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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Jan 17. 2021

A New Life

보잘것은 없다 해도 감당해야 할 내 삶, 풀잎처럼 다시 일어서.

Photo by. Ochir-Erdene Oyunmedeg / Unsplash


    목요일, 입원한 지 만 6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집 안에서만 틀어박히는 것도 무기력하고 우울한데 그보다 더 비좁은 데서 온종일 손등에 수액 바늘에 꽂은 채 지내니 움직일 때마다 걸리적거리는 바늘과 호스는 몹시 성가셨다. 바늘을 안 꽂은 남은 한 손으로만 혼자서 씻기 고충이 아닐 수 없었고, 항생제가 투입될 때마다 뻐근해지는 팔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수액 바늘을 뽑아버리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병실 내 신규 환자마다 수술 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불평불만을 멈추고 그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어찌 됐든 가장 두려웠던 수술은 면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월요일까지만 해도 회복이 더뎠는데 점차 염증 수치도 정상 수준으로 떨어졌고 수요일 즈음 복통도 많이 완화되어 차도를 보였다. CT를 재검하는 날엔, 첫 검사 땐 뭣도 모르고 덜컥 받았다가 조영제가 몸에 투여될 때의 불편한 감각을 몸소 경험한 이후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본 부작용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알고 나서는 검사 전부터 얼마나 떨렸던지. 물론 재검도 무사히 넘어갔지만 말이다. 여하튼 CT상에서 아직 염증은 미량 남았으나 금식이 해제됐고 수액으로부터 6일 만에 해방됐다. 아직은 아랫배가 아프다기보단 살짝 우리우리-했지만 약도 처방받았고 처음 입원했을 때 비하면야 이 정도는 거뜬하다.




이번엔 다를 거라 믿었어 이번엔 힘들던 지난 시절 떠올라 절망 속에 아픈 기억들


    생일날엔 유독 여기저기서 연락을 많이 받았던 하루였다. 평소 왕래가 없다가 뜻밖에 위문차 안부를 물어 온 이들도 있었고 그날따라 가족들과의 전화 통화 횟수도 부쩍 잦았다. 입원 첫날에 평소 자주 하지도 않던 SNS에 뜬금없이 병원에 입원한 근황을 밝히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래도 관종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괜한 짓을 했나 후회가 들어 오래간만에 받는 연락들이 반갑다 못해 심히 부끄러웠다.


이제는 알 것 같아 세상을 이제는 몰랐었겠지 미처 그때는 호기심만 가득했을 뿐


    그렇게 감사와 위안으로 충만했던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현실에 내팽개쳐졌다. 혼자였던 병실에 환자들이 들어찬들 어차피 혼자라는 사실은 변함없었고 사뭇 넘길 일에도 신경이 쓰여 책을 읽어도 내용에 집중하기가 여간 어려웠다. 병원이야 하루빨리 퇴원하고 싶지만 이후에 기다리고 있을 막막함이 상기된 까닭이다.


내 안에 어떤 꿈이 자라나 내 안에 그 밖에 다른 것은 필요 없었어


    입원하는 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지난주까지 나를 수시로 괴롭히던 갑갑함이 일순 밀려왔다. 대체 나는 뭐가 문제일까? 지난 삼십 년 가까이 남들보다 허송세월 한 건 명백한 사실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걷잡을 수 없는 우울과 무기력이 삶의 어느 구간마다 시나브로 침잠했고 이번 구간 여느 때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모르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속삭이네 그 꿈들이


    며칠 전 내가 혼자임에 못 견디고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느꼈다. 왜 그런지 그 이유에 대해 애써 골몰히 떠올리진 않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고독이 필연적임을 당연시. 그러다 불현듯 어느 순간에 스치듯이 떠올랐다. 아, 나는 어쩌면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는구나.


내 사랑 나를 뒤흔들고 떠난 사랑 홀로 남겨두고 떠나가지만 추억들을 간직해야 해


    비루하다시피 과거에 연연한 덕이랄까 그로 인해 빈 퍼즐 조각이 맞춰진다. 생애 가장 마음이 아팠던 시절을 겪은 이후 내겐 늘 열등감, 자괴감과 더불어 모든 화근이 나 때문이라는 부채감이 내면에 잔존했다. 그런고로 매번 노심초사하느라 일을 그르치고 사람을 잃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가정을 일찍 꾸려 의도치 않게 사회에 단절되는 시간이 길어지니 다시 외로웠고, 지나친 의존에서 간신히 벗어나니 이번엔 피곤할 정도로 지나치게 상대방을 의식한다. 


일어나 툭툭 털고 꿈에서 깨어나 공연한 환상에서 벗어나 잘해왔잖니 지금까지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무심함을 잘 알면서도 돌아오는 반응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어릴 적엔 나이에 숨어 미숙한 티를 내어도 여상이 넘어갔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어른스러움이 요구됐다. 그럼에도 내면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채 어릴 적 그대로 갇혔던 것이다.


내 인생 보잘것은 없다 해도 내 삶 내 스스로 감당해야 할 내 삶 쓰러지지 마 버텨야 해


    고민에 휩싸이든 말든 냉정한 세상은 도태된 낙오자 따위 신경 쓸 겨를 없이 시간에 따라 흘러갔다. 남들보다 뒤처지고 느려 터진 자신에 염증을 느끼며 매사 초조하지만, 어찌 됐든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야만 한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가 부르는 넘버 <A New Life> 가사에서처럼. '보잘것은 없더라도 결국 스스로 감당해야 할 나의 삶이므로 쓰러지지 말고 버텨야'한다. 그런다 한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새 인생 폭풍은 지나갔어 새 인생 다시 태어날 것처럼 환생 풀잎처럼 다시 일어서


    머리를 아무리 꽁꽁 싸맨 들 답은 없고 곧 퇴원을 앞두고 있었다. 수납 전 미리 짐을 싸두고 사용했던 이불과 환자복을 차곡차곡 개어 머문 자리를 정돈해놓았다. 커피는 마셔도 괜찮단 말에 병원 아래층 카페에서 주문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홀짝이며 집으로 돌아가자, 일주일 만에 상봉하는 엄마에게 아이들이 달려왔다. 다시 혼자에서 벗어나 현실이 다가왔다. 위태로움과 행복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아슬아슬한 일상이 돌아왔다. 여전히 어떻게 살아갈 지 난감하지만,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함은 자명하다. 답은 어디에도 없고 바로 눈 앞에도 있다.


내가 살아가야 할 인생 시작해 새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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