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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Oct 14. 2019

'나쁜 동물'의 꿈

원형적 꿈의 분석

<원형적 꿈의 분석 - ‘나쁜 동물’의 꿈>


다음은 1년 뒤 성홍열으로 죽은 8세 소녀의 것이다. 이 꿈은 그 소녀가 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꿈 노트의 마지막 것이다. 소녀는 이 꿈을 ‘나쁜 동물의 꿈’이라고 불렀다.

“한 번은 꿈에서 많은 뿔을 가진 동물을 보았다. 그것은 다른 작은 동물들을 뿔로 마구 들이받았다. 그것은 뱀처럼 꿈틀거렸는데 아마 그것이 자신의 사는 방법인 것 같았다. 그런데 푸른 안개가 사방에서 뿜어져 나왔고, 그러자 그 동물이 먹이 활동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신(하느님)이 내려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방에 네 명의 신이 있었다. 동물은 죽었다. 동물이 죽자 그동안 집어삼켜졌던 작은 동물들이 다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이런 꿈은 일종의 ‘큰 꿈’이다. 물론 주술사들의 예언자적 꿈과는 다르다. 그것들처럼 전체 부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래의 사건을 예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꿈은 ‘세계의 비전’을 노출시킨다는 의미에서 ‘큰 꿈’이다. 우리가 오래된 전설이나 동화에서 자주 목격하는 어떤 철학적 사고의 핵심이나 우주적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꿈은 꿈보다는 비전에 더 가깝다. 미묘한 동양화처럼 보인다. 희미한 윤곽, 색채의 번짐, 붓 터치 등 동양화의 특징을 이 꿈에서 본다. 우리가 이 그림 속으로 몰입하면 비어 있는 여백의 배경들이 생명을 띠고 움직여 화폭을 충만한 그 무엇으로 가득 채운다. 형태, 색채, 이미지들이 생동한다. 꿈꾸는 소녀는 그 천연색의 행동들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 소녀는 침착하게 사실적으로, 공평한 어조로 사건을 이야기한다. 이런 것이 아마 이 꿈이 개인적인 그 무엇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며 인간사의 잔영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한 요인이 되기도 할 것이다. 꿈은 동물과 신의 대결이다. 인간의 그 어떤 개입도 이 꿈은 거부한다. 능동적 참여는 물론이고 수동적인 개입도 일체 용납되지 않는다. 인간 이하의 것(동물)과 인간 이상의 것(신)이 양보 없이 서로를 마주 본다. 최초의 물질과 최초의 정신이 충돌한다.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죽음과 삶의 전쟁이다. 영원한 죽음과 영원한 재생이 주제가 되는 ‘삶의 드라마’인 것이다. 유사 이래로 이 분쟁이 공연되어 온 무대는 인간 정신의 ‘내부 공간’이었다. 우리의 ‘내부 공간’은 이들 주인공들의 영원한 활약 무대다.


꿈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장소: 무한한 꿈나라, 온 우주를 망라한, 네 방면의 공간.
시간: 옛날, 비시간적 영구성
등장인물: 뿔달린 나쁜 동물, 작은 동물, 푸른 안개, 4명의 신의 형상, 가운데의 신.
도입: 뿔이 달린 나쁜 동물이 작은 동물들을 뿔로 받고 그들을 먹는다. 그리고 뱀처럼 꿈틀거린다.
전개: “그때 사방에서 푸른 안개가 나오고 그 동물들이 먹는 것을 멈춘다”
절정: “그때 신이 왔다. 그러나 거기는 사방에 네 명의 신이 있었다”
결말: “그러면 그 (큰)동물은 죽고, 그것이 삼켰던 모든 (작은)동물들이 살아서 다시 나온다”


<동물의 양성적(兩性的) 양상>


소녀의 꿈속 동물은 이름이 없다. 정확하게 묘사되지도 않는다. 다만, ‘많은 뿔’을 가지고 잡아먹기 위해 그것으로 ‘작은 동물들을 들이받는다’는 것과 ‘뱀처럼 꿈틀거린다’라는 것만 알려줄 뿐이다. 우리에게 충격적인 것은 우선, 그 동물 자체가 상반된 두 가지 성격체를 결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꿈 전체가 주는 느낌에 앞서 그 문제가 먼저 부각된다. 꿈틀거리는 뱀 같은 형체로 보아 그것은 의심 없이 축축하고 찬 요소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닌 뿔은 그렇지 않다. 뿔은 불과 정열, 관통의 힘이 있는 뜨거운 요소로 간주된다. 그래서 뿔은 뱀처럼 꿈틀거리는 몸을 보충하는 요소가 된다.


뱀처럼 꿈틀거리는 동물은 게걸스러운 땅의 상징이며 어두운 지하적인 여성적 수동성을 표상하지만 이 동물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뿔과 같은 남성적 능동성에 의해 보완된 이중적 존재다. 이 이중성, 양성성으로 인해 이 동물은 원초적인 우주진화적 괴물, 즉 최초의 본질(prima materia)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융에 따르면, 최초의 것들이 모두 상반적 속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 그런 생각은 거의 우주적 관념에 속한다. 이집트 신화 속의 눈(Nun)을 위시해서 거의 모든 태초의 괴물들이 여성과 남성의 속성을 공유한다. 처음에는 자웅동체였다가 나중의 신화에서 남성과 여성으로 갈라지는 것이 보통이다.


꿈의 이원성과 양극성(동물과 신, 위와 아래)은 동물 안에서도 드러난다. 이 동물은 평범한 동물이 아니라 (낮은 세계의) 총체적인 상징적 구현이 되는 신화적 괴물이다. 이것은 본능과 충동의, 생물학적 삶과 관련되는 세계를 표상한다. 이들이 무의식의 어둠을 뚫고 나타날 때는 모든 원초적 경험의 공포를 동반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기원을 ‘아니마 문디(anima mundi, 우주의 영혼)’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주의 자궁에서 바로 탄생한 존재들이다.


(Jolande Jacobi, Complex Archetype Symbol in the Psychology of C.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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