 설화의 변용인 듯합니다. 그러니까 이 경우에서는 도깨비가 절대로 씨름에서 지지 않습니다. 중심을 지키고 한 자리에 머무는 한, 섣불리 세상의 악(惡)이 부리는 삿된 기술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교훈도 남기지요. 물론, 씨름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씨름 도깨비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씨름’이라는 문화적 요소입니다. 도깨비는 그 다음이지요.     

이 ‘씨름 도깨비’에 ‘빗자루 도깨비’가 가미되면서 엉뚱한 이야기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나그네가 씨름에서 이기고 씨름에 진 도깨비는 그 자리에서 오래된 빗자루로 바뀐다는 식이지요. 그러면 도깨비 이야기가 그냥 ‘도깨비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우리가 ‘저놈 참 도깨비 같은 놈이야!“라고 말할 때의 그 도깨비 말입니다. 그런 식의 도깨비 이야기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놓고 또, ’인물, 사건, 배경‘의 확장을 통해서 ’이야기를 늘여서 말해보기‘ 같은 학습활동을 거기다 추가했습니다. 그러니, 어린 학생들은 ’씨름에 진 도깨비의 마누라가 나타나서 또 씨름을 하자고 했습니다‘와 같은 억지 이야기 늘이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깨비가 가족을 가지면 이미 도깨비가 아닐 것인데 말입니다. 마치 늑대가족이나 되는 양 도깨비가 동물같은 대접을 받게 된 셈이지요. 그것도 일종의 성현체일 것인데 말입니다. 지금은 교과서에서 그 이야기가 없어졌는데 천만 다행인 것 같습니다.     

제가 ‘씨름 도깨비’에 열을 올리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저도 한 때 ‘씨름 도깨비’였었기 때문입니다. 집 근처의 공원 안에 수령 100년이 다 되어가는 참느릅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 아래에 작은 모래사장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매일같이 씨름판이 벌어졌습니다. 할 일 없이 공원에서 소일하는 할아버지들이 십시일반, 몇 푼 상금을 걸고 여는 씨름대회였지요. 이기는 아이들에게는 동전 몇 닢의 상금과 시원한 냉차 한 잔이 상품으로 하사되었습니다. 그 씨름대회의 주인공이 저였습니다. 그래서 ‘씨름 도깨비’라는 별명도 얻었지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중학생들까지도 제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앞서 든 나그네처럼 배지기가 저의 특기였습니다. 상대를 번쩍 들어서 슬쩍 엉치뼈 위에 얹어서는 모래판 위로 냅다 내다꽂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습니다. 동물원 공사로 공원이 일시 폐쇄될 때까지 이 참느릅나무 아래서의 저의 씨름 도깨비 시절은 화려하게 지속되었습니다.   

   

사진은 대구시 중구 달성공원 안의 수령 130년의 참느릅나무 전경. 약 45,6 년 전까지 이 아래에서 ‘도깨비 씨름대회’가 열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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