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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단상

그럼에도 유연하게

가장은 함부로 아플 수도 없다.

by 이선하


몸살이 나면서 오한이 들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앓는 소리를 내니 하가 불안해했다. 내 아이들은 유일의 보호자가 아픈 모습을 보면 걱정보다도 불안을 느낀다. 당연한 본능이다. 그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역시 아버지 자리가 부재했던 홀어머니 슬하에서 내가 그랬으니까.

그러니 가장은 함부로 아플 수도, 쉽게 내색할 수도 없다. 아무나 이해해 주거나 감싸줄 수도 없고 아무한테나 위로를 받거나 의지할 수도 없다. 무엇 하나 쉽게 행할 수도, 얻을 수도 없으면서 책임의 무게는 세상 무겁다.

그럼에도 나는 강하기보다는, 유연하고 싶다. 너무 단단해져서 쉽게 부서져버리기도 싫고, 너무 물러서 금세 터져버리기도 싫다. 아프면 아픈 줄 알고, 불안하면 불안할 줄도 알고, 그러면서도 이내 평정을 되찾고 멈추지 않고 내가 향할 곳으로 분명하게 나아가는 사람.


가장으로서 내가 아이들에게 보이고 싶은 본은 그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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