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으로 시작된 일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바로 행복해지듯이 나에겐 순간을 즐기기 위해서 그리기라는 방식이 가장 익숙하다.
아일랜드에 오기 전 유일하게 다짐한 것이 있다면 드로잉을 많이 하자는 것이었고,
마음에 드는 형상을 발견하거나 지금을 기억하고 싶을 때 펜을 들었다.
이 곳에 와서는 무엇이든 새롭게 느껴졌지만,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을 많이 그리게 되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고,
다양한 만큼 재미있는 캐릭터가 많아서 부지런히 그렸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우리의 첫 친구, 스페인에서 온 에오퀘니오-
점심식사에 초대받는 건 처음이었는데, 그 정성이 너무 고마웠다.
음식을 잘하거나 넓은 집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공용 베란다 야외테이블에서 먹었다.)
나의 작은 선물을 받고 이렇게 성의를 표하는 모습이.
이때는 서로 아일랜드에 온 지 별로 되지 않아 말도 거의 안 통하고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지만,
꼭 많이 알고 말이 잘 통해야만 친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로 우리는 단짝이 되어 많은 것을 함께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하마드-
수업시간에 에오퀘니오 그림을 그려주는 것을 본 내 옆자리 하마드는 핸드폰으로
자기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런 부탁을 직접적으로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갖고 싶었나 보다 생각해서 그림을 그려갔다.
이 그림을 보고 또 너무 좋아하며 이번 주에 자기 집에서 푸드 파티를 하는 데에 초대한다고 했지만 ,
우리는 주말에 근교 여행을 가기로 했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쉬는 시간에 전화 몇 통 후 파티를 연 날짜를 하루 앞당겨서 변경했고 다시 우리를 초대했다.
그래서 찾아간 파티.
우리는 역시나 이런 파티에 처음 왔는데,
어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끼리 영어도 늘고 친구를 사귀기 위해 종종 이런 파티를 연다고 했다.
그리고 이 파티에서 집주인의 친구인 아이리쉬를 만났는데,
우리가 부부이고 1년 동안 머무를 예정이라고 하니 본인이 운영하는 B&B에 둘이 지내기 좋은 방이 있다며 보러 오라고 했다. 그렇게 운 좋게 아일랜드에서의 우리 '집'을 정말로 찾게 된다.
이제는 밖으로 나가서도 그려보자, 하고 공원 옆 계단에 앉았다.
이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옆에 앉아있던 부녀가 관심 있게 쳐다본다.
그런데 너무 잘 생기고 이쁘길래 그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그려줄까? 물어보고 한 장 그려줬다.
이 그림을 선물해준 후 나중에 길을 걷다가 마주쳤는데,
이걸 크게 프린트해서 액자에 넣어 할머니에게 선물했다고 했다.
나의 작은 그림이 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 같아 엄청 뿌듯했다.
나온 김에 한 명 더 그려보자 해서 내 레이더에 포착된 아기. 난 아기들 그리는 걸 좋아한다. 예쁘니까~
그 후로 종종 밖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몇 개는 선물로 주기도 하고 그랬다.
이런 날도 있었다.
골웨이 아트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보고 엔딩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라 집에 돌아와서 한 장면을 그렸는데,
며칠 후 길거리에서 그 공연을 했던 주인공을 만난 것이다! (원래 사람을 잘 알아보는 편이다)
그래서 먼저 말을 걸어 아는 척을 하고 드로잉북을 펴서 공연 그림도 보여주고,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었다.
그리면 그릴수록 잘 그려지니까 부지런히 그리자고 다짐한다.
어디를 가든 드로잉북과 펜은 꼭 챙기고, 친구들이랑 놀 때에도 꼭 한장은 그리고 놀자고.
그리고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