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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캉가루 Nov 22. 2020

우리 반에는 한국인이 나밖에 없네?

직접 부딪혀보는 수밖에.

드디어 첫 수업날. 배정받은 반으로 들어가니 이게 웬걸! 18명의 친구들 중 한국인이 나밖에 없었다. 물론 한국인과 크게 어울릴 생각은 없었지만  서로 말은 많이 섞지 않더라도 수업 들으면서 모르는 것 정도는 물어볼 수 있는 한국인이 적어도 1명은 있을 줄 알았다. 이 문제는 타국살이 3일 밖에 안된 나에게는 꽤나 두려운 일이었다. 어쩔 수 없지, 직접 부딪혀보는 수밖에.


담임 선생님이었던 마크는 친절한 캐내디언의 표본이었다. 말을 하다가 잠시 과부하가 걸리면 끝마칠 때까지 기다려줬고, 항상 학생들이 하는 모든 말에 "Thank you"를 빼먹지 않았다. 수업도 무척이나 잘 준비했는데, 2~3명의 그룹을 지어 특정 이슈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고, 돌아가면서 반 전체에게 내 생각을 말하는 식의 수업을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진행했다. 처음에 이 수업은 정말 고역이었지만 어떻게든 말을 못하는 수모를 겪지 않기 위해서 매일 뇌를 치열하게 돌리다보니, 한 달쯤 지나 내 의견을 자유자재로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덕분에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반 친구들과도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 반 친구들의 국적은 나를 포함해 한국, 일본, 멕시코, 콜롬비아, 독일, 칠레, 프랑스, 스페인 등 정말 다양했는데, 절대 일반화할 수 없겠지만 나라 별로 나타나는 친구들의 성격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 중 재미였다. 일본 친구들은 항상 조심스러웠고, 멕시코 친구들은 일상 생활에서도 항상 흥과 바이브가 패치되어 있었다. 콜롬비아 친구들은 무심한 듯 친절했으며, 독일 친구들은 착하지만 말에 항상 강단이 있었다. 또 칠레 친구들은 말이 정말 빠르고 똑부러지는 친구들이 많았고, 프랑스 친구들은 가끔씩 거만하지만 대체로 살가웠으며, 스페인 친구들은 뭔지모를 카리스마가 있었다.


이 반에 슬슬 적응이 될 무렵, 내가 이 반의 "the only Korean"이라는 사실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그 시절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에 함께 하는 중이었고, 이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친구들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익숙한 풍경의 사진들이 올라오곤 한다. 그렇게 친했던 사이가 아니었을지라도 그 시절, 모두에게 타국이었을 그 공간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직까지도 우리는 형용할 수 없는 유대감을 느낀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 여행이 힘들어진 요즘, 조금 더 팍팍해진 한국에서의 일상에 지칠 때쯤이면 문득 그때 그 반 친구들이 생각난다. 어쩌면 앞으로 다신 보지 못할 친구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친구들과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통해 연결되어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절절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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