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선규 Mar 17. 2019

만인의 적

내 안의 적들

만인의 적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누구는 적이 많다’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 말뜻이 곧 ‘사회성이 없다’라는 말로 환치되어 전달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성이 없다’라는 말은 곧 인간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됩니다. 언필칭, ‘적이 많다’라는 말은 ‘덜 된 인간’을 지칭하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적이 많다’라는 말은 누구나 듣기 싫어하는 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예외는 어디서나 있습니다. 선의의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혼자서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적이 많다’라는 말이 꼭 듣기 싫은 말이 아닙니다. 적의 숫자만큼 내 영광도 빛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내 노력의 성과도 더욱 더 쌓이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적은 내 가장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내 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더 아름다워집니다. 스포츠의 스타플레이어들이 자신의 타고난 미모나 체격보다 훨씬 더 많이, 분에 넘치게,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적이 많은 것’에는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나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것입니다. 하나는 본인이 부족해서 생긴 적들이고, 다른 하나는 본인이 뛰어나서 생긴 적들입니다. 전자는 내 사회성을 욕되게 하는 것이고 후자는 내 능력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제 경우를 보면 이렇습니다. 좀 물이 맑은 곳에서 머물렀을 때는 적이 거의 없었고, 물이 좀 탁하다 싶은 곳에서는 적이 많았습니다. 좀 번듯한 곳에 머물 때에는 ‘대화가 되는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 ‘천성적으로 종교적인 사람’ 등으로 취급 받았습니다(이건 실제로 제가 다른 이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들은 것들입니다). 그렇지 않고 좀 탁한 곳에 몸담고 있었을 때에는 ‘너무 강한 사람’, ‘잘 부러지는(백절불굴?) 사람’, ‘적이 많은 사람’ 등으로 매도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이 역시 직간접으로 들었던 말입니다). 아마 사람의 인성도 ‘그때그때 달라요’인 것 같습니다. 그것만 봐도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철들고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무도(검도) 수련에서는 아직 ‘적이 많다’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쪽 물이 ‘맑은(?)’ 탓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이미 많은 적들을 가진 상태에서 그 물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라 그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만 명의 적을 이기는 것보다 내 안의 적 하나를 이기는 것이 더 어렵다’라는 옛 성인의 말씀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수련을 더 하면 더 할수록. 더욱더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백련자득의 수련 과정입니다. 그 많은 적들을, 내 안의, 그 ‘만 명의 적’들을, 그대로 두고 밖에서 어떻게 새 적을 만들 겨를이나 있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아마 그럴 거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게 맞지 싶습니다.


사족 한 마디. 따지고 보면 ‘적이 많다’는 것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말일 것 같습니다. 적이 없어서 ‘무골호인(無骨好人)’이라는 평을 받는다고 더 나아질 것도 없고, 적이 많아서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평을 받아서 더 나빠질 것도 없습니다(인생살이 길어야 백년입니다. 남 앞에만 안 나서면 됩니다). 그래봐야 오십보백보입니다. 누구 하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목적 이외의 이유로 친구를 사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정도는 나이 오십만 넘기면 담박에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눈치 보며, 공연히 그렇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공연히 ‘적이 많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일부러 ‘내 안의 적들’에게 휘둘리며 속병 들어 고생하는 것보다는, 보이는 족족 ‘(공공의)적들과의 일전’을 불사하는 편이 훨 나아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게 내 안의 적을 하나라도 더 소탕하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가벼운 몸으로 이 세상을 뜨는, 지름길이 될 것 같습니다. 적은 어디서나 내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오래 전 작성. 오늘 아침 일부 수정>

작가의 이전글 무섭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