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진
계시는 어떻게 내려오나
젊어서는 좀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일어난 것’은 언제라도 다시 일어난다고 믿었습니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본 것은 언젠가는 제게도 보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좀 드니까 그게 아니란 걸 알겠습니다. 어떤 것은 보이는 이들에게만 나타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 같은 청맹과니에게는 평생을 두고도 보이지 않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비쿼터스’는 없는 거였습니다. 있다면 오직 일기일경(一機一境)만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부터 그제서야 야스퍼스의 정신분석학 비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야스퍼스는 정신분석학이 믿을 수 없는 가설을 토대로 성립한 거대한 하나의 허구적 서사라고 말했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처럼, 인간 정신이 ‘불과 얼마 되지 않는 관찰사실을 근거로’ 독단적으로 해석되는 것은 ‘자유에 대한 모독’이며 동시에 그러한 관찰 밖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수많은 ‘인과적 가능성’을 무시하는 비학문적 행위라는 겁니다. ‘인간 정신의 일부를 해명한다’와 같은 유보적인 견해는 결국 거짓말에 대한 변명으로 간주됩니다. 무엇이든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발견되는 원인’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거지요.
그때까지 저는 프로이트만이 거의 유일한 ‘<계시>가 되는 진정한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스퍼스를 만나고 나서 저는 ‘종교를 가져야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었습니다. 스피노자나 야스퍼스의 주장에 따르면, 신은 세계를 초월하는 힘이 아니라 세계 속에 내재하는 힘입니다. 따라서 한 인간의 종교 행로는 자신의 내면에 잠재한 신성(神性)을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거기에 세속적인 이해가 개입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것의 여정은 주체가 경험 세계 내부로부터 신성을 어떻게 형성해 나가는가로 채워지고, <계시>는 주체별로 형성된 종교적 경험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척도가 됩니다. <계시>는 세상의 모든 원인을 뒤집는 신성의 다른 이름입니다. 종교적 계시가 신을 보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기적>이 됨으로써 ‘법칙과 질서’를 새로이 만드는 것이라면 이미 <계시>가 아닙니다. 스피노자나 야스퍼스는 인간이 만든 모든 법칙과 질서는 스스로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낼 뿐인 신을 부정하는 것, 즉 자기 모순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인간의 불완전성을 극복하는 존재론적 의미를 지닌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종교적 계시는 그 존재 의미가 보장이 됩니다. 그것은 ‘매개체 없이 작용하는 진정으로 위대한 것’ 또는 ‘이성의 기적’으로 해석이 됩니다.
야스퍼스와 함께 제게 온 <계시> 중의 또 다른 하나는 김훈의 『칼의 노래』였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책의 서문이었습니다. ‘일자진(一字陣)’이 문제였습니다. ‘학(鶴翼陣)’도 아니고 ‘뱀(長蛇陣)’도 아니고 ‘비늘(魚鱗陣)’도 아니고 ‘일자’였습니다. ‘내 생명의 함대’를 맞이할 일이 불현듯 저의 화두가 된 것입니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김훈, 『칼의 노래』 서문 중에서]
……적정이 다급하여 사람을 대신 보냅니다. 오늘 산에서 내려가 적의 포구에 바싹 다가갔습니다. 이제 적의 배는 3백여 척인데, 대부분이 전선인 것 같았습니다. 닻에 녹이 슬지 않은 걸로 보아 일본에서 새로 만들어 끌고 온 배인 듯싶었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적들은 백성의 빈집을 돌며 장독을 몰아왔습니다. <중략> 적에게 붙잡힌 조선 여자들은 30명쯤이었는데, 10명쯤은 묶어서 배에 태웠고 나머지는 갯가에서 목 베었습니다. 목을 벨 때 적의 병졸들이 둥그렇게 모여서 염불을 외는 듯도 했고 노래를 부르는 듯도 했는데, 똑똑히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저의 다음 임무를 지시하여 주십시오. 바라옵기는, 이제 수하를 거두어 우수영으로 돌아가 본대에 가세하고 싶습니다. 저와 저의 수하들을 배에 태워 적의 앞으로 내보내 주십시오…….
