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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부작 Mar 18. 2024

희망퇴직을 받겠습니다. (2)

희망퇴직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김 과장, 정말 소문이 맞았나 봐."


회의실에 앉자마자 조금은 초조해 보이는 팀장이 대뜸 말을 내뱉는다. 


"소문대로 S급 아니면 최소 A급 사람으로 직원들 프로필을 계열사에 뿌렸고, 계열사에서 한 명씩 찍었다네.

그래서 김 과장을 C계열사 D팀에서 원한다고 하는데 어때?"


뭐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면서 멍하게 듣는다. 다른 계열사에서 좋게 봐주셨다 하니 한편으로는 좋으면서,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른다.


"음, 일단 생각해 보겠습니다."


문을 닫고 나온다. 쏟아지는 팀원들의 메신저. 슬프게도 팀장 말을 100% 믿을 수가 없어 조용히 블라인드를 켜본다. 팀장 말이 어느 정도 맞나 보다. A급 이상의 직원들에게 제안이 갔다고 한다. 한편으론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분노의 감정이 생긴다. 






갑작스러운 팀장과의 면담으로 하루종일 싱숭생숭하다 퇴근하고 집에 겨우 도착했더니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안녕하세요. 김수현 과장님 맞으시죠? 저는 C 회사 D팀 박수호 부장입니다."


멍 하게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늘 팀장님과 면담하셨을 거라 들었어요. 저희가 지금 Z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김 과장님 이력을 보니 오셔서 같이 일하면 너무 좋겠다. 싶어서 꼭 좀 김 과장님을 보내달라고, 그리고 오실 수 있게 잘 설득해 달라고 말씀드렸었어요. 혹시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시고요. 편하게 물어보시고 긍정적으로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혹시나 나의 당혹스러움과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올 수 있는 언짢음이 티 나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또 한편으로는 감사한 척 전화를 마무리하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블라인드를 켰다. 이번에 선발된 이동 대상자들이 가지 않겠다고 하면, 조직별로 이동을 원하는 인원을 조사받고, 그래도 모자라다면 강제로 이동시킬 인원을 할당시킬 수 있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희망퇴직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대상자건, 지켜보는 사람이건, 보내야 하는 사람이건. 



 




 한차례 계열사로의 이동이 끝났다. 그리고 동종 업계로 이동하는 동기, 선후배들의 소식이 여전히 들려온다. 옆자리 후배도 이직한다고 한다. 내가 하는 일로는 다른 회사 이직을 못할 거라 생각해 왔어서 옆자리 후배 이직 소식에 흠칫 놀란다. 


후배 : "저 H 직무로 이직해요."

나 : "에? 우리가 H 직무예요?"

후배 : "그럼요. 우리가 해왔던 업무가 크게 보면 H 직무의 하나이고, 그중에서도 G에 특화된 일을 한 거예요. 선배도 이직하실 수 있어요. 여기저기 한번 알아만 보세요."


평소에 일을 추진력 있게는 하지만, 사소한 실수와 Fact 체크하지 않은 말들을 하고 다녀 내심 골칫거리라고 생각했던 후배가 이직한다니. 그것도 H 직무로.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우리 회사에 한정된 업무라고만 한정 짓고 있었다. 그런데 후배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정말 우리가 해왔던 일이 H 직무가 맞고, 어떻게 보면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추진했던 것 아닌가!


왜 나는 나를 스스로 한정 짓고, 안될 거라고만 생각했을까. 우리 회사에서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을까. 혼자 똑똑한 척 다 아는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우물 안 개구리 그 자체였던 것이다. 




경력직 채용 공고가 모여있는 구직 사이트를 조심히 들어가 본다. 아 후배가 지원했던 공고가 이거구나 싶은 공고가 보인다. 'xxx 분야 모집'이라는 화려한 제목을 클릭해 본다. 채용 공고 상세 내용에 적혀 있는 Job Description을 읽어본다. 세상에 이걸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그날 이후로 채용 공고 사이트를 매일 들어가 본다. 요즘 시장에서 대세인 직무는 어떤 것인지,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내가 해왔던 일, 나의 커리어와 연관 있는 직무가 보일 때마다 재미가 +1 된다. 마치 싸이월드(지금의 인스타그램)의 관심 있었던 사람들 페이지를 들어가는 것 마냥 괜스레 스릴 넘치고, 도파민이 싸악 돈다. 


지금 채용 시장에선 데이터가 대세다. 나도 현재 직무에 데이터 관련 커리어가 더해지면 잠재력이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물론 나는 통계학, 데이터 관련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이 커리어를 키울 수 있을까. 회사 내에 데이터 관련된 팀을 찾아본다. 팀장님 관상을 살핀다. 팀원들 관상도 신중히 살핀다. 이 팀으로 이동해서 업무를 하면서 배워가면 좋겠다는 막연하고 허무맹랑한 상상을 한다. 





무료한 체질 개선 중인 회사의 회사원 1로 턱을 괜 채 마우스를 클릭하던 중 짜릿한 메일 한통이 도착했다. 


제목 : [모집] 데이터팀 내부 인력 희망 이동자 모집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걸까. 회사가 어려워 외부 인원 채용이 어려워 지자, 회사 내부 인력으로 데이터 팀 인력을 충원하고자 한 것이다. 2명을 모집한다고 한다. 이런 건 빠르게, 그리고 진심을 다해 보내는 게 좋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미리 데이터팀 팀장님과 팀원들 그리고 팀 분위기, 하는 일 등을 알아봐 둔 밑작업(?) 덕분에 고민 없이 지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날아온 최종 희망 이동 대상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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