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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캉가루 Mar 27. 2021

단풍국 프리덤

직접 관찰한 캐나다인들의 3가지 특징



내가 첫 번째로 갔던 캐나다는 중학교 3학년 시절, 캐나다 토론토 근교의 트렌턴(Trenton)이라는 작은 시골도시였다. 한국의 치열하고 복작거리는 문화가 전부인 줄 알았던 내게 그곳에서 홈스테이 가족들과 함께 보낸 3주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행복이었다. 이때의 경험이 기폭제가 되어서 다시 떠난 나의 두 번째 캐나다는 조금 더 소란스럽고 북적거렸지만 6년 전의 그 캐나다 특유의 분위기와 크게 결이 다르지 않았다.


캐나다에 도합 7개월간 지내보면서 내가 느꼈던 캐나다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정리해보자면,



 번째, 고맙다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캐나다인들은 친절의 대명사다. 한국에서는 감사하다, 고맙다는 말이 비즈니스적인 상황 외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식당이나 영화관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께 하는 감사인사도 내 알바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하는 사람들만 했다. 그런데 내가 캐나다에서 가장 충격받았던 문화 중 하나는 버스에서 내릴 때 승객들이 모두 고맙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는 것. 뒷문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내리는데도 10명 중 9명이 Thank you를 외치고 내렸다. 그래서 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땡큐파티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한국에 돌아갈 때쯤 되니 내리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제일 크게 외치고 있었다. 땡큐!!!!!!





 번째,  9시가 되어도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이건 16살 때 갔던 캐나다에서 가장 크게 느꼈다. 당시 홈스테이를 하던 집은 굉장히 시간을 밀도 있게 보내는 집이었다. 3시쯤 내가 학교에서 연수 프로그램이 끝나면 홈스테이엄마는 나와 손녀 헤일리를 데리고 요양원에서 어르신들과 빙고게임 봉사를 가거나, 쇼핑몰을 가거나, 영화를 봤다. 헤일리를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은 후 밤 9시에는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딸의 집에 가서 그의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고로 2시간 만에 헤일리와 재회할 수 있었다.) 가족들과 보내는 1시간을 위해 밤 9시의 피곤함을 참는다는 것은 16살이었던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출근이나 등교처럼 사회에서 의무로 정해 놓은 루틴이 아님에도 매일을 이렇게 보낼 수 있다니. 홈스테이 엄마의 하루는 평화로웠지만 1시간도 허투루 쓰는 시간이 없었다.


이때 이후로 나는 하루를 밀도 있게 살아보려고 무진장 노력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고딩이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맘껏 보낸다는 건 인생을 포기한다는 것과 다름없었고, 성인이 되고 나서야 평화롭게 빽빽한 삶을 좀 즐겨볼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씩 스스로 게을러졌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때 그 홈스테이 엄마를 떠올리면 정신이 번쩍 나곤 한다.





 번째,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음, 이건 캐나다뿐만 아니라 한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해당할 거다. 캐나다에서 가장 편했던 건 레깅스를 아주 맘대로 입고 다녀도 누구 하나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난 복부지방이 콤플렉스 아닌 콤플렉스라 배가 드러나는 옷을 안 입는 편인데 캐나다에서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몇 번씩 입고 다녔다. 나랑 어울리든 말든 입고 싶으면 입는 거였다. 내가 뭘 입어도 아무도 신경을 안 썼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초겨울부터 '패딩 눈치싸움'을 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11월에 민소매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내가 더워서 입겠다는데 뭐 어쩔거야~" 마인드인건가,, 그게 맞다면 정말 본받아야 마땅하다.


학원 수업에서도 그랬다. 한국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질문 한 마디 못하던 내가 수업시간에 막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영어로. 한국인 입장에서 되게 바보 같은 질문들을 여기저기서 우후죽순 하는 걸 보며 나도 자신감이 생겨 수업 중에 대답도 제일 열심히 했다. 외국에서 한국인을 멀리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획일화가 미덕인 나라에 살면서 용기를 잃은 채 살아왔구나. 라고 생각하고 한국에선 시선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자고 다짐했지만 복학을 하자마자 원래의 눈치쟁이 나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렇지만 나는 캐나다에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내 취향을 찾는 방법을 배워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짧은 티셔츠에 레깅스만 입고 돌아다니는 건 하지 못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온전히 내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헤어스타일, 패션, 음악 중 대부분은 다수의 취향을 필터링 없이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진심으로 열과 성을 쏟는 캐내디언들을 통해 깨달았다. 언제부터 다수를 따르지 않는 게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만 한다면 조금은 눈치 없어져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캐나다인의 특징이라고 단정 짓기엔 성급한 일반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지극한 단면에서 배운 깨달음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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