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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Jun 06. 2019

몸에서 잎이

오비디우스

몸에서 잎이     


100년 해로(偕老), 모든 부부의 꿈입니다. 수십 년 함께 살아오면서 애틋한 고운 정 미운 정이 문(門) 앞에 소복이 쌓여있는 것을 봅니다.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더 많기도 합니다. 그러니 ‘정 주고 내가 우네’는 우리네 인생의 영원한 주제곡인 듯합니다. 정을 내준 것만큼 슬픈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늙으면 서로 “먼저 가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혼자 남아서 쓸쓸한 인생의 뒤안길을 홀로 감당할 일을 걱정해 주는 것이지요. 가장 좋기는 함께, 한 날 한 시에, 세상의 문을 닫고, 동반해서 침묵의 여행길로 나서는 것입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그 모범(模範) 답안이 나옵니다. 한 번 볼까요?     


<선한 영감과 선한 영감에 어울리는 역시 선한 할미야. 내게 말하여라. 너희가 내게 무엇을 구하느냐?>

바우키스와 필레몬은 속닥속닥 뭘 한참 상의한 끝에 필레몬이 대신(大神)께 바라는 바를 말씀드리기로 했네.

<저희들은, 대신의 신전을 지키는 신관(神官)이 되고자 하나이다. 저희들은 한평생을 사이좋게 살아왔은즉 바라옵건대 죽을 때도 같은 날 같은 시에 죽고자 하나이다. 제가 할미의 장사 치르는 꼴을 보지 않고, 할미가 저를 묻는 일이 없었으면 하나이다.>

이들의 소원은 이루어졌네. 그래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신전을 돌볼 수가 있었던 것이네.

그런데 어느날 말이네, 세월의 무게로 허리가 꼬부라진 이들은 신전 계단에 서서 옛날 거기에서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바우키스는, 필레몬의 몸에서 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았고, 필레몬은 바우키스의 몸에서 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았네. 이윽고 머리 위로 나무가 뻗어 올라가기 시작하자 이들은 마지막 인사를 서로 나누었네. 말을 할 수 있을 때 마지막 인사를 해두어야 했던 것이네.

<잘 가게, 할미.>

<잘 가요, 영감.>

이들이 이러는데 얼굴이 나무껍질로 덮이면서 이들의 입을 막아버렸지.

프뤼기아 농부들은 지금도 나란히 서 있는 이 두 그루의 나무, 한때는 부부지간이었던 이 나무를 보면서 옛이야기를 한다네.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나를 속여서 득될 것이 하나도 없는 노인이었네. 나는 이 나뭇가지에 화환이 걸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고, 화환을 하나 만들어 직접 여기에다 건 사람이네. 나는 화환을 걸면서 이런 말을 되뇌었네.

<신들을 사랑하는 자는 신들의 사랑을 입고, 신들을 드높이는 자는 사람들로부터 드높임을 받는 법이거니.>

렐렉스 노인의 이야기는 이로써 끝났다. [오비디우스, 이윤기 옮김, 『변신이야기1』, 민음사, 2000(4쇄), 370~371쪽]     


선행의 보상으로 신관이 되어 부부 해로할 수 있었던 노부부는 이 생의 끝에서 한 날 한 시에 나무로 변신하는 마지막 복을 누립니다. “잘 가게 할미. 잘 가요, 영감”,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두 사람은 인간의 옷을 벗습니다. 변신 중에서는 최고의 변신입니다. 

마음씨 착한 필레몬 영감과 바우키스 할멈은 인간의 형상으로 내려온 유피테르(제우스) 부자(父子)를 정성껏 돌봐준 공으로 한꺼번에 두 가지 선물을 받습니다. 하나는 신전의 신관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 날 한 시에 나무로 화(化)해 이 세상을 하직할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늙은이들에게는 그 이상의 ‘신의 선물’이 또 없을 것 같습니다. 부부 동시 하직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고, 착하게 늙은 이들이 신전의 신관이 되어 성심껏 마지막 봉사를 할 수 있게 되는 일 역시 지상 최대의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늙어서는 ‘뿌리 깊은 나무’로 지반(地盤)을 떠받치며 살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규칙을 위해 죽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 가르침이 ‘저를 속여서 하나도 득될 것이 없는 선생들’에게 배운 것이 분명하다면 신전의 신관으로 일생을 마무리 짓는 일만큼 복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비디우스(BC 43 ~ AD 17)가 전하는 옛이야기들에는 일절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예시와 교훈이 딱 정량(定量)을 지킵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필요한 교훈, 필요한 이야기만 들려줍니다. 오비디우스는 합리주의자이며 매우 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시에 대한 신념 속에서 살고 죽었으며, 이 신념은 〈사랑 Amores〉에서 시작하여 유배지에서 쓴 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작품에 스며 있습니다. 낱말에 대한 감각적인 이해와 언어를 다루면서 느끼는 기쁨을 그는 잘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사랑을 아는 작가였습니다. 그는 독자에게 늘 다정한 친구이자 익살스럽고 이해심 많은 연인이었습니다. 바우키스와 필레몬의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따뜻한 화법이 그것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브리태니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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