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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관 옆자리 Mar 24. 2021

4화 크기가 다른 두 삼각형

여름밤은 원래 길다는 바보 같은 말

그와 연애를 한지 2년차에 접어들었다. 그의 장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가장 좋은 점은 나와 여행 스타일이 너무도 잘 맞는다는 점이었다. 그 사이 4번의 해외여행과 4번의 국내여행을 다녀왔고 내가 만든 포토북엔 400번이 넘는 데이트가 기록됐다.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가 주는 행복은 나머지 것들을 잊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는 언제나 여유로웠고 돌발 상황에 대처가 빨랐다. 신혼여행으로 많이 간다던 휴양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는데 그 때 나는 그에게 다시 반했었다. 더운 여름날이었고 일정대로 흘러가지 않아 많이 지치고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버스가 오지 않으면 오지 않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모든 걸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당황하고 걱정하는 날 토닥이며 괜찮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의지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라며 혼자 속으로 흐뭇해했었다.


심리학 수업에 종종 나오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떠올려보자. 사랑이라는 삼각형 도표에 친밀감, 열정, 헌신이란 3개의 꼭지점이 있다. 그 꼭지점이 전부 도표 끝까지 닿은 큰 삼각형, 그게 바로 나였다. 나는 그를 자주 보고 싶어 매주 새로운 데이트를 계획했고, 뜨겁게 안기길 바랐다. 그 사람이 없는 그의 자취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날이 많았고, 그를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을 그의 텅 빈 냉장고를 채우며 달래는 날도 많았다. 그는 나를 보며 연애가 아니라 육아를 하는 것 같다고도 했고, 나를 우렁각시라고도 불렀다. 


그렇지만 그의 삼각형은 나와 비교하면 크기가 작았다. 전화를 부담스러워했고, 포옹을 아꼈고, 데이트가 많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서운함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나에겐 전 여자친구라는 선구자가 있었다. 그는 그녀와 만나며 힘들어했던 점들을 나에게 말했었고, 나는 선구자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의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는 너무 많은 관심은 구속으로 느끼니 나는 그를 최대한 구속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 위해 나의 욕심에 재갈을 물리고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렇지만 가끔 새어나오는 서운함까지 외면하기는 힘들었다.


그와 연락이 잘 되지 않을 때 나는 서운함이 커졌다. 그는 술을 자주 마시진 않았지만 가끔 취해서 돌아오는 날이 있었다. 하루는 지하철에서 잔뜩 취해서 나와 전화를 하다가 연락이 끊겼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가 탄 노선에 종점역을 검색했고, 전화를 걸어서 그가 잘 내렸는지 확인을 부탁했었다. 그가 전화를 다시 받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해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8월의 어느 날, 그는 모임에 나가서 연락이 되지 않았었다. 친구들을 만날 때면 그에게 항상 사진을 찍어 보내는 나와 달리 그는 자신이 편할 때만 연락을 했다. 연락두절 되는 날이 자주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가끔 그럴 때면 내 애간장이 닳아 없어지는 것처럼 불안해졌다. 모임에 나간다고 해서 그 전날도 분명 중간에 한 번만이라도 짧게라도 연락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러나 그는 출발했다는 카톡 이후로 여섯 시간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시계바늘이 새벽을 가리킬 때까지 나는 잠을 잘 수 없었고 그럴 때면 내가 너무 잔걱정이 많은 걸까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그의 전적들이 있으니 마음을 편히 가질 수가 없었다. 오늘은 언제 잘 수 있을까. 그런 날이면 그를 따라서 나의 밤도 깊어져 갔다. 


나는 항상 그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다시 제자리에 두었다. 그리고 기다리자고 되뇌었다. 그의 사랑의 언어에서 연락이 크게 중요하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의 전 여자친구처럼 되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그 날, 나는 원래 여름밤은 길다고,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혼자 중얼거렸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Ig5FOdP-mA

그 남자를 생각하며 만든 두번째 곡, 선잠


https://youtu.be/UboZ9ujsC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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