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유럽 여행기 7편 -
암스테르담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 할 수 없다. 이 고되고 힘든 일을 누가 만들었나.
내가 만들었다. 탓할 수가 없다.'
다만 여행을 다 망쳐버리고 일정도 다 뒤틀려버린 이런 여행을 해야 하는 아이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그리고 이 섬을 탈출 할 수 있게 해 준 고마움을 소가 풀 먹는 것보다 오래 곱씹어가며 고마워했다.
'고마움'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위장벽 주름 틈새,곱창 융털마다 그려 넣고 있었다.
이제 오늘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은 런던에서 2박을
더 해야 하므로 숙소를 구해야 했다.
지금 묵고 있는 숙소 주인은 연장이 안 된다고 했다.
그날 바로 체크인 하고 들어올 게스트가 있다며 추가로 숙박이 안 되니 11시에는 나가달라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에어비앤비 캘린더를 확인해보니 8월 1일부터는 모두 막혀있었다. 비앤비를 안 할 사정이 있었나보다.
내심 잘 됐다 싶었다.
숙소가 나쁜건 아니었지만 중심지와 너무 멀었고, 역까지의 거리도 짧지 않았다.
또한 쉐퍼드부시 마켓 이 지역은 아랍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마트, 식당, 생활용품점, 간이 은행 마저도
모두 아랍 사람들이 운영했고 간판 대부분이 아랍어였다. 좀처럼 런던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내일은 아침 일찍 킹스크로스 역에서 요크(York)로 가야 하는 기차를 탑승해야 한다.
런던을 떠나는 날도 세인트판크라스역에 아침 10시까지는 가야 하니 더 런던 풍경이 있는 곳으로 가자.
새 숙소만 구하면 될 일이었다.
그 때, 카드 배송 문자가 왔다.
'그래 이제 뭔가 착착 풀리는구나. 새 카드를 등록해서 숙소를 구해 결제하자.' 싶었다.
문자를 확인하니 카드 배송 실패라고 뜬다. 뭐지? 왜..
그랬다. 카드를 받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카드 배송지가 직장이었다.
미친다. 카드 재발급을 신청하면서 급한 마음에 배송지 선택을 직장으로 그냥 해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기차표를 못 구해서, 새로 숙박을 구해야 할 상황이 있을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저기요 배송원님.." 다급하게 문자를 보낸다.
"주소 변경해서 다시 인계 한다니요. 그럼 카드가 우리집으로 오는데 또 사나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가 너무 급해요. 그냥 카드 뜯어서 사진만 보내주세요"
문자로 할 상황이 아니다. 말로, 말로 나의 다급함을 알려야 한다. 전화 번호를 등록하고 카카오톡 친구 추가하고 새로고침해도 친구목록에 뜨질 않는다.
업무용 폰이라 카톡 등록이 안 된단다.
하... 진짜 이럴 수가. 오늘도 1일 1고난의 시작이구나.
너무 다급하다. 통화 버튼을 누른다.
"제가 지금 런던이예요. 카드를 받을 수가 없어요.
카드 뜯어서 사진만 찍어보내주시면 됩니다. 제발요"
"그럼 이거 지금 국제 전화예요?"
"네"
"뚜.. 뚜.. 뚜........."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렇게 끊어졌다.이제 남은 도움은 아내뿐이다.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말이 버벅거리고 앞뒤 맥락도 어디로 가고 없이 막 나온다.
'그래. 보이스피싱이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지...
그럴만 해'
"이제 제발 잃어버리지마."
이 말도 맞고.
나 혼자서 해결해 보려고 끙끙대던 것이었다.
그렇게 어려울게 없었다. 카드만 등록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일이 이렇게까지 꼬였다.
한국에 있는 가족 연락처를 알려달라 해서 알려주니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다.
뜬금없이 카드 배송원에게 전화를 받은 아내는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몰랐을 것이니 또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결국 아내는 아내대로 힘들고 카드 배송원은 배송원대로 국제전화에 보이스피싱 의심까지 하게 하고
나는 또 런던에서 나대로 죽을똥을 싸면서
아이와 길바닥에 나 앉는 줄 알았다.
급하게 새로 숙소를 구했다.
런던의 중심가와 가까우면서 세인트판크라스/ 킹스크로스역까지 걸어갈 수도 있는 유스턴역에 숙소를 잡았다. 중심가답게 정말 런던 같았다.
이 상황에서도 아내는 언제나 도울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 줘서 고마웠다. 시차가 8시간이 나니까 대기하고 있는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쉐퍼드부시마켓 역에서 유스턴역까지 중심쪽으로 7~8정거장 거리였고, 한 정거장씩 중심가쪽으로
가까워질 수록 숙박비는 3유로씩 올라갔다.
이전 숙소 주인이 11시까지 체크아웃을 이야기 했고
새 숙소 주인은 최대한 빠른 체크인이 1시라고 했다.
숙소 건물 앞에서 헤매자 지나가던 사람이 먼저 나를 도와주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각은 12시 40분.
주인이 알려준 번호를 아무리 눌러도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다. 번호로 작동하는 열쇠가 어려워봐야 얼마나 어렵겠는가.
두 번 시도..
세 번 시도...
네 번을 시도해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지나가는 청소년 영국인, 어른 영국인, 흑인, 백인 모두 붙잡고 도움을 요청했고 그들 모두 도와주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그렇게 30분을 숙소 앞에서 서서 보냈다. 덥지 않은 런던의 여름이었지만 이미 땀으로 온 등이 흥건하고 메고 있는 가방끈까지 땀으로 완전히 젖어버렸다. 분명히 쥐어짜면 땀이 흘렀을테다.
주인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이에게 "저기 앞에 카페에서 좀 기다리자.
주인한테 연락이 오겠지" 하며 다친 손으로 다시 28인치, 24인치 캐리어를 낑낑 거리며 길을 건너려는 찰라 주인에게 메세지가 왔다.
그것은 현관 비밀번호였다.
우리 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1층 건물 현관, 3층 아파트 문, 우리 방 문 이렇게 3개의 비밀번호가 필요했고
처음에 알려주는 번호는 두 번째 문 비밀번호였다.
이 사람은 왜 이러는건가.
숙소는 아파트를 개조해서 방을 여러 개 만든
전형적인 임대업자 에어비앤비 숙소였고 고시원 같았다.
공용 부엌과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가 있었지만
좁고 답답했다. 그 좁음의 정도가 지나쳤고
중심가에 가깝다는 이유만으로는1박에 14만원이라는 금액은 억울함마저 들었다.
'괜찮다. 나는 이 섬에 갇힐 뻔 했지 않는가.
내일은 요크에 하루 다녀오고, 모레 아침엔 짐 싸서 나와야 한다. 여기 오래 머물 일이 없으니 괜찮다.' 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