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무

강주빈

by 도서관 옆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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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짓는 남자의 하루는 길다.

아침이면 단어수집가가 그 전날 구해온 단어들을 받는다.

이야기 짓는 남자는 그것들을 문장틀에 걸러 자신에게 맞는

몇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뒷밭에 거름으로 준다.


그 뒤 오전 내내 단어들을 갈고 닦는다.

단단한 명사는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닦고

흠이 가기 쉬운 형용사는 부드러운 비단으로

말랑말랑한 부사는 물 묻은 천을 이용한다.


점심을 먹고 난 후로는

오후 내내 단어들을 짜맞춰 이야기를 만든다.

남자가 텃밭에서 기른 생각나무 줄기로 짠

그물에 단어들을 끼워서 이야기 매듭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매듭이 어느정도 양이 되면

후에 '책'으로 완성이 된다.


가끔은 단어수집가들 사이에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책'을 캤단 이야기가 돌곤 한다.

사람들은 그런 매력적인 소문에 열광한다.

이야기 짓는 남자가 몇 달, 혹은 몇 년을 걸려

노력하는 작업 없이도 손쉽게 책을 얻을 수 있다니.


하지만 이야기 짓는 남자는 그런 이야기에 현혹되지 않는다.

단어부터 차근차근 쌓아가 만든 자신만의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직 미숙할 지라도 자신이 키웠기에 소중한 책.


이야기 짓는 남자의 하루는 오늘도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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