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풍경
고향 이야기
“나는 고향에 관한 사람들의 그리움 섞인 이야기나 문학과 유행가 속에 나오는 고향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들을 경멸한다. 증오한다라고 쓰려다가 경멸한다라고 썼다. 내 고향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이다. 그 먼지 나는 거리에서 나는 자랐다. 그리고 나는 내 ‘고향’에서 길 하나 건너간 곳에 있는 회사에서 밥을 번다. <중략> 자라서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자, 나는 ‘고향’이란 육친화된 어느 산이나 강물이나 논두렁 밭두렁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을 어떤 보편적인 아늑함과 넉넉함의 공간이라고 믿게 되었다.” <김훈, '풍경과 상처'>
김훈의 글에서 나오는 '고향'처럼 내게도 고향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전혀 없다. 나도 ‘먼지 나는 거리’에서 자랐고, 마찬가지로 길 두어 개 건너간 곳에서 밥을 벌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와는 달리 내게는 장소애로서의 ‘고향’이 여러 개 있다. ‘어떤 보편적인 아늑함과 넉넉함의 공간’이 실물적으로 분명하게 존재한다. 줄잡아 너댓 개는 된다. ‘고향’이 그렇게 다중(多重)적으로 존재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이제는 병이라 할지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 살아온 시간 순으로 열거해 보자면 ①서울시 서대문구 정동 일대와 제주도 구좌읍 김녕리, ②대구시 중구 대신동 일대, ③마산시 자산동 일대, ④대구시 대봉동 일대 등이다. 문화방송(경향신문) 주소로 유명했던 ‘정동 22번지’는 아버지가 이남에 내려와서 호적을 만든 곳으로 내 ‘본적’이 된 곳이고(실제 거주하지는 않았지만 관념적 고향의역할을 도맡아 하던 곳이다. 최근에 등록기준지를 다시 그곳으로 옮겼다), '김녕리'는 출생지다. ‘대신동’은 유소년기 태반을, ‘중앙동’은 청소년기 전반부를, '대봉동'은 후반기를 보낸 곳이다. 서울과 제주도는 그곳에서의 거주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거나 두어 편의 단편적인 장면으로만 남아 있다. 그러나, 자의식이 처음 생성된 곳이 서울 언저리에 살던 서너 살 때라는 것은 분명하게 기억이 남아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들은 항상 젖어미나 되는 것처럼, 한 번씩 가 볼 때마다 ‘보편적인 아늑함’으로 나를 감싼다. 그 자태가 놀랍도록 어엿하다. 나머지 곳들은 지금껏 고향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는 곳들이다. "그리고 나는 내 ‘고향’에서 길 하나 건너간 곳에 있는 회사에서 밥을 번다."라는 김훈의 사정과 똑같다. 요즘들어 고향이 육체에 예속되는 것이라는 느낌이 자주 든다. 여러 곳 고향들은 서로 연적(戀敵)관계다. 한 몸에 머물면 다른 몸이 질투한다. 그리움이라기엔 너무 육체적이다.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껏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