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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Jul 15. 2019

나의 베아트리체

쾌활, 데미안

나의 베아트리체  

   

예술의 효용(效用)을 속속들이 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겁니다. 논리에 굴복하는 것은 이미 예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처럼 예술도 ‘아는 것’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의 내면(內面)에는 아직(끝내) 미지(未知)의 세계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예술은 우리 안에 있는 그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작은 탐사선입니다. 『데미안』을 보면 예술 창작(그림 그리기)을 통해서 사춘기의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는 싱클레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술이 한 인간의 성장에 어떤 식으로 기여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나는 점점 더 몽환적인 붓놀림으로 대상이 없는, 장난 같은 더듬음에서, 무의식에서 나오는 선을 긋고 면을 채우는데 익숙해져 갔다. 마침내 어느 날 거의 의식 없이 얼굴 하나를 완성했는데, 전에 그린 것들보다 더 강하게 말을 던져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소녀의 얼굴은 아니었고, 결코 그럴 수도 없었다. 무엇인가 다른 것,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덜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녀의 얼굴이기보다는 오히려 청년의 머리처럼 보였다. 머리카락은 나의 예쁜 소녀처럼 환한 금색이 아니고 불그스름한 기운이 도는 갈색이었고, 턱은 강하고 윤곽이 뚜렷했으며, 입은 붉게 꽃피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다소 뻣뻣하고 가면 같았지만, 인상적이고 신비스러운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완성된 그림 앞에 앉아 있자니, 기이한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내게 일종의 신상(神像) 혹은 성인의 가면처럼 보였다. 절반은 남자고 절반은 여자, 나이가 없고, 의지가 굳세면서도 몽상적이며, 굳어 있으면서도 남모르게 생명력 있어 보였다. 이 얼굴은 나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것은 나의 일부였다. 나에게 요구를 내세웠다. 그리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누군가와 비슷했다.

그때부터 그 초상이 한동안 나의 모든 생각을 따라다녔고 나의 삶을 함께 했다. 나는 그것을 서랍에 감추어두었다. 아무도 그것을 훔쳐보고 그걸로 나를 비웃게 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혼자 내 작은 방 안에 있을 때면 곧바로, 나는 그 그림을 꺼내어 들여다보곤 했다. 저녁에는 마주 보이는 침대 위쪽 벽지에 핀으로 붙여놓고, 잠들 때까지 바라보았으며 아침이면 나의 첫 눈길이 거기로 갔다. <중략>

그 그림은 참으로 기막히도록 친숙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나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어머니처럼, 아득한 시절부터 내내 나를 향해져 있었던 것 같았다. 가슴이 뛰며 나는 그림을 응시하였다. 숱 많은 갈색 머리카락을, 절반쯤 여자의 것인 입술을, 특별하게 밝은(저절로 그렇게 말랐다) 뚜렷한 이마를, 그리고 점점 더 분명하게 인식을, 재발견을, 앎을 느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얼굴 앞에 서서 아주 가까이에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크게 뜬, 초록빛 도는 굳은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오른쪽 눈이 다른 쪽보다 약간 더 높이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 오른쪽 눈이 찡긋했다. 가볍고 섬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찡긋했다. 그리고 이 찡긋거림으로써 나는 그림을 알아보았다.

어떻게 내가 그걸 이렇게 늦게야 비로소 찾아낼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데미안의 얼굴이었다.

후에 나는 이 그림을 내 기억 속에서 찾아낸 데미안의 진짜 표정과 자주 비교했다. 비슷하기는 해도 똑같은 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데미안이었다. [헤르만 헤세(전영애), 『데미안』 「베아트리체」, 110~112쪽]     

상급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데미안과 헤어지게 된 싱클레어는 타락한 생활로 학교와 가정의 이단아가 됩니다. 그런 와중에 스스로 ‘베아트리체’로 명명한 이름 모를 소녀를 만나게(보게) 되고, ‘사랑하고 숭배할 그 무엇’을 다시 찾은 그는 삶의 방향성을 새로이 정립하게 됩니다. 스스로 일어나 자신의 삶을 추스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싱클레어가 택한 자기 정화의 방법이 예술 창작(그림 그리기)이었습니다. 무의식 안에 있는 어떤 에너지를 예술적 표현을 통해 밖으로 끄집어냅니다.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그리면서 그는 ‘예술행위를 통한 엑스터시’를 비로소 처음 경험합니다. ‘불타는 초록 물감’을 위시한 ‘작은 튜브에 든 섬세한 수성 물감’들에서 황홀경을 느낍니다. 몇 번의 실패를 딛고 그는 결국 ‘예술적 형상화’에 성공합니다. 스스로 행한 ‘예술’이라 인정한 첫 실체(인물화)와 대면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데미안의 얼굴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합니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의 얼굴’은 일종의 만다라(曼陀羅)가 됩니다. 이를테면 예술적 형상화를 통해 자신의 내면(의 욕구)을 직시한다는 것, 나아가서 본질(manda)을 소유(la)하는 경지에 이른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장면입니다. ‘절반은 남자고 절반은 여자, 나이가 없고, 의지가 굳세면서도 몽상적이며, 굳어 있으면서도 남모르게 생명력 있어 보였다. 이 얼굴은 나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것은 나의 일부였다. 나에게 요구를 내세웠다.’라는 그 얼굴 그림에 대한 싱클레어의 설명은 우리 동양인들에게는 무척 낯익은 것입니다. 우리가 불상(보살상)에서 자주 접하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아니마(내 안의 여성성), 아니무스(내 안의 남성성)와의 통합’을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이 촉구하는 ‘인간적인 성숙(成熟)’에 그렇게 화답합니다. 예술 창작을 통해 내면과의 대면을 자연스럽게 이루어냅니다. 예술의 효용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생산적인 효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효용이 있기 때문에 예술은 언제나 우리 곁에 남을 수 있습니다.     

인용 부분이 ‘예술의 효용’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만,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예술론이 이 대목에 담겨져 있습니다. ‘후에 나는 이 그림을 내 기억 속에서 찾아낸 데미안의 진짜 표정과 자주 비교했다. 비슷하기는 해도 똑같은 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데미안이었다.’라는 마지막 부분에서의 싱클레어의 독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술은 ‘진짜 표정’과 똑같지 않습니다. 똑같은 것은 전혀 아니면서 ‘그래도’ 그것인 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우리는 간혹 예술의 그런 존재방식을 몰각하고 현실에서 그것의 존재 근거를 찾을 때가 많습니다(진위 판정, 가치 측정). 그러면서 예술을 우리 곁에서 밀어냅니다. 그렇게 예술을 밀어낸 뒤의 우리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딱딱한 가면처럼 말라비틀어진, 오직 하나밖에 지을 수 없는 불구의 표정으로, 인간의 탈을 쓴 비인간으로,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나에게 어떠한 요구도 할 수 없는, 그런 무미건조한 인생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게 됩되는 것입니다.     

사족 한 마디. 간혹 듣는 말이 있습니다. ‘별 거 없는데 사람들이 환호한다’는 말입니다. 거액에 거래되는 거장의 추상화든, 입도선매되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이든, 이유 없이(?) 관객이 드는 영화든 그런 구설수에 언제든지 오를 수 있는 것이 예술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들 ‘환영받는 예술’들은 반드시 그것 안에 그럴만한 이유를 내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말로써 그것을 속속들이 설명할 수 없을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예술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이 덜 허망합니다.

<2013. 7. 15. 오늘 아침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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