전령으로 온 토병 편에 임준영의 본대복귀 명령을 전했다. 밤에 온 토병은 벽파진에 머물지 못했다. 돌아가는 토병에게 쪄서 말린 쌀 두 되를 주었다.
<중략>
송여종이 입을 열었다.
- 바다에서 진(陣)을 어찌 펼치실 요량이신지……?
송여종은 임진년에 내가 임금에게 보내는 장계를 품고 남쪽 바닷가 여수에서 압록강 물가 의주까지 여러 번 다녀왔다. 낮에는 적들을 피해 엎드려 있다가 밤에만 걸었다. 그는 여수에서 의주에 이르는 그 멀고 먼 길 위의 일들을 말하지 않았고 나는 묻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살아서 돌아왔다. 그는 서른다섯 살의 장년이었다. 그가 진을 묻고 있었다. 나는 되물었다.
- 송만호, 어떤 진이 좋겠는가?
송여종이 머뭇거렸다.
- 이제 배가 열두 척이온즉…….
안위가 말했다.
- 열두 척으로 진을 짠다면 대체 어떤……?
내가 말했다.
- 아무런 방책이 없다. 일자진뿐이다. 열두 척으로는 다른 진법이 없다.
수령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한참 후에 김응함이 입을 열었다.
- 일자진이라 하심은……?
- 횡렬진이다. 모르는가?
- 열두 척을 다만 일렬횡대로 적 앞에 펼치신다는 말씀이시온지?
- 그렇다. 밝는 날 명량에서 일자진으로 적을 맞겠다.
수령들이 다시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말했다.
- 적의 선두를 부수면서, 물살이 바뀌기를 기다려라. 지휘 체계가 무너지면 적은 삼백척이 아니라, 다만 삼백 개의 한 척일 뿐이다. 이제 돌아가 쉬어라. 곧 날이 밝는다.
수령들은 돌아갔다. 나는 잠들지 않았다. 날 샐 무렵에 임준영이 그 휘하를 거느리고 우수영으로 돌아왔다. 임준영의 보고에 따르면, 그날 밤 적은 발진 준비를 끝내고 소, 돼지를 잡아서 병졸들을 먹였다. 적은 말을 베어서 대장선 이물에 말피를 발랐다. 나는 임준영과 그 수하를 안위의 배에 배치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우수영 뒷산에서 피난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훈, 위의 책 1권, 84~89]
소설가 김훈이 그의 소설 『칼의 노래』 에서 이순신의 일자진을 그렇게 감동적으로 노래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신에 관해 말한다고 주장하는 예언자의 목소리는 단지 자기 자신에 관해서 말하는 꼴이요, 자신의 내적 상태만을 보여줄 뿐이다’라는 카시러의 언급처럼, 재미지게 줄창 다니던 직장에 불현 듯 사표를 던지고 나와, 나이 50에 자신을 새로이 정립할 필요에 전율을 느끼던 작가로서는 이순신에게서 <계시>를 얻는 일이 하나의 필연이었음이 분명했습니다. 그런 ‘필연’은 본디 전염성이 강한 법, 당시 대통령이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눈시울을 붉혔다는 일화가 있는데, 그의 눈물 역시 이순신이 보여준 그 ‘마지막 노량 바다’, 그 ‘일자진의 <계시>’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본디 <계시>는 그것을 기다리는 자에게만 오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김영민 교수가 즐겨 쓴 ‘길 없는 길’도 결국 계시를 찾아 떠나는 길입니다. 누구든 오십 줄에 그 ‘길 없는 길’에서 일자진을 펼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것이 성공이 되고 안 되고는 전적으로 <계시>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나는 것이 <계시>가 되고 안 되고는 오직 그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할 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는 항상 사후작용(事後作用)을 기다리는 미완의 자기 발견일 뿐입니다.
사족 한마디. 종교와 예술도 그렇지만, 우리 인생도 ‘설명’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우리 인생이 어찌 ‘설명’ 따위에 흔들리겠습니까? <계시>도 그렇습니다. ‘살아 있음’의 <계시>보다 더 큰 <계시>가 어디 있겠습니까? ‘산다는 것의 <계시>’야말로 ‘인간이 만든 모든 법칙과 질서’를 통해서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진정한 <계시>일 것입니다. 그게 맞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