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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Oct 31. 2019

몰개월의 새

글은 왜 쓰는가

몰개월의 새

스핑크스가 물었다. 아침에는 욕을, 낮에는 칭찬을, 밤에는 반성하는 글을 쓰는 자가 누구인가? 오이디푸스가 대답했다. 누구겠는가? 할 일 없는 인간이지. 그러자 자신의 실체가 발각된 스핑크스가 자살했다. 모든 고전은 현재의 의미로 재해석될 수 있다. 오늘 아침 페이스북에 들어오면서 심심풀이로 만들어 본 농담이다.

글을 쓰는데 무슨 이유가 따로 있겠는가? 작가 이청준이 쓴 글을 보면, 작가에게 왜 쓰는가라고 묻는 것보다 더 황당한 질문도 없다는 내용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물론 사자 우리로 돌진해 들어간 휴가병 아저씨의 광기나 타이타닉호의 악사들이 무엇 때문에 배가 가라앉아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찬송가를 연주하고 있었으며, 그렇게 해야만 했던가를 가슴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중략> 문학을 왜 하는가. 왜 쓰는가. 문학이 왜 있어야 하는가… 그것을 묻는 것은 아마도 그 휴가병 아저씨나 침몰선 악사들에게 그들의 행동을 설명하게 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당돌스런 질문이 될지도 모른다. 문학하는 일 자체가 어쩌면 바로 그 휴가병 아저씨의 무모하고도 광기어린 돌격, 아니면 타이타닉호 악사들의 마지막 연주와도 같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이청준, 『말없음표의 속말들』 중에서)
내 경우에 비추어 봤을 때, 인간이 말문을 여는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다. 욕하거나, 이득을 구하거나, 심심해서이다. ‘말’은 물론 ‘글’로 대치될 수 있다. 요즘의 나는 주로 세 번째 이유에서 글을 쓴다.


