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
어느샌가, 익숙한 반팔 대신 얇은 니트와 긴 셔츠, 가벼운 외투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한 요즘의 날씨.
길었던 여름이 지났음을 알려주듯이, 해는 어느덧 빨리 집을 찾는 요즘의 날씨다. 모두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분위기에 동의하지 않으며 책상에 앉아 맥북과 모니터 앞에서 아날로그 연필과 공책을 잡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무엇을 남기고 싶어 하는지, 오늘은 무슨 잔상을 남기고 싶어서 모두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책상 스탠드 버튼을 눌러 하루를 시작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공책에 그어져 있는 수많은 줄 사이사이에 글자 하나하나를 쳐 박아본다. 세상에 내 글자를 남기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럴까.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정하지 않고 쓰기 시작한 이 행동은 또 무언가를 남기기는 한다. '쓴다'라는 동사가 과연 어울릴까. 시작선 없이 뛰기 시작한 달리기처럼 스스로 정해놓은 완주선에서 달리기를 멈추는 행위. '쓴다'가 아닌, '그린다'라는 동사가 더 어울리겠다.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았지만, 나를 받아주는 공책이 있다는 게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시작선과 완주선을 그려주는 연필이 내 오른손에 있다는 게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하고 일단 써본다. 퍼즐을 맞추기 위해 퍼즐판에 수많은 조각들을 뿌리는 행위처럼. 퍼즐을 맞추는 꿀팁 중 하나는 끝에 머리 꼭짓점 퍼즐 네 개를 먼저 찾는 것이다. 세상이라는 꼭짓점, 사랑이라는 꼭짓점, 슬픔이라는 꼭짓점, 미래라는 꼭짓점 그렇게 찾고 시작하면 아직 형태는 알 수 없지만 '시작'은 할 수 있다. 진짜 퍼즐을 맞추는 건 그래도 어떤 그림인지 머릿속에 넣고 하지만, 이놈의 감정 글쓰기는 명확한 그림 없이 시작하기에 긴장이 된다. 준비 없이 발견한 상처라는 퍼즐 조각을 마주칠 때 종종 고통을 경험한다.
글쓰기는 참으로 아름다운 장미를 맨 손으로 잡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고통이라는 감정을 마주할 때 가시를 꽉 쥐어 잡아 피를 흘리는 것처럼 따갑고 아프지만, 그 행위를 통해 퍼즐이 맞춰진 그림은, 완주한 후 바라보는 하늘은 참으로 아름답다. 고통이 되기도 하며, 그 과정을 이겨내 결과물에 대한 뿌듯함을 알려주는 글쓰기는 선물과도 닮아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결론을 이야기한다. 나의 아픔과 고통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지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 글을 또 한 편 남긴다. 이렇게 또 한 번 나를 사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