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사라진 날, 문장은 살아남았다

과거의 내가 쓴 칼럼이 어떻게 현재의 산자인 나를 살게 만들 수 있을까

by 비고란

"10년 전 이미 들뢰즈를 가지고 문화정책을 비판하고, 시공간의 사유로 풀어낸 사람이 나다."라고 말 못 하는 한 대필 칼럼니스트가 있다. "문장으로 코끼리도 웃길 수 있어야지만, 그 사람이 작가로 불려야 한다"며 줄창 자기 잘난맛에 쓰게 된 첫 대필칼럼.

"문장을 낚은 로빈슨 크루소와 문장 읽고 깔깔대는 둠바코끼리"



떠안은 문화사업들을 뒤로 제쳐놓고 뭐라도 되는 작가마냥 폭풍처럼 휘몰아치게 타자를 쳐 댔다.

왜 연합회나 협회, 협의회의 사무국직원들은, 간사나 팀장이라는 직함에 몰래 숨고 있는 수백 번의 회의와 미팅의 연속을 눈치 못챌까.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일하는 척 칼럼 쓰는 맛에, 나를 선출직 연합회 지부장으로 빙의케 했다.

미친 듯 쇄도하는 문의전화테러와 수백 번의 회의, 초심을 잃은 초안들. 그리고 줄담배의 굳은살 박힌 엄지손가락. 망가진 터보라이터만 수십여 개.

그 기획사업안에 결제도장 하나 찍기가, 휴지심 안에 내 얼굴 들어가기보다 난이도가 높았다.

다들 그렇게 살아요? 그죠? 나만 그랬던 거 아니죠?


그렇게 완성되어 내 이름이 사라진, 고귀한 내 첫 칼럼은 문화시론이 되었고, 내 키보드와 모니터, 내 자리와 앞자리 그리고 그옆자리 까지 지방신문기자들의 칼럼 맛집으로 변화되었다.

꼭 점심때 뉘엿뉘엿 쳐들어 온다.

1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내 칼럼이 13년을 앞선 칼럼이었구나 하고 눈물 섞인 위로의 자화자찬을 하던 중.

'?,,! 공소시효가 지났잖아? 이제 이 칼럼을 내 칼럼이라 당당히 말할 때잖아?...'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밀고 나갈 딱 그 시점이라 여러분께 수줍게 대필했었노라고, 자랑 섞인 고해성사를 해본다.( 읽어보면 참 재밌어요. ) 과감하게 링크올리고 내가 썼었노라고, 현재의 내가 당당히 선언하는 바이요, 13년 전에 쓴 예견칼럼, 현재의 K문화 판도를 예언하고 제안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 사실 그 당시 문화판의 돌아가는 못볼꼴들을 보고, 지부장이 읽어도 못 알아먹게 문화판 행태를 돌려깠습니다.)

산자만 따르라! ㅋㅋㅋㅋ

"문장을 낚은 로빈슨 크루소와 깔깔대는 둠바코끼리"아동판

2012년 당시 경기신문 문화면 '문화시론'에 정기 기고된 칼럼입니다.


공식 명의는 외부 필진(정상종, 시흥문화원장)으로 실렸지만, 실제 글의 기획 및 집필은 제가 담당했었죠. 문화행정 실무 경험과 철학적 통찰이 만난 제 창작의 시발점이고, 시발인 점이며 현재 저의 문체와 관점을 관통하는 결정적 글입니다.








"오늘날 문화의 흐름은 ‘현재’라는 개념을 재정립하면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비약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는 듯하다. 모든 문화 콘텐츠들과 책들이 ‘지금’을 외치고 소개하는 것이 그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추진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럼 우리는 시간의 개념을 달리 보고 달리 듣고 달리 느껴야 한다는 것일까?

그렇다. 미래는 무언가 모르는 시간적 차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현재가 밀고 가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개념이 현재의 연속으로 봤을 때 기본적인 지식과 경험이 사용되는 비율은 약 30%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미래를 향해 밀고 나아가는 ‘현재’의 나머지 70%는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은 통섭적 사고를 바탕에 둔 상상력과 창조적인 사고로 채워야 한다. 즉, 다가올 시대는 기존의 전통적 가치와 축적된 경험과 지식과 함께 상상력에 바탕을 둔 창의적, 창조적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지금 이 시대의 패러다임은 ‘통섭 교육’, ‘융·복합적 사고’가 문화적 화두로 부각되고 있다. 앞서 시간 개념의 확장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오늘날 세대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미래라는 개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방문화원은 지역의 역사, 문화적 전통의 기반을 다져 나가고 조사, 연구, 발굴하는데 집중해 왔다. 그것이 지역의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고, 지방문화원의 장점이자 강점으로 작용해 왔다. 역사적, 전통적 기반 위에 늘 서 있던 지방문화원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통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것은 지방문화원장들의 헌신과 봉사가 이뤄 낸 빛나는 성과이며, 그 성과를 전국적 차원에서 봤을 때는 가히 가공할 만한 흐름이다. 대한민국의 거대한 문화적 흐름으로 이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시대의 패러다임을 파악하고 그것을 지역적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하고, 현실적으로 구현되고 있는가 하는 측면에서 다시 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시대의 지적 성과와 경험 위에 창조성과 상상력이 결합된 견고한 ‘현재’라는 거대한 시간 개념을 가지고 미래로 밀고 간다는 개념으로 생각할 때 나는 거기서 지방문화원의 패러다임을 재조명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문화사업의 최종적 목표는 ‘관객 개발’이라는 개념이 한 동안 주된 흐름이었다. 즉, 문화예술교육과 시민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정책적 차원에서 검토될 때 왜곡된 현상으로 비친다. 그 성과를 평가할 때의 ‘정량적 평가지표’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문화사업의 기조는 ‘리좀적’ 개념으로 새 판을 짜야 할 시기다. ‘리좀적’ 공동체 개념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접근할 때 현재 지방문화원에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이 다른 맥락에서 읽혀지게 된다. 그 문화사업이 지역문화에 어떻게 작용하며,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가 더 명확하게 읽히게 되며 보다 정교한 문화예술기획이 가능해 진다.


이는 칼럼이라는 텍스트의 틀을 통해 현재를 밀고가는 현재인들의 갇혀있는 시간의 틀을 깨어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보여지는 틀이 보이지 않는 사고의 틀을 깨어주는 문화의 창의적 창조가 이뤄지게 되는 오늘날 문화의 흐름인 것이다. 이 칼럼을 쓰고 마쳐가는 지금 이 시점에 이글 첫 단어인 ‘오늘날’ 앞에 첫문장을 띄우지 못한 것을 알아차리고 스페이스바로 칸을 띄운다. 순간 이글 모든 글자들이 한칸씩 밀린다. 전통과 역사, 그리고 현재는 문화의 연속성으로 이뤄진 그 자체인 것이다.

"문장으로 웃음 만개한 둠바 코끼리"



[출처]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

칼럼 원문 보기(https://www.kgnews.co.kr/mobile/article.html?no=304122)


사실 여러분들도 뭔소린지 못알아 먹겠죠?

제가 썼는데, 저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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