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
찬 바람이 찾아온 게 당황스럽지 않다. 그만큼 더위가 길었던 올 한 해인 거 같다. 분위기를 조금 바꾸고 싶어 짧았던 머리를 조금 기른다. 최근에는 여행스케치와 박가영 노래를 듣는다. 여행스케치의 '운명', '옛 친구에게'이 두 노래를 자주 듣는다. 박가영의 '시작'이라는 노래를 자주 듣는다. 설렘과 그리움이 공존하는 노래들, 그런 노래이기에 코트와 피시테일(야상)이 어울리는 계절이 찾아오면 자주 듣는 거 같다. 체감하는 가을이 너무 짧아져 조금이라도 길게 느끼고파 일부러 가을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한다. 그런 요즘을 보내고 있는 나는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싶어 최선을 다해 일상을 볼륨을 올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약간의 에너지는 책을 만들고 있는 동생들에게 사용한다.
요즘 내 일상의 핵심 키워드는 '잔잔함'이다. 분주하고 정신없던 내 일상이 이제야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색깔이 보인다. 오랜만에 찾아온 잔잔함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 온 잔잔함일 수도 있다.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긴장, 사진을 찍어야 하는 긴장, 내가 맡은 공동체를 유지해야 한다는 긴장. 긴장의 연속을 살고 있던 나에게 찾아온 일상의 잔잔함은 너무 값지고 소중하다. 그런 내 일상을 유지하고 싶어 내 잔잔함에 돌을 던질 거 같은 사건이나, 사람을 최대한 만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불편한 사람을 만나는걸 최선을 다해 외면한다. 지금의 나는 부담 없이 사진 찍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동생들을 만나 도와주는 것 그 이상을 하고 싶지 않다.
또 다른 시선으로 잔잔함을 유지하고 싶다는 말에 겁쟁이가 되어버린 내 모습이 보인다. 던져지는 돌멩이를 맞으면 얼마나 아픈지 알기에. 분주한 일상에 나를 잃어버리는 하루가 얼마나 슬픈지 알기에. 너무 많이 잡고 있던 내 일상을 조금 놓는 요즘이다. 순간순간 연락 오는 재입고 메일을 회신하고, 계절을 담기 위해 정동길에 가 사진을 찍고, 책작업을 하고 있는 동생들을 돕고, 조용히 학교를 다니며,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 익숙함에 위로를 받는 요즘.
긴장했던 내 삶에 찾아온 잔잔함을 이어가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