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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브륄레 Aug 08. 2021

만 2세 영아가 한 충격적인 말

어린이집 실습생이 겪은 일

"넌 치마 안 입어서 안 예뻐!"


놀랐다. 저 말이 만 2세.. 그니까 3살, 4살짜리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

시한폭탄 같은 말을 던지고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모르는 눈빛을 보내는 아이.

본인 원피스 끝자락을 만지작 거리며 바지 입은 친구를 향해 인상 쓰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영문도 모른 채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치마만 예쁜 게 아니에요. 바지 입어도 예쁜 거예요. 봐봐. 선생님도 바지 입었는데 예쁘지요?"


"그렇게 말하면 친구가 속상해요."


내 말을 듣고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무언가 생각하는 아이. 유독 다른 친구들의 원피스에 관심이 많고, 본인이 원피스를 입은 날 맘껏 뽐내던 아이였다. 치마만 예쁘다고 생각해서 그랬구나. 내 말을 계기로 바지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음 했다. 


잠깐의 해프닝으로 생각했는데 점심시간에는 더 충격적인 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점심을 먹는데 바닥에 무릎을 꿇고 불편하게 앉아 있었다. 


아이 앞에 앉은 선생님이 아이에게 말했다.

"그렇게 먹으면 불편할 것 같은데, 우리 양반 다리하고 먹을까요?"


"그건 우리 아빠같이 배 나온 사람이 하는 거야! 난 여자 다리 할 거야!"


????????? 

나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아이의 행동을 보았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하고 인어공주처럼 다리를 오른쪽으로 빼서 앉는 아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뭐라고 말해줘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아이가 저런 말을 했다는 건 저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과 같아서, 자신이 보고 들은 걸 따라 한다. 집에서 화장하는 엄마를 보고 어린이집에서 거울을 보며 장난감으로 얼굴을 팡팡 두드리기도 한다. 가정과 마찬가지로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할 말, 친구들이 한 말도 똑같이 따라 해서 특정 말투가 전염되기도 한다. 예컨대 한 친구가 본인 의견을 말할 때 "있잖아.."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다고 하자.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과 상호작용 하다 보면 어느새 그 반 아이들 대부분이 "있잖아"라는 말을 쓰고 있다. 선생님이 개구리 인형을 든 아이를 보고 "개굴개굴"하면 아이는 똑같이 "개굴개굴" 소리를 내곤 한다.


이처럼 아이들은 어떤 사고 과정 없이 주변의 것들을 따라 하곤 한다. 그래서 두려웠다. 내가 하는 단어, 문장, 말들이 전부 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텐데 자신이 없었다. 내가 뭐라고, 내가 하는 말들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그대로 흡수하는 아이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더 잘 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 좀 더 다양한 단어를 사용하고 싶었고, 좀 더 잘 표현해주고 싶었다. 무의식 중에 편견이 섞인 말이 나오진 않을까 항상 긴장했다. 


그런데.. 아이가 오늘 하는 말들은 전부 충격적이었다. 저 아이는 대체 어떤 걸 보고 들었길래 저런 말을 할까 싶었다. 추측하건대, 가정에서 저런 말을 들었을 거다. 이 나이대의 아이는 가정-어린이집이 전부니까 말이다. 저 쪼끄만 아이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내뱉느냔 말이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건 아이의 말이 아닌 분명한 어른의 말이었다. 


새삼 부모와 선생님이 하는 말의 중요성과 위험성을 느꼈다. 

아이는 백지와 같아서 스펀지와 같아서, 자신이 보고 들은 걸 전부 제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주 양육자와 주변 어른들이 어떤 말과 사고를 하느냐가 곧 아이의 말과 사고가 된다. 모든 어른이 조심하면 좋으련만 안타까울 따름이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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