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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Jan 08. 2021

이... 이게 아닌데?

졸지에 생일을 병상에서...

    한창 신랑이 아이들을 깨우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던 오전 즈음부터 갑자기 찌를 듯한 복통이 잠을 깨웠다. 날카로운 송곳이 오른쪽 하복부와 상복부에 걸쳐 관통하는 듯한 통증이었다. 신랑이 아이들을 등원하는 동안 나는 동네 내과로 가서 복부초음파 검사는데 문외한인 내가 봐도 확연하게 맹장이 부어있었다. 의사맹장뿐 아니라 주변에도 염증이 있는 것 같다며 작성해주신 소견서를 들고 추천받은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통증이 하복부뿐만 아니라 상복부에도 두드러지니 난생처음으로 CT를 촬영하게 됐다. 검사할 때는 MRI처럼 반듯한 평상 기계 위에서 양팔을 만세하는 자세로 누우면 돔 모양의 터널(인체 내부를 촬영하는 기) 속으로 이동한다. 작년 여름에 타 병원에서 뇌 MRI 촬영했을 때와 차이가 있다면 이번 복부 CT는 촬영 전에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실시한 후 검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서 약간의 조영제와 조영제 부작용을 막아주는 약물, 그외 다른 수액 투여되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지켜본 후 검사실로 향했다. 약물이 주입되자마자 목구멍이 허하면서 그 아래로 한동안 텁텁하고 린 느낌이 들었다. 


    MRI는 돔 터널 내부가 면전 가까이에  이동이 멈추면 굉음이 들리면서 15~20분가량 한 자리에 고정돼있다가 검사가 끝나야 다시 이동하는데 비해, CT는 돔 터널이 얼굴에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고 표면에 얼굴 모양과 초세기를 나타내는 LED 등이 켜져서 음성안내와 함께 호흡을 지시한다. 그러면 환자의 호흡에 맞춰서 내가 누운 기계가 돔 터널 입구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두어 차례 반복하는 동안, 돔 터널 내부에서는 빙글빙글 도는 레이저 같은 불빛의 회전이 가속되는 동시에 위잉하는 모터 작동 소음이 점차 커지면서 돔도 덩달아 진동한다. 도중에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조영제가 투여되는데, 수액 바늘이 꽂힌 혈관 부위가 뻐근해지면서 1분가량 목구멍에서부터 하반신에까지 뜨거운 열기와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싸악 퍼져내려가는 와중에도 호흡을 들이쉬어 참고 내뱉는 지시를 따르며 검사를 진행한다.


    또 하염없는 기다림 끝에 내린 담당의의 소견은, 현재 오른쪽 대장의 염증이 심하고(내가 봐도 3분의 2가 새하얬다.) 그렇기에 맹장염이 애매하다는 것이었다. CT상으로도 조건이 완전히 충족되지 않은 까닭인데 오른쪽 대장에서의 염증의 여파인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오른쪽 대장의 경우 염증으로 인해 당장 내시경이 불가하기에 4~5일간 입원으로 금식과 약물치료를 병행해도 차도가 없으면 염증 부위를 절제하수술을 진행해야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별개로 맹장 역시 확인이 되면 약물 치료가 아 무조건 수술 해야 된다고 한다.


    어제만 해도 주말에 애들 맡기고 혼자 나들이 갈 생각에 잔뜩 들떠있었건만 하루아침 새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 잘 시간이면 엄마만을 찾는 아이들도, 혼자서 사남매를 케어할 신랑도 걱정이었고, 혼자 일주일 가량 입원으로도 눈앞이 캄캄한데 수술대에 올라 대장을 절제한다니? 입원은 더러 경험이 지만 수술은, 그것도 보호자 없이 혼자서 경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란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대장을 절제하게 되고 난 후어떻게 되냐고 질문하니 담당의는 너무도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는 데 별 지장 없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 안심은커녕 여전히 심란했지만 어쩌면 나와 같이 수많은 환자의 두려움과 막막함을 종일 접했을 의사로서는 세상 침착한 말씨로 가볍게 대응하는 것만큼 별 도리가 없을 것도 같다. 결국 근심이랄 건 가벼이 넘기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주어진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될 뿐이다. 지금은 환자이니 의사의 진찰과 간호사의 간호를 잘 받고 무사히 수술 없이 나을 수 있게끔 몸도 마음도 휴식하는 게 그 일이겠다. 금식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는 와중에 몰려오는 식탐을 억눌러야 함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프로입원러는 집에서 세면도구, 속옷, 책, 전자기기 등 일주일 가량 입원하는 동안 필요할 생필품과 여가 거리를 한가득 챙기고 와서 입원 수속을 마쳤다. 9년 전엔 엄마가 수술하시느라, 5년 전엔 셋째를 낳은 이후 병상에서 맞이하는 생일이라니. 그래도 병편의가 좋은 편이어서 여러 시설이 잘 구비되있고 미리 가져온 전자기기 덕분에 지루할 틈은 없다. 무엇보다 1인실과 20만 원 차액으로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린 다인실인데도 아무도 없는 덕분에 거의 1인실인 듯 지내고 있다.


    나름의 성과가 있다면 드디어 동네에서 괜찮은 내과를 게 된 것이랄까. 두통만 왔다 하면 몇 날 며칠을 구토하느라 고생깨나 했던 작년 한 해 동안 내과와 신경과를 질나게 드나들었는데 가는 곳마다 의사들의 과잉진료 내지는 밑도 끝도 없 무례한 발언(결혼을 왜 이렇게 일찍 한 거냐, 애들을 왜 이렇게 많이 낳았냐, 살은 왜 빼질 않느냐고 전혀 진료와 관련 없는 질문 세례를 퍼붓거나, 산후우울증이라고 호소한 적도 없는데 다짜고짜 주사 놓는 직전에야 산후 우울증에 좋은 비타민D라고 설명하는 등)으로 하여금 종종 상처받았던 까닭에, 오전에 복통에 시달리는 와중에 예의 내과들과는 제발 다른 스타일이길 바라며 모험을 감수했고 다행히 잘 찾아다.


    얼마 전에 개원한듯한 신식 시설에 그저 의료적 소견만 간단명료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도 (병원 갈 일이 없어야 하는 게 더 중허지만) 내과에 내원할 일이 있으면 꼭 이곳으로 다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 뒤 입원하고 얼마 안 돼서 전에 진찰받은 바로 그 개인병원 내과 의사로부터 직접 전화가 왔는데 용건인즉슨, 나처럼 급성으로 진행된 케이스는 거의 본 적이 없어 우려다는 것이다. 이런 시국에 금방 입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쾌유를 빌어준 차분한 중저음의 음색으로 하여금 위안이 되었다. 환자의 개인적인 상황 내지는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본인 잇속 채우기 급급한 의면허증 소지자가 아닌, 의료인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환자를 대하참된 의사를 비로소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 꽃밭을 가꾸는 것도 지옥을 만드는 것도 바로 자신이라는 어느 불경의 구절과 같이 결국 마음먹기에 달린 인생사 아니겠는가. 궁상을 떠느니 나름 쾌적한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며 몸속이 이 지경이 되도록 지친 심신을 좀 쉬게 하라고 주어진 시간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깃털처럼 솜털처럼 한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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