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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Jan 17. 2021

방아깨비의 미니쉘, 소보루빵, 마운틴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퇴원한 지 이틀 차, 아직 배가 우리우리-해서 외출은 도저히 엄두가 안 나 못내 아쉬워하는 내게 신랑은 부러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내일 마침 남양주에 갈 일이 있는데 외할아버님 묘소까지 데려다줄까?" 나는 흔쾌히 동의했지만 이 추위에 애들을 다 데리고 갈 만큼 무슨 볼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웃음을 참지 못한 신랑의 대답에 따라 한참을 웃었다. "우리 와이프네 외할아버님 묘소에 가보려고." 아, 방심하다 당했다.


    내가 셋째를 임신했고 외할머니께서 팔순을 맞으셨던 해의 추석날이었다. 당시 생전의 외할아버지는 이미 노쇠하셔서 같이 사는 가족들조차 종종 못 알아보시곤 했는데, 희한하게도 먼저 외가댁 현관을 들어선 외손서는 왕래라곤 가끔 찾아뵈어 인사드린 게 고작이었음에도 이름까지 부르실 정도로 알아보셨으면서 정작 십여 년을 함께 살았던 외손녀인 내게는 누구냐고 물으셨다. 이후 우리 부부는 그 일화를 회상할 때마다 역시 *외손녀는 방아깨비보다 못하다며 실없이 웃었다.



* 직접 외조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적은 없지만, 외손녀를 예뻐하느니 차라리 방아깨비를 예뻐하겠다는 기성세대식 표현이 있다고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2019년 초여름, 엄마의 환갑을 며칠 앞두고 숨을 거두셨다. 뱃속에는 넷째가 출산을 두 달 앞두고 한창 꾸물거리고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엄마 인생의 전환점을 목도했고 막내가 탄생했던, 그야말로 강렬한 슬픔과 기쁨의 양극단이 공존했던 해였다.


    처음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로 부고를 들었을 때만 해도 믿기지 않아 얼떨떨했는데, 평소와 다름없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영정사진으로 뵈니 덜컥 울음이 쏟아졌다. 앞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세 번 있었지만 친가보다 외가가 더 각별했고 성인이 된 이후라 슬픔의 무게가 유달리 컸다. 내가 기억하는 외할아버지 생전 마지막 모습은 그해 초, 공교롭게도 내가 6년 전에 결혼식을 올렸던 결혼식장이 폐업 후 같은 자리에 들어선 요양병원에서였다(그 후 다른 요양병원으로 옮기신 얼마 후에 영면하셨다). 병상에서의 할아버지는 입원 전보다 훨씬 수척해지신 모습으로 손녀는 물론 딸조차 알아보지 못하셨다.

    나는 남겨진 유가족의 슬픔은 안중에도 없이 위로랍시고 내뱉는 호상이란 말을 무척이나 싫어하지만, 어찌 됐든 할아버지께서 주무신 와중에 가셨고 그 표정이 편안하셨다고 전해 들었을 때는 내심 안심했다. 남겨진 이들은 이미 이별만으로도 벅찬데 고인의 마지막마저 평안치 못한 경우 그 비통함은 평생토록 가슴속에 사무칠 것이다. 결국 죽음은 자들의 몫이다.



    우리 사남매의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는 기동력(과 체력)과 손주들을 향한 어마어마한 애정을 겸비하셔서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 앞 놀이터부터 대형마트는 물론 휴가철에는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오신다. 그때마다 매번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에 비해 내 어린 시절엔 이미 양가 조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셨기에 여행은커녕 인근 친척집마다 전전하다시피 맡겨졌으므로 드물지만 그만큼 생생한 외할아버지에 관한 추억이 있다.


    내가 세 살 때부터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우리집은 외가댁과 이웃해서 살았다. 미취학 아동이었던 어느 시절, 마흔을 바라보시던 엄마와 아비는 출근 전에 한창 꿈나라인 나를 외가댁에 데려다 놓으셨다. 가끔씩 이동 중에 깨어난 적도 있지만 대개는 눈을 뜨면 외가댁 안방이었다. 낡았어도 영롱함을 뽐내던 자개장과 이부자리 위로 말간 햇살이 부서지는 고즈넉한 방 안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떠오르는 기묘하고도 아늑한 풍경이었다.


