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손”이라는 징후
2005년, 글과 문화를 다루는 직장에서 처음 그 단어를 봤을 땐, 그냥 웃었다.
‘명예를 훼손하겠다’는 말을 ‘회손’이라 쓴 댓글을 보고선, “풉” 하고 넘겼다.
그런데 자꾸 보였다.
특정 성향, 특정 논조, 특정 플랫폼에서, 너무 자주, 너무 일정하게.
‘명예회손’ ‘회손해지마라’
이 기묘한 오타는 더 이상 단순한 실수로는 보이지 않았다.
실수가 반복되면, 그건 징후다.
오타는 언어의 실수가 아니라, 지문이다.
그리고 때로 반복된 지문은 암호가 되고, 암구어가 되며, 피아식별의 머리띠가 된다. 마치 청군/백군(군필자는 알지. 그 ‘멸공’ 띠처럼.)
2. 오타인가, 암호인가
‘회’와 ‘훼’는 발음은 비슷하지만,
타자 배열은 멀다.
‘ㅎㅚ’와 ‘ㅎㅞ’는 키보드 상에서 다른 손가락의 리듬을 타야 한다.
자동완성에서 끼어드는 정도로는 설명되지 않을 만큼, 반복의 밀도가 짙다.
복사 붙여넣기, Seed Text.
그리고 댓글부대의 도배 메커니즘.
이게 결합된다면?
회손은 실수가 아니라 전략이 된다.
국어사전에 없는 ‘회손’이라는 무의미한 조합은,
반복될수록 신호가 된다.
밈이 되고, 유행이 되고, 기호가 된다.
“우린 여기 있다. 댓글을 장악 중이다.”
회손은 어느 순간, 찍힌 위도와 방위 쪽으로, 전투 중인 언어들의 대량 기폭제가 되어 투하된다.
○ IME(Input Method Editor)는
한글을 로마자 기반 키보드로 입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이다.
많은 사용자들이 쓰는 '스마트폰 한글 키보드'나 'PC 자음-모음 조합식' 자판이 여기에 해당한다.
IME는 과거 입력 습관, 단어 빈도, 추천사전 등을 기반으로
자동완성을 제공한다.
○ "회손" 현상의 실마리
IME는 오타가 반복되면
그 오타조차 학습하여 "선호어"로 제시하게 된다.
즉,
처음엔 ‘훼손’을 쓰려다 잘못 입력해 ‘회손’이 나오고,
그걸 다시 고치지 않으면,
다음엔 ‘훼’ 대신 ‘회’가 먼저 뜬다.
이렇게 해서
'회손'은 오타임에도 불구하고 추천어로 자리잡는다.
3. 말은 문장보다 먼저 부패한다
누군가는 법조문을 들이댄다.
“명예훼손은 범죄입니다.”
하지만 나는 되묻는다.
“그 명예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명예를 지킨다며
댓글로 사람을 짓밟고,
편향된 정보로 이미지를 조작하고,
허위 루머로 여론을 유린하며,
그 와중에 ‘명예회손’이라는 오타로
자신의 흔적까지 흐려놓는다. 개처럼 뒷발차기로 오줌을 흩어 놓은들, 냄새가 발에 안 닿았을까..
그들이 보호하려던 건 ‘명예’가 아니라, 자기편을 보호할 면죄부였을지도 모른다. (아님 받은 수고비에 대한 최소한의 모르쇠 이거나)
결국 "떼"는 그물에 싸그려 잡히는 법. 한둘이 그물을 찢어봐야 옭아매는, 시대정신을 피할 수 있겠소냐.
4. 회손은 오타가 아니다, 전략이다
“내가 쓰는 말이 곧 내 편이다.”
디지털 시대의 언어는
더 이상 표현이 아니라, 무장된 상징이다.
회손이라는 단어 하나로
깨어있다는 자의식 하나로
개념 없다는 몰아세움 하나로
그들은 진영을 드러낸다.
말은 진영을 호출하고, 전선을 긋는다.
5. 진짜로 훼손된 것
정작 훼손된 건 ‘명예’라는 단어 그 자체다.
그 단어에 담겨 있던 공감, 존중, 양심이 사라졌다. 명예훼손을 외치던 그들이 사실은 제일 먼저 그 명예를 짓밟았다.
그래서 나는 선언한다.
"명예훼손의 명예회손"은
문장을 겨눈 문장의 고발이고,
언어의 자기 배신을 기록한 보고서다.
“명예를 지킨다며 명예를 부수고, 혐오를 퍼뜨리며 정의를 외친 자들. 그들이 남긴 단어는 ‘회손’이었다.”
비고란에나 붙일, 회손의 재정의
회손(回손): Come back your's Hand.
너희가 훼손한 언어의 명예와
인간의 존엄은,
결국 너희 손으로 되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