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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관 옆자리 Mar 23. 2021

3화 승자의 연애

공범자들의 변명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받은 지 한 달도 안 되어, 그는 그녀와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한 달도 되지 않아서 그는 나를 찾아와 미안하다 말했다. 나는 그런 그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와 나의 연애가 시작됐다.


우리는 사내 커플이 되었고 우리의 연애를 비밀에 부쳤다. 그는 여자친구가 바로 바뀐 것에 대해 눈치가 보인다고 했고 괜한 소문에 휩싸이는 것이 싫다고 했다. 나 또한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것이 싫었으니 그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같은 회사지만 건물이 달랐고 큰 회의가 있거나 종무식 같은 자리가 아니면 볼 일이 거의 없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 년에 서너 번, 그를 만나는 자리가 재미있게 느껴졌을 정도다.


비밀연애의 장점은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다. 연애를 한다는 이유로 듣게 되는 이런저런 간섭들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건 꽤 큰 장점이다. 단점은 표현을 못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회식 때 늦게 들어오는 그를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고, 핸드폰에 그를 애칭으로 저장할 수도 없다. 카톡 프사에 그를 올려두고 자랑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숨겨야만 한다.


또한 연애를 숨긴다는 것은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것 마냥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그의 전여자친구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애써 합리화를 하기도 했다. ‘비록 그가 헤어지기도 전에 만나서 단둘이 밥을 먹긴 했지만 서로에 대해 마음을 말하거나 스킨십을 하진 않았다. 그때 우리는 그저 직장 동료로써 대화를 나눴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 부정하려고 해봐도 그는 다른 여자와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여자친구와 헤어질 생각을 한다는 것을 털어놓았고, 나는 그에게 헤어짐을 권했었다. 우리는 노골적이지 않았을 뿐이지 공범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현재의 연애를 방패삼아서 과거를 부정했다. 연애란 자신에게 맞는 한 쌍을 찾는 퍼즐 게임이다. 이 게임에는 한 쌍을 찾을 때 두 개 이상의 퍼즐을 동시에 맞춰보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 그 규칙에 대해서 우리는 얌체짓은 했지만 반칙은 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게다가 결국 잘 맞는 한 쌍을 찾아 게임을 종료시켰으니 그 정돈 눈감아도 되지 않을까. 남들이 하면 불륜이지만 자신의 만남은 모두 로맨스라고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연애는 각자의 기록이라고 나를 그렇게 다독였다.


그와의 연애가 길어지면서 나는 몇 번이고 우리의 연애를 공개하고 싶었다. 그만큼 그는 나에게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비밀연애를 하자는데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친한 친구 전부를 그에게 소개했다. 불특정다수보다 나한테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 사람을 알리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모든 친구들에게 자랑할 정도로 그는 이상적인 남자친구였다. 우리는 서로를 보완해주는 사이였다. 나는 남자같은 여자였고, 그는 여자같은 남자였다. 서로한테 없는 매력에 끌렸고, 상대의 단점이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이전에 만났던 남자들과 달리 간섭이 없었고, 취미와 취향이 비슷했다. 그는 놀이공원을 좋아했고 나는 그에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롤러코스터라는 걸 탔다. 그는 나와 같이 그림 그리는 원데이 클래스를 수강하고 나는 그를 따라 방탈출 카페에 가는 것이 익숙해졌다. 이렇게 행복하니 우리는 결국 서로가 만날 반쪽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그의 전 여자친구는 고장 난 네비게이션 마냥 잠시 경로 설정을 잘못한 일로 빠르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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