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수영 살살 아니고 사살 루틴

헤드업 자유형으로 사살, 노핀 접영으로 확인사살

by 이선하

헤드업 자유형(head-up freestyle)은 구조영법 중 하나로, 조난자 또는 장애물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시선을 전방에 고정한 상태에서 자유형 크롤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일반 자유형과 달리 머리를 들고 수영하므로 수면 저항이 증가하지만, 시야 확보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저항을 역이용한 헤드업 자유형 드릴은 킥과 풀의 스피드를 끌어올리기 위한 훈련으로 쓰인다. 요즘은 강습에서 핀수영 필수루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다음 주문이 무엇인지 짐작할 겨를도 없이 반쯤 죽어가던 무렵, 강사가 외쳤다.


강사 | 갈 때 스트레이트 암, 올 때 팔꺾기로-


아하. 자유형인가.


강사 | 자유형 헤드업-


설마. 한 바퀴겠…


강사 | 세 바퀴!


???


강사 | 휘익!


선생님 휘파람 압수!!!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25m도 버거운데 세 바퀴라니. 차라리 무호흡 접영을 돌고 말지.


내 앞과 뒤로 여백의 미가 훤했다. 무려 헤드업 크롤로, 그것도 상급반 강습 중에 황제수영했다. 이왕이면 호텔 수영의 대명사인 헤드업 평영이 더 나았을 것을.


도저히 힘은 안 들어가고, 킥이 느려지니 팔도 따라 무너졌다. 어제 본 참고 영상 속 영자들의 시범은 참 쉬워 보이던데, 내 수영은 눈곱만치도 구현이 불가했다. 드릴의 본 의도를 벗어나 물을 찌르는 사마귀영법을 터득해 버렸다. 구조 영법은 무슨, 간신히 코까지만 내놓고 버둥대는 내가 오히려 구조 대상이었다.


제낄까? 상급반이 된 이래 아무리 힘들지언정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는데, 이번 한 번은 제낄까? 이렇게 느려서야 뒷사람에게도 민폐… 라기엔 이미 상당수가 데크에서 휴식 중이었다.


물을 어찌나 들이켰는지 두 바퀴째부터 속이 울렁거렸고, 기어이 세 바퀴 완주 후엔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이대로 퇴수할까? 화장실에서 게워낼까? 고민도 잠시-


강사 | 휘익!


파블로프의 개마냥, 가차 없는 휘파람 소리에 반응한 몸은 이미 물속 스타트 중이었다.


이후에 킥보드 발차기 200m 2세트를 돌고, 접영을 돌고, 이러다 발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을 즈음 오리발을 벗었다. 오늘은 일찍 끝났다며 들뜬 어느 회원에게 말했다.


나 | 바로 노핀 시키실 거예요.


예언은 적중했다.


강사 | 접영 빠르게! 휘익!


핀접영 직후 노핀 접영도 필수루틴이 되어 버렸다. 아까의 "차리리 접영 연속이 낫다"는 생각은 곧 취소했다. 빠르게는 무슨. 오리발로 물 위를 한껏 날뛰자마자 벗고 접영하는 순간, 가차 없이 물결에 붙잡혀 제자리 접영이 되어버렸다. 핀빨과 본 실력의 간극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내 기준에서 가장 잔인한 확인 사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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