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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Aug 19. 2019

찬찬

보면서 듣기

찬찬

눈으로 보면서 듣는 노래가 때로는 더 실감날 때가 많습니다. <나는 가수다>류의 TV프로를 보면 알 일입니다. 한동안 제게 많은 위안을 주었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도 그랬습니다. CD보다 DVD가 더 좋았습니다. CD에는 음악만 있었지만 DVD에는 그들 쿠바의 예자(藝者)들의 삶의 편린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인생이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삶과 그들의 음악이 한데 어울리지 못해 그들이 겪어야했던 긴 세월 동안의 고난들, 보상 없이 보내온 젊은 날들의 쓸쓸함들이 선사하는 비장(悲壯)의 배경이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예술을 조롱하는 각박한 삶에 좌절하지 않고, 끝내 ‘하나 살아남을’ 자신들의 기예(技藝)로, 타고난 음악으로, 그것을 넘어서는데 성공하는 불후의 혹은 불운의 노(老)가객들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불운과 허무를 뚫고 나오는 예술, 보상 없이 아름다운 것에 대한 맹목적인 찬미를 행하는 자들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찬찬(Chan Chan)」이 왜 시종일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이 불후의 DVD의 배경 음악이 되고 있는지를 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 가사가 저음의 섹소폰 소리에 실려 처음 내게 올 때의 그 감미로운 느낌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난 알토 세드로에서 나카네로 가고 있네. 
쿠에르토를 거쳐 마야리로 가야지. 
난 알토 세드로에서 나카네로 가고 있네. 
쿠에르토를 거쳐 마야리로 가야지. 
당신에 대한 사랑은 감출 수가 없어요. 
당신을 원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후아니타와 찬찬이 해변을 거닐 때 두 사람의 가슴은 두근거렸죠. 
나뭇잎을 치워줘요. 거기 앉고 싶어요. 
바다를 바라보며 당신 곁에 있겠어요. 
나뭇잎을 치워줘요. 거기 앉고 싶어요. 
바다를 바라보며 당신 곁에 있겠어요. 
난 알토 세드로에서 나카네로 가고 있네. 
쿠에르토를 거쳐 마야리로 가야지. 
난 알토 세드로에서 나카네로 가고 있네. 
쿠에르토를 거쳐 마야리로 가야지….


어디로 향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에서 사랑을 생각한다는 것. 그것 이상의 들뜬 마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들뜬 마음’은 지구 위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원초적인 그 무엇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떠남과 만남, 그 두 가지 숙명 앞에서 우리는 평생토록 일희일비하며 삽니다. 쿠에르토가 어딘지 마야리가 어딘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찬찬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나는 갈 수 있습니다. 비록 꿈이더라도, 그들처럼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있습니다. 미지의 사랑이든, 잃어버린 옛사랑이든, 모든 그리운 것들을 그리며 나는 떠납니다….


CD보다 그것을 만들 때의 과정을 보여주는 DVD가 훨씬 더 울림이 컸다는 것은, 모든 예술이 인생이라는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의 연꽃과도 같은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인간이 만든 세상의 아름다움은 하나 없이 모두 만든 자의 인생을 은유하거나 환유할 뿐입니다. 원관념 없는 보조관념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감동으로 엮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술보다 그것을 만든 자의 인생이 더 예술적이라는 옛 성현들의 말씀은 예나제나 우리 속인들이 감히 부정할 수 없는 ‘황금의 말’이 됩니다. 어쨌든, 이방에서 흘러든 노랫가락 하나에서도 제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신통합니다. 아마 그것도 ‘하나 살아남을’ 예술의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201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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