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ㄷ시 봄

그냥 글이 써졌어

by 민창

뿌리는 차가운 겨울을 버텨냈다.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벅찼던 계절,
내 안의 온기를 구석구석 다 긁어모아
하루를 버티고, 또 하루를 지나
그렇게 겨울 끝자락까지 다다랐다.


콘크리트 건물의 벽은 체온을 품지 못했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뿌리들의 발걸음은
늘 급했고, 외로웠고, 말이 없었다.

도시에서 겨울을 견딘다는 건
때때로, 나 아닌 모든 것과 멀어지는 일이었다.

잠긴 입술, 마른 손등,
혼자 끓여 먹는 라면 위에 김처럼 떠오른
고요한 고독을 입안 가득 삼켜가며
뿌리는 뿌리만을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겨울이 끝나고, 봄이 스미기 시작하자
벽돌 사이로 자라나는 한 줄기 풀잎이
그토록 반가울 줄은 몰랐다.


지하철 출입문 앞에서
잠깐 손을 내어준 낯선 뿌리의 미세한 미소,
횡단보도 반대편 나무, 바람에 흔날리는
어린 꽃잎.
카페 문 옆에서 엎드려 졸던
고양이의 복슬복슬한 털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뿌리의 시선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도시에도 봄이 온다.
매연 속에서도 꽃은 피고,
차가운 유리창에도 햇살은 머물고,
서로를 밀치던 어깨 사이로
이따금 아주 조심스럽게
따뜻한 숨결이 스며든다.

이제는 옆에 있는 뿌리의 온기가
조금쯤, 아니 꽤 많이 괜찮아졌다.

다시, 봄이 왔다.
그리고 이 도시에도,
뿌리가 함께 머무를
새로운 봄의 들판이 되어가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