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나 광장의 슬라임과 세고비아의 새총
나보나 광장의 슬라임과 세고비아의 새총
어느 날 책을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1699년에 네덜란드 화가 카스파르 반 비텔이 그린 <나보나 광장>이란 그림을 보았다. 놀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300년전에 그린 그 그림이 내가 본 2018년의 나보나 광장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는 순간 그 날 그 광장에 내가 다시 서 있게 된 기분이었다. 그날 저녁 아이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고 물었다.
“여기 어딘지 맞춰봐. 기억 나니?”
“어... 여기.. 거기.. 나보나 광장”
아이의 기억은 정확했다. 평소 세계테마기행이나 여행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여행했던 곳이 나와도 기억하지 못 할 때가 훨씬 많았던 아이였다. 300년전의 그림으로 봐도 아이가 여기를 기억하고 있는데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로마 워킹 투어를 하던 날, 테베레 강가에서 우리는 걸어서 나보나 광장으로 걸어 들어왔다. 판테온으로 가기 전에 들린 나보나 광장. 아마 그 때가 여름이었더라면 훨씬 더 생기 있게 맘껏 뛰어 놀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드는 큰 분수가 있는 멋진 광장이었다. 그 유명한 베르니니의 걸작으로 트레비 분수보다 훨씬 더 멋진 피우미 분수다. 일명 4대강 분수 다뉴브강. 갠지스강. 나일강, 라플라타 강을 각각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그런 건 애초에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분수 앞을 뛰어다니는 아이 눈에 들어온 건 붉은 색 액체괴물이었다. 상인은 자신이 상대해야 할 고객이 누구인지 정확한 타켓을 알아보았고 아이는 그대로 걸려들었다. 그때부터 저 액체괴물 비슷한 걸 사 달라는 아이의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
슬라임처럼 생긴 액체 괴물을 던졌다 폈다 하며 아이 앞에서 유혹하고 있는 상인에게 다가가 얼마인지 물으니 2유로를 달란다.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나는 “원 유로” 라고 했다. 상인이 안 된단다. 네고는 관광객의 기본중에 기본이 아닌가. 나는 그대로 돌아섰다. 상인이 쫓아온다. 2개 3유로에 주겠단다. 그렇게 내가 호락호락하지 않지.
대꾸도 하지 않고 돌아서니 그제서야 “오케이 오케이” 하며 1유로에 순순히 내어준다. 정말 신기했던 건 이 슬라임과 똑같은 것을 타이베이의 야시장에서도, 방콕의 수쿰빗 대로 나나역 앞에서도 팔았고, 그때마다 아이는 이걸 샀다. 그리고는 이건 자신이 로마에서 샀던 슬라임이라는 것을 정확히 기억해 냈다.
아이는 얼마나 신이 났는지 앞도 제대로 보지 않은 채로 걸었다. 조물락거리고 던지고.. 너무 너무 신나했다. 신나게 가지고 노는 게 너무 좋았나보다. 더 이상 이어폰으로 듣는 워킹 투어 가이드의 설명 따윈 아이에게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 멋진, 감탄사 밖에 나오지 않을 만큼 위압감으로 눌리는 판테온 안에서 팍~~!! 슬라임의 물이 사방으로 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때부터 아이는 울음모드다. 세상 다 잃은 표정이다. 순간 나도 화가 나서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어졌지만 조악한 그 슬라임이 더 문제였겠지 싶었다. 그 이후 스페인 광장으로 이어진 길까지 아이의 투어는 로마의 골목길 곳곳에 눈물로 뿌려졌다. 결국은 내가 다음날 그걸 사주겠노라 약속하고 아이를 달랬다.
다음날,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 로마의 비를 맞으며 다시 나보나 광장으로 갔으나 있을리 만무하다. 늦은 저녁. 비까지 내리는데 그걸 팔고 있을 리가 있겠는가. 비오는 나보나 광장은 텅텅 비어 있었고 아이의 속상함은 비오는 날 저녁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던 나보나 광장에서 찍은 사진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이의 여행은 그런 것이다. 왜 그런 행동과 생각을 하고 고집을 부려대는지는 부모가 다 이해할 수 없다. 부모가 정한 일정대로 진행하는 건 아이에게 여행의 기억 상당 부분을 지워버리는 일이다. 공감하고 수용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 주는 것이 아이와의 여행이다. 그 액체 괴물은 다시 살 수 없었지만 비를 맞으며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이의 표정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아마 그 광장에 다시 사러 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그날의 나를 후회하고 있을 것 같다. 아이는 아직도 그날의 그 일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타이베이 야시장에서 다시 만난 그 액체 괴물을 보는 순간 아이가 말했다.
“이거 판테온에서 내가 터뜨렸던 그거네 하하하”
“세고비아의 새총 비둘기 사냥꾼이 나타났다~~~비둘기들아 대피하라~~~”
"그런데 저 언니 사냥꾼의 새총 명중율이 0%라며?"
"쫄지마~~ 그냥 하던거 해, 애들아. 저 언니 못 맞춰 ㅋㅋㅋㅋ"
발가락이 얼어붙을 만큼 춥던 날 아이가 세고비아의 상점에서 졸라 산 새총을 두고 우리는 이러고 놀았다.
그러나 이 사냥꾼은 결국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타 해변에서 결국 한 마리 맞추고야 말았다. 물론 아이가 쏜 새총의 위력은 너무도 약했기에 비둘기는 돌을 맞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한번 움찔하며 날개를 퍼드득 하더니 다시 모이를 주우러 다녔다. 아이는 겁이 많아 실제로 새를 맞추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로빈훗 보다 뛰어난 궁사가 된 냥 새총과 함께 온 스페인을 누볐다. 그 새총을 세고비아를 거쳐 톨레도, 마드리드, 바르셀로나까지 아이 가방에 넣어 다녔다. 톨레도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타구스 강 건너 언덕 위에서 아이는 풍경 감상 대신 새총 총알로 쓸 돌을 줍기 바빴다.
아이와의 여행에서 부모는 아이가 하나라도 더 많이 보고 듣고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부모 욕심이고 아이의 여행 기억을 잘라 먹는 일이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런던에서 세비야로 오던 날, 게트윅 공항에 만나 세비야까지 같이 버스 타고 온 한국인 가족이 있었다.
그 댁 아이는 키가 큰 6학년 여자 아이였다. 세비야 공항버스에서 헤어졌던 그 가족을 며칠 뒤 톨레도 대성당 앞에서 우연히 만났다. 신기하고 반가운 우연이었다. 그간 서로의 여행이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이가 들고 있던 새총을 본 그 아이 아빠가 웃으며 건넨 말이 그렇게 위안이 될 수 없었다.
“아! 저거 우리 애도 그렇게 사 달라고 했어요.”
아이와의 여행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