...추장과 내가 가까워진 것은 야간전투 훈련장에서였다. 우리는 2인용 텐트를 같이 썼다. 추장은 맨손으로 입을 달래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는 무슨 음식이든지 말만 나오면 입으로 요리를 했다. 언제나 배가 고픈 우리는 그의 얘기에 빨려들어 거의 환장할 지경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영계백숙으로 포식을 했다. 그것도 사흘이나. 추장은 십여 리나 되는 양계장에서 여섯 마리의 닭을 생포해 와서는 구두끈으로 닭발을 묶어 우의로 덮어두었다. 우리는 한밤중에 일어나 철모에 닭을 튀겨 먹고 독도법 훈련이며 매복훈련에 나갔다. 야간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는 추장이 구해 놓은 보급품을 먹었다. 무, 수박, 고구마……. 추장은 늘 전우의 영양상태를 걱정했다.
“한잔 빨러 가자.”
추장이 판초우의를 입고 나를 깨웠다. 그가 우의를 들추자 새 군화가 세 켤레나 대롱거리고 있었다. 사단 보급창을 거덜냈는가? 통신대원들의 새로 받은 군화를 훔친 것이다. 우리는 당당히 연병장을 구보했다. 버젓하게 뛰어가야 탈이 없다는 그의 주장이었다. 철조망을 무사히 통과한 우리는 귀가 멍멍할 정도로 개구리 소리를 들었다.
바다를 뒤편에 둔 몰개월은 특교대가 생기자 주막이 하나씩 생기면서 슬레트 지붕에 블록으로 지은 바라크들이 이십여 채 생겨났다. 비가 억수로 쏟아져서인지 한 년도 내다보지 않았다. 그 때 길옆에 허엽스레 한 것이 보였다. 시궁창에 하반신을 담그고 엎드린 여자, 그렇게 미자를 만났다. 미자는 억병으로 마신 것 같았다. 몸은 형편없이 마르고 키는 멀쑥했다. 슈미즈만 입은 여자를 빗속에 버려 둘 수 없었다. 그보다 나는 시궁창에 쳐 박힌 여자의 그런 모양에 욕정을 일으켰다.
우리는 송장을 치우듯 미자를 들었다. 갈매기 집을 찾아갔을 때 주인여자는 넋두리를 폈다. 이 년들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줘야지. 이 쓸개 빠진 년들이 애인한테 편지질을 하는데 어떤 년들은 열, 스물에게 쓴다우. 미자년이나 애란이나 가끔 술 쳐먹구 지랄들을 하는데 아마 상대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는 모양이지. 제대하구 한 번도 들여다보는 놈 없는데. 나는 미자를 아랫목에 누이고 이불을 덮어줬다. 우리가 술을 먹는 동안 이따금 이불을 들치고 건너다 봤지만 모른 척했다. 추장이 빠끔이라고 별명을 붙일 정도로 미자는 마른 얼굴에 눈만 컸다.
가상 늪 지역을 허우적거리며 훈련을 받았다. 진흙탕 물에 전신을 담그고 총을 받쳐들고 건너다 포복을 하다 늪 지역을 지나 다시 부비트랩이 밀집한 곳을 지났다. 함정이 있고 인계철선이 질러있고 죽창이 있기도 한다. 당한 병사는 모두 전사자가 되어 기합을 받는 그 훈련에서 나는 폭약을 터뜨렸으므로 전사 분대로 끌려갔다.
그 때 주보병이 뛰어왔다. 면회신청이다. 어이없게도 내 이름이 불렸다. 한복을 입은 여자가 나를 반긴다. 나는 그 여자를 기억하지 못했다. 몰개월이 어쩌구, 똥까이가 어쩌구, 하는 주변의 소리에 미자가 가져 온 김밥과 삶은 고구마를 아귀아귀 먹어댔다.
미자는 내 뒷주머니에 담배도 넣어 주었다. 밤에 오라는 그녀의 말대로 나는 담치기를 했다. 미자는 상사와 앉아 있다가 뺨을 맞고 있었다. 갈매기집을 나서고 말았다. 쫓아 나온 미자는 코피가 터져 있다. 나는 논가에 데리고 가 얼굴을 씻어 주었다.
“초가 다 타면 자요.”
나는 은근히 조바심이 나서 미자를 건드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몸에 도통 기별이 가지 않았다.
“내다봐요. 고깃배가 보일 거야. 갈매기들이 많이 울지요?”
나는 미자를 먹지 못 했다. 낯을 씻길 때부터 먹지 못하게 무관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귀대하는 길에 미자에게 들렀다. 미자는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시중을 들었다.
“모레 떠난다.”
“집에 갔었다면서요? 좋은 사람 있어요?”
“있었는데 시집갔더라야.”
“내일 밤에 나와요. 전부 몰려나올 거야. 꼭…… 한코 주께.” (황석영, 『몰개월의 새』 중에서)


세상에는 어디 하나 하찮은 것이라고는 없는 법인데 젊을 때는 그걸 잘 모른다. 황석영이 쓴 소설(「몰개월의 새」)의 주인공이,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전장에서, 방금 같이 담배를 나누어 피우던 전우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걸 보면서, 유치하게 여겼던 술집 작부(미자)의 이별 선물(오뚜기 인형)을 바다(남지나해)에 던져버린 것을 못내 후회하는 것은 '일찍 찾아온' 발견이라 할 수 있다. 남루했던 우리들의 청춘은 언제나 불운한 것, 회한과 아쉬움으로 점철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 이 세상을 살아왔다는 말인가. 늙어서 그것들을 돌아다보면서 내가 할 일은 아마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누군가가 자서전에서 말했듯이 "비명을 지르며 외면하는 일과, 그것 옆에 조용히 누워 보는 일"일 것이다. 만약 그 옆에 눕는 일을 택한다면, 운이 좋으면, 그것들에서 비릿한 어머니의 젖냄새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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