    여느 때처럼 외가 안방에서 깨어난 어느 날의 기억에서 나는 외가 어른 중 누군가를 찾으러 안방을 나섰다. 안방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좌측 책장 겸 수납장에는 각종 열쇠 꾸러미, 책, 외조부모님의 나들이 사진이 담겨 있는 작은 액자 등 별별 잡동사니가 정갈하게 자리했다. 그중 어렸던 나의 눈에 띄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어쩌면 내 눈높이에 딱 들어맞는 위치에 덩그러니 놓인 미니쉘 초콜릿이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마침 허기진 나는 별생각 없이 그 초콜릿을 혼자 주섬주섬 먹었다. 그렇게 언제부터 시작됐고 언제까지였는지 모를, 외가댁에서 초콜릿을 찾아 먹는 일상은 꽤 여러 날 반복됐다. 그 시절로부터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그 초콜릿을 날마다 챙겨주신 사람이 외할아버지였음을 알게 됐다.


    엄마로부터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외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종종 듣곤 했지만, 외손녀로서 기억하는 외할아버지는 생전에 말씀은 물론 표정 변화 역시 거진 없으셨다. 다만 이따금 방아깨비만도 못한 외손녀에게 말없이 내보이신 따스한 정을 간직할 뿐이다.

    예의 미니쉘, 아비가 빚만 잔뜩 남긴 채 잠적했던 얼마 후 한동안 외가댁 앞 작은 정원에서 화초 키우기에 미친 듯이 몰두하는 나를 그저 말없이 지켜보시며 종종 분갈이를 도와주셨던 모습도, 어느 날엔가 거동도 불편하신 분이 나와 동생을 말없이 태극당으로 데리고 가셔서 각자의 손에 쥐여주셨던 소보루빵도, 외가댁에 심부름 갈 때마다 역시나 말없이 건네주셨던 마운틴듀 캔 음료수도. 철부지라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더없는 온정이었다.

    가족 묘소에 외할아버지의 유골함을 안치한 날, 사람들이 각자 일을 보는 동안 외할아버지의 묘소 앞에 부랴부랴 사 온 미니쉘과 태극당의 소보루빵, 마운틴듀를 내려놓던 그 순간 조금 진정됐다 싶던 슬픔이 또다시 거세게 밀려왔다. 모두가 각자의 일로 분주한 가운데 아무도 만삭모라며 노심초사하지 않는 그 순간을 빌어 마음껏 소리 내어 울었다. 뱃속에선 막내가 나를 위로하듯 또그르르하고 잔잔히 태동했다.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유골함 위로 차가운 대리석이 덮여 봉안됐다.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이었다. 생전과 다름없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영정 앞에 내려놓은 세 가지 음식은 비록 그 시절의 것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어쩌면 외할아버지도 기억조차 못하셨겠지만 내 유년시절에 받은 가장 따뜻한 내리사랑에 관한 오롯한 추억앞으로도 변함없으리라.




    코로나 19로 첫 기제사에 참여하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려 생일 주간 전 외할아버지 묘소에 다녀오기로 예정했던 날 하루 전에 복통으로 1주일을 입원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2년 전에도 엄마의 환갑을 맞아 모처럼 가족끼리 외식하기로 예정했던 날 하루 전에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빈소에서, 하필 엄마의 환갑을 얼마 앞두고 가셔서 더욱 슬프다는 어린 사돈처녀에게 시종일관 존대하시던 시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가족들이 동티 날 걸 외할아버지께서 거둬가신 거예요."


    묘원 입구에서부터 또 한참을 구불구불한 산길이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군데군데 눈이 얼어붙어 미끄러웠다. 운전하는 신랑이 절대 차 없이는 못 갈 곳이라고 연신 중얼거리는 혼잣말을 들으며 예의 시아버지 말씀이 떠오른 것이다. 하마터면 수술까지 갈 뻔했던 갑작스러운 입원은 어쩌면, 혼자만의 나들이랍시고 괜한 객기 부리다 탈 나지 말고 네 건강이나 좀 챙기라는 외할아버지의 타이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차창 너머로 나타난 할아버지의 영정을 보며 울컥했다.


    묘소마다 놓인 알록달록한 조화들을 보고 천진한 아이들은 마냥 예쁘다며 감탄했다. 신랑의 배려로 혼자서 한동안 외할아버지 묘소 앞에 덩그러니 앉았다. 오사바사하지 못한 방아깨비라, 미니쉘과 (급하게 집 근처 제과점에서 사 온) 소보루빵과 마운틴듀를 내려놓고 어설프게 인사드렸다. 2년 만에 뵙네요. 날씨가 제법 춥죠. 적적하지 않으세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어도 침묵 속에서 추억은 흘렀다.



    신랑과 묘소로부터 멀찍이서 노닐던 둘째와 셋째가 내 곁에 와 섰다. 지금 막내만 할 때나 한 번 뵜을 왕할아버지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했던 아이들은 자신을 소개하며 허리 숙여 예쁘게 인사했다. 다음엔 엄마와 함께 오겠다는 인사를 끝으로 돌아서니, 따스한 오후 햇볕 아래 비행하는 까마귀 무리의 서글픈 울음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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